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11강(요12:29-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5. 03:29

요한복음 강해 제111(12:29-3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8()

 

천상의 소리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것은 왜 성도들을 위한 것인가?(12:27-30)

 

천상의 소리가 나타나게 되는 이유와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12:27-30).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성(人性, 인간의 성질)을 가지고 현재 사람으로 살고 있기에 그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는 일이 자신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있게 스스로 십자가의 극형을 받겠다고 자청하고 나설 용기가 도무지 생기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렇게 영생의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 줄 하나 내놓으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 것인가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당사자 본인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요구가 운명으로 다가온다고 한다면, 쉽사리 그렇게 기쁘게 행할 수 있다고 말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 이유는 비록 이 세상에서 유한한 삶을 살 수 있는 목숨 줄이고 육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을 맞이할 때 느끼는 정신적인 공포와 육체적인 아픔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12:27a).

그와 같은 고통은 실제적으로 맞이하기 전에 벌써 괴로움으로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게 눈물로써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12:27bc). 십자가라는 극형을 지지 아니하고 다른 대속의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가볍게 그것을 건너 뛰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그 죄의 짐을 모두 감당해야만 대속의 은혜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1:29). 보통 사람이 아니고 유일하게 하나님의 완전한 신성을 지니고 있는 자신이 동시에 완전한 인성과 육체를 지니고서 그 고통을 감당할 때에 비로서 하나님께 대하여 완전한 죄 사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7:23-28). 따지고 보면, 단번에 완전한 죄 사함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물은 유한함을 지니고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피조 세계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주 자신의 것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것. 곧 독생자가 비천한 인간이 되어서 그 피를 흘릴 때에 완전한 용서함이 임하는 것입니다(1:14, 2:5-11). 그와 같은 이치는 마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2:21)는 예수님의 말씀의 또 다른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이제 또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고 이상한 답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정체가 하나님의 본체에 속하고 있는 독생자이십니다. 창조주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독생자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비천한 인간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얻게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고 계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가 엄청난 희생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영광을 돌려드리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이후에는 나이 30이 되자 36개월 동안의 공생애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제자들을 거두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과 진정한 뜻으로 계속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유대교의 교리를 벗어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각성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진심을 똑바로 알고 인생을 사는 것, 그것이 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려 드리는 방법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스스로 결단을 하고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게 되면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또 다시 하나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렇게 성육신, 공생애, 대속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거듭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12:30)는 예수님의 답변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원한 다윗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유대교인들의 방법론은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12:31, 34)

 

이 땅 위에 영원한 제국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땅이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로운 예루살렘을 창조하고자 하십니다(21:1-2).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제사장 나라를 멸하시고 이어서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선민들을 온 세상에 흩어버리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새로이 창조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새로운 제사장의 나라입니다. 그 새로운 제사장의 나라는 모든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세계에 전하며 대속의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자로서 그리고 중보자로서의 일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꿈꾸고 있는 다윗의 제국의 재건은 망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생각이 위와 같이 그것과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임금이 쫓겨나고 세상 나라가 종말을 고할 때에 당연히 패권국가가 모두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입니다. 설혹 다윗의 제국이 재건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가 없이 종말을 고하고 말 것입니다. 다니엘 선지자가 일찍이 다음과 같이 영원한 성도들의 나라가 곧 메시아의 나라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7:13-14).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7:22). 성도들의 나라, 메시아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완성된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에게 바쳐 올린다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인생 가운데 주님이 계실 때와 아니 계실 때의 차이는 무엇이며,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12:32-36)

 

주님은 생명이요 빛이시라고 사도 요한이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1:4). 그러므로 주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은 빛의 자녀가 되며 영생의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반면에 주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인생은 흑암 속에서 헤매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예수님이 산헤드린 공회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되면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12:33-34, 14:27). 그들은 다시 생업을 찾아서 갈릴리로 대부분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21:1-4, 14:28). 메시아 나라의 건설에 대한 꿈도 사라질 것입니다. 소망과 희망이 사라진 그들은 그 옛날처럼 갈릴리의 어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아니 계시게 되면 구원과 영생에 대한 소망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도 없고 영생에 대한 기쁨이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창조주가 없이 고아와 같이 세상에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 장사를 지낸 바 되는 예수님이 다시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찾아 오시게 됩니다. 그들을 세상에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천국으로 이끌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14:18). 끝까지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한한 목숨과 육체를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바치고 나면 무덤에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새로운 생명과 몸을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그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몸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승천까지 가능한 것입니다(20:19, 24:50-53). 그와 같은 영적인 생명과 부활의 존재로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재하고 동행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12:32). 한 마디로,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주님을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무덤 속에서의 부활인 것입니다. 부활하시는 예수님은 주님으로서 제자들에게 먼저 임재하시고 그들이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16:7). 그 결과 사도들이 모든 사람들을 교회로 그리고 주님에게로 이끌어 들일 것입니다. 참고로, 그와 같은 대목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