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09강(요12:20-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4. 04:11

요한복음 강해 제109(12:20-2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76()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몇 사람의 헬라인은 누구인가?(12:20)

 

유월절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있는 경건한 유대교인들은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첫째, 본토 유대교인, 둘째, 교포 유대교인, 셋째, 헬라인 유대교인 등입니다. 그들은 사는 곳이 다르고 유대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본토 유대교인들은 사는 곳이 유대 땅입니다. 그들은 선민사상이 투철하고 전통적으로 쇄국적인 하나님 신앙을 고수하는 자들입니다.  둘째로, 교포 유대교인들은 유대인의 족보를 지니고 있지만 조상들의 땅 가나안을 떠나서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현재 이방세계에 흩어져서 일종의 교포로서 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선민사상을 여전히 지니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전통적인 유대교가 헬라의 세계와 로마제국의 사람들에게 전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개혁과 개방을 원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셋째로, 유대교인이 된 헬라인들(Greeks, 12:20)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그들은 헬라의 철학과 학문에 어울리는 세계종교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유물론적이고 범신론적인 헬라의 종교와 사상을 버리고 유대교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만을 위한 유대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유일신 사상을 추구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유대 땅에서 그와 같은 움직임이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매년 유월절을 맞이하여 일찍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들 헬라인 유대교인들의 입장을 여기서 사도 요한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공관복음에서 다루지 아니하고 있는 내용을 독점적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노년에 헬라의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는 한편 헬라의 세계 가운데 하나인 소아시아 땅, 특히 그 중심지 에베소에서 20년 이상 거주를 하였기 때문에 헬라인 유대교인들의 존재와 그들의 사상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스승이신 예수님이 그들의 예방신청을 받고서 왜 그렇게 흡족해하면서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이상한 가르침을 베푸셨는지를(12:20-26) 드디어 이해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20대인 당시에는 자신이 그 미묘한 차이를 몰랐는데 60년 세월이 지나서 교포생활을 하는 동안에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80대의 노인이 되어서야 전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광대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사도 요한은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에게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전하기 위하여 제4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모든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며 그 계획의 성취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열방의 역사를 주장하십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독생자의 성육신이 있었으며 인자의 공생애와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이 있게 됩니다. 나아가서,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헬라의 정신세계와 로마제국의 통치영역으로 확대가 되고 있습니다. 유대교가 할 수 없었던 그것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입체적으로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깨달음을 가지고서 이제 사도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헬라인 유대교인 몇 사람의 예수 그리스도 알현사실을 증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2:20-21).

 

그들은 왜 신중한 절차를 거쳐서 정중하게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가?(12:21-22)

 

몇 사람의 헬라인들은 예수님의 만민구원사상이 바로 자기들이 그토록 유대교에서 얻기를 원하고 있었던 복음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아니하고 있습니다(12:20). 그 이유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들이 얼마나 공손하게 접근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아시아나 시리아에 가까운 유대 땅의 변방 갈릴리 출신인 빌립에게 가서 먼저 부탁을 합니다(12:21, 1:43-44). 그 다음에는 처음 제자인 안드레가 빌립과 함께 예수님께 헬라인들의 예방신청을 전하고 있습니다(12:22, 1:40). 그 보고를 들은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12:23). 장차 헬라인 유대교인들의 개종을 통하여 기독교가 전체 헬라의 문명권으로 파급이 되어나갈 것입니다. 그 표현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해야만 합니다(12:24-27). 그러나 그 다음에는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고난 다음에 찾아올 영생의 영광이라는 상급은 그 고난과는 비교할 수가 없이 큰 것입니다(8:17-18). 그것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선민의 유대교가 죽고 만민구원의 기독교가 탄생하여 전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만민구원사상을 흡수하기 위하여 헬라세계의 전령들이 도착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는 그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유대교의 선민사상을 십자가에 못박아야만 할 때가 임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로움 만을 내세우고 있는 전통적인 유대교는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가 결코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10:1-3). 사람의 의가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의 공의가 부활을 하여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생명력을 부여하시는 새로운 종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시작되는 기독교가 바로 헬라인들이 그토록 얻고자 하는 만민구원의 평등함을 지니고 있는 세계종교입니다. 그러한 관념이 본문의 이야기 속에 깊숙하게 깔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들의 예방신청을 통하여 예수님은 어떤 영광을 얻게 되며 제자들은 또 어떠한 은혜를 얻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는가(12:23-26)

 

예수님이 주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계획이 이제 수요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구원과 영생의 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복음이며 일종의 씨앗(seeds)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밭을 얻지 못하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지를 못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만민구원이라는 복음의 씨앗을 재배하기를 원하는 밭이 바로 헬라인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일종의 수요자들(needs)입니다. 이제 비유를 하자면, 복음의 씨앗을 가진 예수님과 그 복음을 수입하기를 원하고 있는 헬라인들이 서로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때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유대교가 죽고 본래 히브리 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던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만민구원의 계획이 시동이 되어야만 하는 때가 된 것입니다. 소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습니다(1:15). 그 계획을 실시하기 위하여서는 씨앗이 땅에 뿌려져야만 합니다. 그 씨앗이 죽고 새로운 식물의 싹이 나야만 합니다. , 한 시대를 마감하기 위한 대속의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 제물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1:29). 따라서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임박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있을 부활의 영광까지 예감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퍼져나갈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제자들도 자신처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의 일꾼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희생적인 삶을 귀히 여기시고 부활의 영광으로 하나님께서 보답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12:24-26).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뿌리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생의 선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큰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