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67. 세리 삭개오(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4. 14:31

67. 세리 삭개오

 

(1)   삭개오는 여리고 세관을 책임지고 있는 세관장이었다(19:1-2). 로마 제국시대 세리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일반세를 수금하는 갑바이와 관세를 징수하는 목케스였다. 그런데 로마 제국이 식민지 경영에서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관세 부문이었다. 그 이유는 내국세 성격인 일반세는 그 지역 분봉왕이나 총독이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하여 대부분 소비하는 것이지만 식민지 사이의 무역에 대하여 로마가 부과하고 있는 관세는 징수 경비만 제외하고 모조리 로마 제국의 수입으로 갖고 올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관세를 싫어했다. 멀리 떨어져있는 농어촌 시골지역 갈릴리의 가버나움 세관보다(9:7, 2:14, 5:27-32) 예루살렘에 가까운 여리고 세관에(19:1-2) 대하여 유대인들의 원성이 더 컸다(19:7). 왜냐하면, 여리고 세관에서 관세를 많이 징수할수록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비도시인 예루살렘의 물가는 그만큼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관원을 로마 제국의 앞잡이요 매국노이며 백성을 수탈하여 부자가 된 자이며 종교적으로 유대교에서 끊어져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방인과 같은 죄인이라고 치부했던 것이다(5:30, 19:2, 7). 이와 같은 시대에 세관원으로, 그것도 우두머리인 여리고 세관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터이라 삭개오는 본의 아니게 고민이 많았다. 동족 유대인들을 대하기도 겁이 났다. 그는 자신의 결백과 진심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아니했다.

(2)   이와 같은 때에 좋은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선지자 또는 메시아라고 불려지고 있었던 예수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여리고 성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평소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는 예수가 자신과 비슷하게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 극히 싫어하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삼 년전 유월절에 갑자기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났던 청년 예수가 그 곳에서 장사하고 있던 환전상과 제물 판매상들을 모조리 채찍으로 내쫓아버린 사건이 있었다(2:13-25). 그 다음해 유월절에는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를 고쳤을 뿐아니라 예루살렘 성전내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것이다(5:1-10, 14-24). 이와 같이 잘못된 유대인들의 관념을 바로잡고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가 삭개오는 부러웠던 것이다. 그 분이 두 해만에 갈릴리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초막절을 맞이하여 상경하고 계시는 것이다(7:1-10). 삭개오는 그 분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 분을 만나서 용기를 얻게 되면 자신도 그 분처럼(5:17-47) 다음과 같이 외치고 싶었다; 나는 직업이 세관장이지만 지금까지 규정을 벗어나서 사리사욕을 채운 적이 없다. 동족 유대인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자이며 나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19:8-9).

(3)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세관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지만 막상 그 분에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여리고 주민들과 유대인들이 그 분 일행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겁이난 삭개오는 그들을 피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모습만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높은 뽕나무위로 혼자서 기어 올라갔다(19:4). 그가 꼭히 키가 작아서 나무위로 기어올라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19:3). 갑자기 예수님께서 눈을 멀리 들어 삭개오를 주목하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외치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19:5). 그 소리는 삭개오에게 마치 천둥소리와도 같았다. 가까이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놓아두시고 예수님께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계셨을까? 자신과 같이 억울하게 죄인 취급당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숨을 죽이고 있는 사람에게 그 분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도 군중들의 눈에 띄일까 두려워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위에 숨어서 조심스럽게 그 분을 지켜보고 있었던 삭개오 자신을 예수님은 그토록 정확하게 알아보시고서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까지 부르셨던 것이다. 그 순간 삭개오는 두려운 마음이 일시에 사라져버리고 저 깊은 마음속에서부터 감격이 치솟아 올라왔다. 그래서 그는 그 분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면서 마냥 즐거워했다(19:6).

(4)   여기서 삭개오 기사를 독점 수록하고 있는 의사 누가의 또다는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의 시선이 삭개오에게 향해진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 시선이 향하고 있슴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삭개오처럼 유대 땅에서 로마 제국의 일을 그림자같이 수행하고 있었던 인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1:3, 1:1). 의사 누가는 대표적인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교포출신으로서 의사인 그는 헬라식 학문과 로마식 통치제도에 익숙했으며 동시에 유대주의의 편협성과 전통적인 선민 우월사상의 시대착오적인 면모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로마 제국내 수많은 민족과 이방인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차원높은 안목의 새로운 만민 구원사상이 이제는 유대교에서 파생되어나와야만 한다고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생각을 의사 누가가 평소 지니고 있었기에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세관장 삭개오의 경우를 유독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   예수님은 삭개오에게서 무엇을 보셨을까? 그 분은 삭개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보셨다(4:23-24, 7:24). 자신의 진심을 알아보시고 있는 그 분에게 삭개오는 자신의 본심을 용기있게 토로할 수 있었다. 저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죄인이 아닙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동족들을 위하여 희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약 토색한 것이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율법 규정의 곱절인 네 배로 갚겠습니다.(19:8).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죄인인 세리의 집에 자칭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 일행이 들어가 함께 먹고 마시는 꼴이 가관이라고 그 점만을 흠잡으면서 비난했다(19:7, 9:11).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는 나를 믿고 영접하였다. 너희들이 그를 죄인 취급하고 율법 바깥으로 밀어낸 것은 잘못이다. 나 그리스도는 삭개오의 집과 같이 너희들이 구원 대상에서 쫓아내어버린 잃어버린 양떼들을 찾아서 그들을 구원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5:30-32, 19:9-10, 9:10-13). 헬라파 유대인이며 의사였던 누가는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헬라 세계에 전하고 싶었다. 유대인들이 죄인 취급하고 있는 모든 이방 세계도 삭개오의 집과 같이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여리고 세관장 삭개오의 회심과 결단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자신의 복음서에 이와같이 독점적으로 수록하고 있는 것이다(19: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