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66. 소경 바디매오(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2. 05:21

66. 소경 바디매오

 

(1)   소경 바디매오는 여리고 성밖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10:46). 여리고는 길갈에서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성읍이며 여기서 서남 방향으로 향하면 예루살렘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볼일이 있어 요단 강변길을 따라 남하해올 때 또는 갈릴리로 되돌아갈 때에는 예루살렘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와 같이 여행객들이 많이 지나고 있었기에 소경 바디매오는 성문밖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훗 날 바디매오가 눈을 떠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었을 때(10:52) 역시 자기처럼 어린 제자인 예루살렘 출신 마가와 안면을 트고 지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바디매오의 간증을 듣게된 마가가 그의 복음서에 옛날 여리고 성밖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실명을 사용하여 최초로 수록하게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도 마태와 의사 누가는 바디매오와 개인적인 만남도 없었고 또한 그 이름을 확실히 알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사례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여리고 성의 두 소경 이야기 또는 한 소경 이야기 등으로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소경의 이름을 거론하지 아니하고 동일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직접 목격자가 아닌 것이다(20:29-34, 18:35-43).

(2)   마가의 기록을 참조하면, 소경 바디매오가 당시 어린 나이였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아니하다. 그 이유는 첫째, 그의 이름이 단지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디매오였다(10:46). 만약 시몬 베드로처럼 나이도 들고 결혼도 했으면 요나의 아들 시몬(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이라고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바디매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가지고 있지 못한 어린 나이였다. 둘째로, 그가 아직 어렸기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크게 부르짖자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제지도 당하고 동시에 꾸중도 듣게 되었다(10:47-48, 18:39). 만약 바디매오가 나이가 제법 들어있었더라면 제자들이 제지는 했을지언정 그가 거지라고 깔보면서 꾸중까지 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셋째로, 어린 나이였기에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친절하게 그를 부르시자 너무 좋아서 그의 겉옷을 내어버리고 춥지도 아니한지 바로 일어나서 뛰어나갔다(10:49-50). 만약 나이가 들었더라면 그 귀한 겉옷을 내어버리지도 아니했을 것이며 더구나 사 월초 유월절 가까운 싯점인지라(10:32, 11:1-3, 13) 아직도 날씨가 쌀쌀한데 겉옷 없이는 추위를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경 바디매오는 어린 나이였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어린 나이였기에 식솔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 당장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10:52).

(3)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그의 정체성에서부터 적어도 세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10:46). 첫째는 소경 신세를 면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거지 신세를 면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디매오의 아들이 아니라 이제는 떳떳이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일가를 이루고 싶은 소원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10:51) 한 가지 소원만 말했던 것이다.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를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또는 선생님이여라고 부른 것을 보면 그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큰 능력을 가진 선지자중에서도 다윗 왕과 같은 권세를 가진 메시아로 인식하고 있었슴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나머지 두 가지 소원을 말하지 아니한 것일까? 그 이유는 소경이 눈을 떠서 세상을 보게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며 이것은 부활과 영생을 얻는 것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경인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하지 아니했다. 바디매오의 경우를 보면, 소경이 눈을 떳을 때 비로소 부활도 영생도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해야할 첫 번째 사역이 소경을 보도록 해주는 것(11:5)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이 말씀의 뜻은 소경이 먼저 눈을 뜨고 부활과 영생을 맞이하도록 구원해주시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4)   소경 바디매오는 기적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한 마디가 이상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이셨다(10:52).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 아니고 자신 가운데 있는 믿음이 눈을 뜨게하고 구원에 이르게 했다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믿음이 눈을 뜨게하고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는 그 말씀에 바디매오의 영혼은 떨림을 받게 되었다. 믿음, 나에게 그만한 믿음이 엿보인다는 말씀이신가?. 바디매오는 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적인 소경으로 더이상 살기를 원하지도 아니했다. 또한 거지 신세도 이제는 겉옷처럼 벗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 일행에 합세해버렸다(10:52, 20:34, 18:43). 이와같은 경우는 실로암에 보내어져서 고침을 받은 바있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9:1-2, 35-38). 그들은 모두 눈뜬 소경인 바리새인들보다(9:35-36) 먼저 믿음의 눈을 뜬 자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