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64. 베다니 나사로(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31. 14:50

64. 베다니 나사로

 

(1)   베다니에 살고있는 나사로는 자랑할만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두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였다(11:1-2). 민박집을 하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자 졸지에 가장이 되어버린 나사로가 혼자손으로 키운 어린 여동생들이었다. 소녀가 처녀로 성장하면서 마르다가 부억일을 맡고 마리아가 주방 보조와 손님 접대를 맡으면서 민박집을 잘 운영하고 있었다(10:38-40). 자신이 할 일이라고는 갈릴리에서 온 손님들과 친구가 되어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유월절과 초막절에(2:13, 7:2-3)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전통적이고도 경건한 유대인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나사로의 객점은 나름대로 성업중이었다. 두 번째로 나사로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친구들이었다(11:5). 요즈음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나사렛 예수, 그의 일행이 되어있는 베드로,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 도마, 야고보 등이 모두 나사로와 친했으며(21:1-2) 어린 요한은 마리아와 친했다(11:3, 5, 32-37). 그리고 나중에는 헬라파 유대인이며 의사인 누가까지 베다니에 예수일행을 따라왔다(10:38-42). 그들이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바람은 유대교와 유대사상에 큰 충격을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청년인 나사로로서는 그와 같은 새로운 성경해석과 치유의 능력, 귀신을 쫓아내고 죄사함을 선포하며 천국에의 소망을 강하게 설파하는 신선한 충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메시아 예수 일행이 베다니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는 늘 온 집안이 잔치자리였으며 나사로도 덩달아서 신바람이 났다(12:1-2).

(2)   그러했던 나사로가 갑자기 위독했다. 며칠사이에 죽음이 찾아 왔다. 마르다가 인편으로 예수 일행에게 연락했으나 그들은 제 때 오지 아니했다(11:3-14). 신기한 치유의 능력도 맛보지 못하고 나사로는 친구 예수의 얼굴만 떠올리다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11:11).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깊고 깊은 잠에 빠졌으며 그의 육체는 무덤속으로 옮겨졌다. 그 곳에서 지낸 사흘은 마치 수 천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듯한 절망적인 나락이었다(11:17, 벧후3:8). 그의 몸은 부패되기 시작했다(11:39). 그런데 갑자기 저 높고도 높은 곳에서부터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사로야 나사로야. 분명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평소 나사로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듯한 친밀한 목소리였다. 그것은 온유한 자의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피조물이 조금도 저항할 수 없는 절대자의 기운이 숨쉬고 있었다(11:43). 나사로의 무의식은 마치 천둥 소리를 듣고 번개에 감전된 듯이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즉시 의식 세계로 되돌아와서 생명으로 되살아났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그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덤에서 걸어나오라는 음성에 순식간에 그 동안 허물어지고 있었던 몸의 살들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다(11:39-40, 37:8-10).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올 수가 있었다. 무덤을 벗어나자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놀라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7:16). 그 때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수족을 싸고 있는 베옷을 풀어놓아 자유스럽게 다니게하라(11:44). 나사로는 무덤에서 되살아나는 기적뿐만 아니라 그동안 사지를 옥죄고 있었던 것들이 모두 벗겨지는 이른바 새로운 자유를 맛보는 기적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8:32, 10:10, 14:6).

(3)   나사로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11:45, 7:17). 그를 직접 보고자 원근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12:9-11). 그럴수록 나사로는 생각했다. 왜 자신에게 이와같은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했는가? 간혹 선지자들이 그 기적적인 치유능력으로 불치병자를 고치거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호흡이 끊어진 자를 다시 되살리는 경우는 어쩌다가 있어왔다(왕상17:17-24, 왕하4:32-37, 4:50-54, 7:11-15). 그렇지만 자신과 같이 완전히 시신이 무덤속으로 들어가서 사흘간 푹푹 썩다가 나흘만에 뼈에 다시 새살이 돋아나고 스스로 제 발로 걸어나온 경우는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 가운데에서나 존재하는 전설에 불과했던 것이다(37:1-10). 왜 이와같은 전설이 현실 세계에서, 그것도 자신의 삶속에서 실재상황으로 발생하게 된 것일까? 나사로는 예수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부활신앙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부활과 영생이 먼 천국에 가서나 있을 수 있는 종말에 관한 사건이 아니라 이를 믿기만 하면 당장 자신의 영속에 믿음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사건이라는 설명이었다(6:63, 11:23-26). 둘째로, 나사로의 몸이 되살아난 것처럼 앞으로 믿는 자들에게도 몸의 부활이 있게된다는 것이었다(11:15, 40). 셋째로,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그리고 승천과 재림으로써 믿는 자의 부활과 영생을 확실히 증명해 보이시겠다는 말씀이셨다(6:39, 54, 62-63, 11:41-42, 14:1-7). 넷째로,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며 그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앞으로 눈으로 보고서 알게될 때 자신의 친구들도 자신과 같은 공생애를 살 수 있게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친절한 설명이셨다(14:12-14, 24:45-49).   

(4)   나사로는 다시 얻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이 예언의 말씀이 모두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20:27-31, 24:46-48).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되고 삼일 후에 부활했으며 사십 일후에 베다니 자신의 집앞에서 승천하시었다(24:50-51). 이제 나사로 자신의 주님이 되신 친구 예수가 반드시 다시 재림하여 완전한 부활과 영생을 자신의 육체 가운데 실현시켜줄 것이라는 약속이 그의 남은 인생 가운데 언제나 귓가에 남아 있었다(1:11, 9:1). 그래서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뒤를 따라 예루살렘 다락방 모임에 참석했으며 120명이 성령세례받을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24:52-53, 1:12-15, 2:1-8). 비록 공부가 짧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중 먹고 사느라고 그의 수행 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초대 교회 설립과 복음 전파에 동참하게 된 것이 기뻤다. 어느듯 베다니의 그의 민박집이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행적을 이야기하는 장소가 되었다. 복음은 그렇게 베다니에서 요단강지역으로, 또 그 강변길을 따라서 북으로, 남으로,  나아가서 동편 광야 지역으로까지 자꾸만 퍼져나가고 있었다. 복음이 전파되어 나갈수록 나사로는 그리운 친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만큼 가까와지는 줄 알고서 사력을 다했다(24:14). 그리고 행복하게 베다니에서 소망가운데 눈을 감았다. 이제 그에게는 다시는 죽지 아니하는 완전한 부활만이 기대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