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18(손진길 소설)
서기 2004년 4월에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정종수가 당선이 되어 여의도에 입성하게 된다. 정식임기는 2004년 5월 30일부터 시작되어 2008년 5월 29일에 끝나게 되어 있다;
제17국회의원선거는 한국총선의 역사에 있어서 특이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2003년 2월 25일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그해 3월 12일에 국회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가결됨에 따라 헌법재판소에서는 5월 14일에 탄핵안을 처리하겠다고 결정하고 그때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정지를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7대 총선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국무총리 시절에 치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신당 열린우리당이 전체 299석 가운데 과반수 의석인 152석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고 만다;
소위 ‘여대야소’(與大野小) 정국이 등장하는 대변혁이 발생하자 헌법재판소는 탄핵안을 기각하고 만다.
그와 같은 민심의 향배에 따라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의석은 133석에서 121석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새로이 구성이 되는 제17대 국회는 전체의원의 3분의 2가 초선이다. 자연히 초선의원의 입김이 막강한 국회가 되고 있다.
그와 같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시대에 경주에서 정종수가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처음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정종수는 감회가 남다르다. 왜냐하면, 그는 검찰청에서 국회로 파견근무를 나와 2년간 임기를 끝내고 10년 전에 복귀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일개 검사였으나 이제는 그 신분이 국회의원이다. 공무원이 정식으로 정치인이 된 것이다. 일설로는 국회에서는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을 의결할 수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로 그 권한이 막강하다.
그러므로 정종수는 여의도 국회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크게 펼치려고 각오를 한층 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년을 지내고 있는 사이에 정종수는 지역구인 경주를 방문할 때마다 그 옛날 철없던 시절에 노동 골목길에서 동무들과 뛰놀던 그 시절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따라서 그는 서울 종로구 법륜사에서 오래 기거하고 있는 대처승 김법승에게 연락한다; “법승아, 나는 정종수이다. 오래간만이구나. 나는 여의도에 입성하여 일년을 지내고 보니 너도 보고 싶고 그 옛날 우리 4총사의 얼굴이 전부 보고 싶다. 내가 여의도로 너희들을 초청할 것이니 한번 만나는 일을 주선해다오… “.
김법승이 반갑게 말한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제가 창윤이 형에게 먼저 연락할 게요. 하지만 송원길은 지금 시드니에 이민 가서 살고 있으니 그를 국내로 불러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그렇지만 최대한 조속히 만날 수 있도록 조치할 게요. 그러면 그때 봅시다… “.
그 모임이 2005년 초여름에 성사가 된다. 송원길이 호주에서 한국까지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달려와 주었기 때문이다. 송원길은 호주로 가족을 솔거하여 이민을 떠난 지 5년이 지나 한국을 방문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중이었는데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의 시절이다.
게다가 고향 경주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정종수가 국회의원이 되어 여의도에서 일년이상 지내고 있다. 그러한 때에 송원길이 우창윤 및 김법승과 더불어 여의도로 가서 의원회관에 들린다;
그런데 회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방호원들이 송원길의 얼굴을 보고서 깜짝 놀란다. 그들은 5년전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자주 보던 송원길을 다시 만난 것이다. 따라서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송원길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있지만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송원길은 의원회관에서 정종수 의원만 만나기를 원하고 본관에 있는 국회사무처와 상임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같이 근무하던 입법고시 한두 해 선배들이 벌써 차관급인 입법차장과 행정차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입법고시 동기들이 거의 차관보급인 수석전문위원이 되어 있는지라 구태여 그들을 만나서 옛날 일을 되살리고 싶지가 아니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종수 의원실을 방문한 우창윤 변호사, 김법승 스님, 그리고 호주에서 온 송원길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먼저 우창윤이 정종수를 보고서 말한다; “우리를 의원회관으로 초청해주어 고맙다. 종수 네가 국회의원으로 일한 지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세월이 참 빠르다… “.
멀리서 참석한 송원길이 한마디 한다; “종수형, 축하해요. 제가 관심이 있어서 국회 출입기자들의 평가를 보니 종수형의 의정활동 점수가 아주 높더군요. 그 옛날 국회에서 파견관으로 일한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정종수가 반가워하면서 말한다; “원길아, 멀리서 참석해주어 정말 고맙다. 옛날 내가 파견관으로 국회에서 일하고 있던 시절에 원길이 네가 많이 도와주어서 고마웠다. 사실은 창윤이나 원길이 너희들이 먼저 이 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이 맞을 지도 몰라. 너희들이 고사하니 대신 내가 일하고 있는 것이지… “.
그 말에 김법승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한다; “종수형, 국회의원으로 여의도에서 일년간 지내시더니 이제는 아주 정치적인 발언을 잘 하시네요. 그거 지금 하신 말씀이 소위 ‘립 서비스’이지요,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모두들 하하라고 웃는다. 한참 웃은 다음에 정종수가 앞장서서 그들을 데리고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 일식집 ‘이어’(二魚)로 간다. 송원길은 그 상호를 볼 때마다 성경 복음서에 나오는 ‘오병이어’ 생각이 난다. 아마 거기서 따온 이름으로 짐작이 되는 것이다;
그들 4총사의 나이가 벌써 50대 중반이다. 따라서 소화에 부담이 없는 회나 지리가 제격이다. 별실에서 즐거운 회식자리를 가지게 되자 자연히 화제가 그 옛날 고향 경주에서의 추억이 되고 있다.
정종수가 먼저 말문을 연다; “나는 우리 4총사가 노동 골목길에서 뛰놀던 그때가 간혹 그립다. 나의 지역구 사무실이 경주시내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라 그곳이 별로 멀지 않거든. 하지만 지금은 우리들이 살던 집들 가운데 일부가 경주제일교회 부지로 들어가 버렸다. 원길이 네가 살던 집이 가장 먼저 들어가 버렸어… “;
그 말을 듣자 송원길이 말한다; “그런가요.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형집에서 사시겠다고 고향을 떠나셨기에 그때부터 그 골목길을 방문하지 아니했어요. 그동안 그러한 변화가 발생한 모양이군요. 종수형, 소식 전해주어서 고마워요… “.
이번에는 김법승이 말한다; “나는 부모님이 교편에서 물러나시고 경주 외곽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시기에 자연히 시내 중심지에 있는 그 골목을 방문하지 아니하고 있어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새삼스럽네요… “.
우창윤도 그리운 듯이 말을 보탠다; “나도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온 이후 경주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어. 언제 시간이 나면 한번 옛날 뛰놀던 곳을 찾아보아야 할 터인데… “;
그 말을 듣자 정종수가 말한다; “내가 국회의원을 오래 지내고 있으면 나중에 우리가 환갑을 맞이하여 ‘고향방문’의 기회를 가지는 것이 어떨까? 대충 2010년이면 될 것 같은데. 그러니 우리 4총사가 5년후에 고향 경주에서 다시 만나는 것으로 지금 약속들을 하자고, 어때… “.
그날 그 회식자리에서 워낙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좋아서 그런지 모두들 천진난만에게 축배를 들면서 그렇게 약속하고 만다. 그렇지만 그 약속은 쉽게 지켜지지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정종수가 재선에 실패하고 말기 때문이다.
회식이 계속되는 중에 김법승이 우창윤을 보고서 말한다; “창윤이 형, 형은 로펌을 가장 성공적으로 경영한 법조인으로 유명하더군요. 일전에는 기사를 보니 모교인 서울대 법대의 동창회장을 맡고 있고 기타 사회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고요. 그래서 한번 드려보는 말씀인데요… “.
김법승이 말꼬리를 흐리고 있자 정종수가 말한다; “법승아, 무슨 좋은 생각이 있어서 창윤에게 권하고 있는 것이냐? 서슴지 말고 말해보아. 좋은 의견이면 나도 한몫 거들 수가 있다!… “.
그러자 김법승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에이, 종수 형은 안돼. 정치인이 맡을 수는 없는 자리이지… “. 그 말에 송원길이 나선다; “법승아, 정치인은 안되고 돈을 많이 번 창윤이 형은 된다고 하면, 그 자리가 도대체 무슨 자리인데 그러니?... “.
그제서야 김법승이 스님 답게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무슨 사찰에 시주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경주시내에 있는 우리 모교인 국민학교에, 아차 이제는 초등학교이지… 그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힘쓰는 동창회장의 자리를 창윤이 형이 한번 맡아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것이지!… “.
그 말을 듣자 정종수가 박수를 치면서 크게 웃으며 말한다; “좋은 생각이야. 우리 모교인 국민학교 출신 가운데 아마도 창윤이가 서울에서 가장 크게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벌었을 걸… 그러니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하여 이제는 투자를 하고 돌보는 것이 좋고 말고. 내 친구 덕분에 나도 학부형들의 지지표를 많이 모을 수가 있겠는데, 하하하… “.
그날 회식자리가 끝나고 다시 의원회관으로 와서 정종수 의원실에서 다과를 즐긴다. 그때 정종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주는 지금 시가지가 크게 변모하고 있어. 중심지역의 태반이 고적지 공원조성지역으로 편입이 되고 그 대신에 황성과 충효 등 변두리가 주택지구로 바뀌고 있지. 나중에 고향 방문하면 깜짝 놀라게 될 거야… “;
송원길은 그들과 헤어져서 서울거리를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독백을 하고 있다; “고향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종수형이 말하더니 서울은 더 많이 변하고 있구나!… 나는 벌써 외국인이 되고 있는 것 같아… “.
송원길의 혼잣말이 한숨과 더불어 이어지고 있다; “하기야 나도 얼마나 많이 변하고 있는가?... 모두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사바 사바 사바하 주문처럼… “. 그들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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