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사바 사바하14(손진길 소설)
5. 21세기를 맞이하는 4총사의 사바 사바 사바하
서기 1997년 가을에 입법부 공직자인 송원길이 강남에서 죽마고우 4총사 모임에 참석하고 양재동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온다. 그는 그날 늦은 시간까지 서재방에서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한참만에 송원길이 독백하듯이 중얼거린다; “창윤이 형은 사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진작에 패스했지만 그 좋다는 판검사를 하지 아니하고 돈을 벌겠다고 국제변호사와 세무변호사가 되어 대기업 고문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리고 벌써 큰 돈을 벌었다. 이제는 자신의 로펌까지 차리고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
송원길의 독백이 이어지고 있다; “종수 형은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검사가 되어 초반에는 지방인 경주지청에서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서울지방검찰청에 발령을 받아 중앙에서 오래 근무했다. 국회파견을 다녀와서는 뜻한 바가 있어 검사생활을 정리하고 이제는 고향 경주로 내려가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고향에서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
그날따라 송원길의 상념이 길어지고 있다; “동년배 법승이는 학부에서 뒤늦게 종교학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불교철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가 되었다. 그는 일반인에게 불교에 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좋은 서적을 펴내어 학승으로 그 이름을 날리고 있다. 모두들 잘된 것이야. 하지만 나는… “;
그날 밤 깊은 시름에 잠긴 송원길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1980년대초부터 국회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3급 고위직 공무원이 되어 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정치학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풀리지 아니하는 문제의식에 젖어 있다. 어찌하면 좋을까?... “.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송원길을 부러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기사로 근무하다가 뒤늦게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입법고시를 패스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1981년 봄부터 송원길은 위원회 실무진으로 그리고 국회사무처 계장과 과장으로 승승장구를 하여 이제는 국장급의 간부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동안 잠시 해외유학도 다녀오고 국방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안보학 석사가 되었으며 그 다음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정치학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국회에서도 그는 남이 부러워하는 캐리어를 가진 인물이다. 왜냐하면,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현장경험이 있는 자로서 사회과학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송원길은 석사학위 2개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있다. 그 정도의 경력과 학력이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송원길은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인물이다;
첫째로, 그가 1980년대 초반기에 경제관계위원회에서 정부부처의 개정법률안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특허청의 젊은 사무관이 특허법개정안을 설명하다가 다음과 같은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송 조사관님, 지금 제가 설명을 드리고 있는 이 개정법률안을 가지고 저는 일주일 후에 미국 국무부로 가야합니다. 그 이유는 그곳 특허법 담당자에게 한국의 특허법 개정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사전에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송원길이 깜짝 놀라서 귀를 기울인다. 그 젊은 사무관의 한숨 섞인 음성이 들려온다; “ 저는 그것이 당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정부가 특허법을 일부 개정하는데 어째서 그것을 실무진이 미국까지 가서 미국정부의 관료에게 사전설명을 해야 하나요? 우리 대한민국은 주권국가가 아닌가요? 저는 서글픈 생각이 들고 원통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송원길은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깊은 시름에 빠지게 된다. 그의 문제의식은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 것만 같다.
둘째로, 1980년대 중반기에 송원길은 유럽으로 가는 의원친선협회 방문단을 수행하는 일을 몇 차례하고 있다. 그때 그는 파리와 로마의 백화점과 음식점을 들리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가 목격한 것이 다음과 같이 가히 충격적이다.
(1) 첫째,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계산대 앞에 줄을 길게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계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백화점 직원의 일처리가 느리기 그지없다;
(2) 둘째, 로마의 경우 손님들이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거의 3시간 하고 있다. 그 식사량이 한국사람의 두배 이상이다.
(3) 셋째, 파리와 로마에서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자면 서둘러야 한다. 왜냐하면, 오전에는 9시부터 정오까지 3시간, 오후에는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 모두 합하여 하루에 5시간만 개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나 이태리의 국민소득이 개인당 한국인에 비하여 여러 배이다. 그것을 보고서 송원길이 혀를 내두르며 머리를 흔든다. 그의 결론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모두들 선전하지만 사실은 한국인이 그토록 죽기 살기로 일하여 그 정도밖에 못살고 있다고 하는 그것이 기적인 셈이다… “라는 것이다.
셋째로, 송원길이 1990년 여름에 국회통일특위 의원들을 수행하여 통일을 앞두고 있는 동서독의 땅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간담회 자리에서 동서독의 관료 및 연구원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우리는 아무도 이렇게 빨리 통일이 이루어지는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 그것은 서독이나 동독보다 더 큰 힘이 독일의 통일을 획책했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리고 공산주의 경제의 파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동독 공산당 연방정권이 해체되고 지방정권이 주민투표로 서독과 연합하여 하나의 독일연방을 구성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동독연방이라는 공산당정권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동독의 토지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동독 인민들이 먹고 살 방도가 없어서 입니다… “.
엄청나게 충격적인 진술이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으로 갈라지기 전 곧 히틀러 시대만 하더라도 곡창지대인 동독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로 전체 독일백성이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독일인구의 4분의 1에 불과한 동독의 인민이 지금은 배가 고픕니다. 그 이유는 동독 토지의 생산량이 25%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지요… “.
한국국회의 조사단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자 그들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쉽게 말하자면 공산주의이론에 따라 중앙계획경제를 오래 시행하다가 보니 인민들의 집단적인 태업으로 인하여 밭에서 생산량이 3분의 1로 떨어지고 또 유통과 배급과정에서 3분의 1이 썩어버리고 말았지요. 그러니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경제이론이 잘못된 것이지 저희들이 동독을 잘못 운영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
넷째로, 1991년부터 핵폐기물 처리장을 구하지 못하여 한국정부가 고심 중에 있다. 따라서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에서는 구미지역 및 일본의 핵폐기물처리실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방문길에 나선다. 그때 실무자로 수행을 한 송원길 서기관이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1) 하나는, 한국내에서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재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라늄235 농축원료에 섞여 있는 우라늄238 동위원소가 핵분열과정에서 플루토늄239로 바뀌고 있는데 그것을 가공 처리하여 추출하게 되면 플루토늄 핵폭탄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유엔에서는 한국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핵폐기물을 국내에서 함부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서 그것을 감시 감독하고 있다.
(2) 더더구나 핵폐기물 재처리시설을 한국이 아예 가지지 못하도록 엄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핵폐기물 가공처리공장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안보상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나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와 달리 한국은 그 재료가 전혀 없는 것이다.
(3) 또 하나는, 핵폐기물이라는 쓰레기를 영구 폐기하는 방법은 깊은 지하 갱도 암반 위에 파묻고 그것을 콘크리트로 완벽하게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반을 가진 폐광을 찾아서 은밀하게 정부가 그렇게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있다고 계속 대내외에 과대선전을 하고 있다.
(4) 그것은 비핵화정책을 충실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전세계에 알리고 있는 일종의 국제적인 홍보의 일환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송원길은 오랜 세월 그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그는 국제정치학을 배우고 연구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여 정치학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섯째로, 1992년말에 치루어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이 되어 이듬해 2월부터 직무를 시작하게 된다. 그때 김대통령의 눈 밖에 난 재벌이 바로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다. 그는 정치자금을 계속 대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통일국민당을 급히 결성하고 선거운동을 하였으나 16%정도의 득표로 3등밖에 하지를 못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에게 도전한 재벌을 그냥 둘 수가 없다. 그것을 보고서 송원길은 한국의 정당정치는 물론 정당의 체계가 굉장히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발전이 요원한 것이다. 적어도 정치발전과 정치적인 안정을 견인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정당체계가 되자면, 전국정당, 정책정당, 정권교제가 가능한 정당, 그리고 정치적인 인물을 키우는 정당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요원한 것이다;
여섯째로, 1994년 7월에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도록 합의가 되고 있다. 그런데 지극히 공교롭게도 회담 며칠 전에 김일성 주석이 급서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송원길은 그 사망시기가 한민족에게 가지고 오는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 문제를 국제정치학적인 이론으로는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일까?...
일곱째로, 송원길이 국회에서 만난 인물 가운데 천재 중의 천재가 이태섭 위원장이다;
그런데 서울공대 대선배이기도 한 이태섭 위원장이 그만 1991년에 발생한 수서사건에 연루가 되어 1992년 2월부터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 이태섭 위원장이 옥중에서 남긴 회한에 찬 한마디가 신문지상에 가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 내용이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인생을 거꾸로 살아서 지금 감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과학자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우의 사장이었지요. 마지막에는 정치인이 되었고요. 그 결과 이제는 죄수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순서를 거꾸로 하여 인생을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국회에서 실무진으로 오래 근무하고 있는 송원길은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알 것만 같다. 한국에서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생활을 한다고 하면 국가에서 받는 연봉과 각종 지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것은 절반만 충당하고 있으므로 그만큼 자신이 발로 뛰어서 돈을 만들어 충당해야만 한다.
만약 자그마한 연구소라도 개인적으로 차려서 제대로 정부의 정책과 예산을 분석하자면 그 활동비가 사비로 엄청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적인 의욕이 앞섰던 이태섭 위원장이 일부 경제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 돈을 충당하다가 그만 수서사건에 연루가 되고 만 것이다.
결국, 국가는 정치인이란 남의 돈에 손을 대지 아니하면 정치를 할 수가 없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같은 이치를 깨닫게 된 송원길은 장차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포부를 일찍 접어버리고 만다.
그것보다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하는 한국이 낳은 천재 이태섭 위원장의 말을 그가 자주 곱씹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원길은 과연 어떠한 인생을 그 대안으로 설계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깨닫고 있는 인생의 길, 궁극적으로 그 마법과 같은 ‘사바 사바 사바하’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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