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60. 나사렛 예수(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29. 17:28

60. 나사렛 예수

 

(1)   소년 예수는 어릴 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서 이상하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목수 요셉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사춘기시절 자신의 정체성에 위기를 느끼게된 소년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 사실을 물었다. 그가 기대한 것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답변이거나 아니면 요셉이 아닌 그 어떤 사람의 이름, 즉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알고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답변은 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마리아가 처녀시절 하나님의 계시로 그 분의 영을 받아들이자 자신의 몸에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는데 그 자가 바로 예수 자신이라는 놀라운 사실이었던 것이다(1:18-25, 1:26-38). 소년 예수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당연히 자연인 예수는 불가능했다. 그가 아는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영과 인간 육의 합일체로 자궁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창조가 아닌가? 창조주 하나님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항상 새로운 창조를 계속해나가고 계신다는 그 분의 속성과 능력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아니할 때에만 이해가 가능한 일인데 이와같은 하나님에 관한 엄청난 지식과 믿음의 성숙이 소년 예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어머님 말씀이 가능한 사실인지를 확인하기위하여 히브리 성경 양피지를 구해서 밤낮 읽는 도리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윗의 자손과 아론의 자손들이 친척들이었기에 갈릴리 시골이었지만 그들은 말씀 두루마리를 제법 간직하고 있었다. 예수는 친척들의 것을 모두 읽은후 회당을 출입하였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더많은 두루마리와 말씀에 밝은 랍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읽고서 모르는 부분은 랍비들에게 그 뜻을 물었다. 그들의 전통적인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주석들은 참고할 만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예수가 진정 알고 싶었던 하나님의 깊은 의도, 곧 자신을 이 세상에 특이하게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수천년간 그 많은 말씀을 계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근본 취지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예수는 스스로 그 해답을 발견하고자 묵상과 기도에 힘써야만 했다.

(2)   소년 예수는 모세오경을 읽고서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그들은 생물학적인 부부관계로 탄생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담과 하와는 영이신 하나님이(1:2) 흙 또는 인간의 갈비뼈를 취하여 먼저 사람의 모양을 조각한 후 거기에 하나님의 형상과 생기를 불어넣자 탄생하게된 존재였던 것이다(1:26-27, 2:7, 22-25).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주선으로 인간의 가정생활이 시작되고(2:22b-25)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하여 자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4:1-2, 5:3-5). 그렇다면 예수 자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담과 하와의 경우와 비슷했으나 약간 달랐다. 하나님이 흙이나 사람의 갈비뼈를 취하신 것이 아니라 처녀의 난자와 자궁을 취하여 자신을 낳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생기뿐만 아니라 자신은 성령강림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난 존재였던 것이다(1:35a). 그리고 그 정체성의 핵심인 씨앗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1;35b, 1:14). 더구나 그가 이 땅에서 인간의 아들이 되어(7:13-14, 3:13) 성취해야만 하는 대업이 이미 히브리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19:25-26, 24:44-47, 3:16). 그것은 겉으로 보면 다윗의 위를 얻는 유대인들의 왕이었지만(2:2,6)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그가 건설해야만 하는 나라는 유다 왕국이나 다윗 제국의 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받으실만한(고전15:24) 만민평등과 구원의 새로운 제사장 나라, 거룩한 성도들의 영원한 나라였던 것이다(7:18, 22, 27, 19:5-6, 1:5, 42:5-6, 8-9, 18:36-37).

(3)   이와같은 사실들을 깨닫기까지 소년 예수가 기울인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가 가난한 집안의 장자로서 아버지 요셉의 목수의 일을 도와야만 했기에 학업을 쌓을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6:3). 그래서 소년 예수는 명절 때 모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들르게 되면 그 곳 랍비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질문과 답변을 계속했으며(2:41-47) 고향 갈릴리 나사렛에서도 틈만나면 모세오경 뿐만 아니라 선지서와 시편 등까지 정신없이 읽게 되었다(24:44). 그 결과 그의 실력은 땅에 율법을 줄줄이 쓸 수 있는 경지가 되었으며(8:5-6) 히브리 성경이 자신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는 귀절들을 모두 찾아서 암기할 수 있게 되었다(24:46-47, 11:2-6, 12:38-42, 24:15-22).

(4)   나사렛 예수의 족보는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셉의 족보를 따르고 있다(1:1-17, 3:23-38). 그런데 이 족보는 두 가지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다. 첫째는, 생물학적인 족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의인 요셉이(1:19) 맏아들로 받아들인 예수가(2:4-7) 다윗의 후손으로 간주되고 있기때문이다. 그 뜻은 이 족보가 혈통적인 가계를 넘어서는 사람의 뜻, 양자의 신분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1:13, 8:15). 두 번째는, 이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그 족보의 기원을 하나님의 아들 아담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3:38). 그 의미는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1:12-13) 새로운 시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나사렛 예수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과 대업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예수가 공생애 기간중 성취하고자한 것이 바로 자신과 같은 깨달음을 만민이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진짜 아버지이며 그 분이 원하시는 나라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적임을 만민이 깨닫고 실천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요컨대, 이와같이 할 때 누구나 이 새로운 족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삶의 본을 보이기 위하여 나사렛 예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육체를 화해와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바쳤다(14:36). 그리고 부활후 얻은 그의 승리와 그의 나라까지 아버지께 바쳤다(고전15:24). 이에 따라 그가 궁극적으로 얻은 것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이었다(21:33, 2:32-36). 이것이 믿음과 구원의 길임을 나사렛 예수는 자신의 공생애와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만민에게는 예수의 깨달음과 전철을 따르느냐 아니하느냐하는 선택만이 이제 남아있게된 셈이다(3:17-18).  이것은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성취된 것이지만 그 적용은 소급적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있어서도 이에 대한 예언과 계시가 너무나 풍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메시아사상과 부활사상(19:25-29, 11:1-10), 제사장나라와 하나님나라(2:24-25, 19:5-6, 12:3, 7:13-14, 19:23-25), 그리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영생하시는 하나님 발견(21:3, 22:12-18) 등이 그것들이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의 깨달음과 성취는 믿음안에서 소급적인 효력을 지니는 영원한 구원과 영생의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