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목수 요셉
(1) 청년 요셉은 자신의 집안이 상당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변방 갈릴리 나사렛 작은 마을에서 근근히 목수 일로 살아가면서도 “다윗의 자손”이라는 자긍심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집안이었기 때문이다(마1:20, 눅1:27). 그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자신의 배필을 정통 레위 집안에서 맞아들이기로 주선되었다. 그녀가 바로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의 친족이 되는 마리아였다(눅1:5, 36). 사실 “다윗의 자손”과 “아론의 자손”과의 연합은 유다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옛날 유다 왕국 자체가 다윗 왕가와 레위 제사장 가문에 의하여 유지되었으며 왕국이 망한 후에도 백성들의 지도자는 여전히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다윗의 자손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가문의 예수아가 뜻을 같이함으로써 백성들을 이끌고서 제2성전을 완공시킨 사례에서도 능히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과 “아론의 자손”이 다시 연합한다면 그 줄기에서 일찌기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바 있는 “영원한 왕권을 가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사9:6, 11:1, 삼하7:11-29).
(2) 그런데 정혼한 후 넉달쯤 되었을 때 처갓집을 방문했던 요셉은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혼녀 마리아에게서 아기를 잉태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눅1:56). ‘두 집안 사이에 약혼만 했을 뿐 아직 혼사를 치루거나 합방한 사실도 없는데 어떻게 처녀가 임신을 한다는 말인가?’. 요셉은 기가 막혔다. 이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가문의 수치가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마리아는 돌에 맞아죽기 십상이었다(신22:23-24). 그래서 요셉은 은밀히 약혼을 파기하는 선에서 이를 수습하려고 생각했다. 그와같이 결심하게 되기에는 자신의 처지와 가문 그리고 마리아에 대한 깊은 생각이 두루 작용했다. 왜냐하면, “다윗의 자손”들이라고 말하고있지만 자신의 가문은 족보상 확실한 흔적을 드러내지 아니한채 시골에서 숨어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족보상 “시조가 다윗 왕, 중시조가 스알디엘의 양자인 스룹바벨” 정도라고만 명기했을 뿐 기타 조상들의 이름은 알려진 유다 왕의 이름조차 따르지 아니했다. 더구나 히브리 성경 두루마리 역대기편에서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대상3:10-24) 다윗 왕의 알려지지 아니한 서자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눅3:23-31절의 족보가 마1:6-17절의 족보보다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슴). 이와같이 이상한 족보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나라 잃은 왕손의 직계가 이방 제국의 치하에서 그리고 다윗 왕조가 아닌 레위 왕가의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숨어서 지내야만 하는 가문, 그것도 계속 숨을 죽이고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하는 가문이었기에 남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소문의 진원지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되었다. 그리고 정혼녀 마리아의 평소 당차고 의로운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요셉은 그녀도 구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요셉은 조용하게 파혼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3) 그렇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요1:13). 요셉의 가문이나 마리아의 가문을 보신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 가문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위적인 연합을 보고 계신 것도 아니었다. 그 분은 요셉의 결심 가운데 깊이 자리잡고 있는 그 속사정과 궁극적인 의도를 두루 살피고 계셨다(요1:12-13). 첫째는 소문을 두려워하며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다윗 가문의 딱한 속사정을 보셨다(출2:23-25). 그리고 둘째는 은밀하게 파혼 의사를 신랑측에서 먼저 전달해줌으로써 서로의 가문도 살리고 마리아도 살려줄려고 하는 요셉의 착하고 의로운 마음을 하나님은 보시고 계셨다(마1:19). 이 정도의 인물이라면 메시아의 의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신 것이다. 이것이 다윗 왕의 가계를 포함하는 수많은 “이새의 줄기”(사11:1, 삼상16:10-13) 가운데 특별히 목수 요셉의 집이 메시아의 집안으로 유일하게 선택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자을 보내시어 요셉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요셉아 너는 진실로 ‘다윗의 자손’이구나.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도록 하라. 그녀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악에서 구원할 자이므로 그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라. 이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너와 예수와의 관계속에서 앞으로 성취되어나갈 것이다”(마1:20-23).
(4) 요셉의 나머지 인생은 예수와의 관계속에서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을 온전히 성육신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행동과 충동을 자제했다. 예수가 태어날 때까지 마리아의 순결을 지켜주는데 최선을 다한 것이다(마1:25). 둘째로, 예수가 태어나자 자신의 맏아들로 인정해 주었다(눅2:7). 그리고 아기 예수를 살리기 위하여 타국 애굽으로 피난하였으며 그 곳에서의 힘든 이민생활을 감수했다(마2:14-15). 셋째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온 후(마2:21-23) 아내 마리아와의 사이에 아들 네 명과 딸들이 계속 태어났지만(막6:3) 예수를 자신의 정식 장자로 삼은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 때문에 지차들이 형 예수를 그다지 곱게 보지만은 않았지만(요7:5) 그와 같은 불편한 가족관계도 가장인 요셉은 묵묵히 감내했다. 넷째로, 요셉은 예수가 열두 살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였을 때 이를 섭섭해하거나 마음에 담아두지 아니했다(눅2:49-51). 그 대신에 살아가면서 예수의 성장과 지혜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했다(눅2:52). 하나님은 자신에게 좋은 가문과 좋은 가문출신의 아내를 주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셉 자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백성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감사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오게하는데 자신의 가문도, 아내의 가문도, 자신의 가정도, 그리고 자신의 인생도, 모두가 쓸모가 있었다는 그 사실이 놀라운 것이었다. 이와같은 깨달음속에서 요셉은 자신의 사명에 만족해하면서 그리 길지 아니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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