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78강(요8:26-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29. 17:24

요한복음 강해 제78(8:26-3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67()

 

예수님은 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계시는가?(8:26)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고 있는 독생자가 인간으로 태어나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4). 그러므로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영이시며 신성만을 지니고 있으므로 육신의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절대선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4:24, 8:3). 반면에 예수님은 인간의 욕구를 인성으로 함께 지니고 있기에 완전한 신성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점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0:18). 육체를 가지고 인성을 지니고 있기에 예수님 안에서 죄의 소원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7:18).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육체의 욕구대로 살고자 하는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7:19-21). 예수님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다스리고 있을 뿐입니다(7:22-23, 8:2).

그러한 자신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평소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의 아들, 인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51, 3:13-14).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인간이기에 예수님 역시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에 앞서서 뜨거운 감정이 먼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도 있지만 자신을 먼저 보호하려는 이기적인 악한 감정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판단이 완전히 선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예수님이지만 유대교지도자들이 계속 자신을 괴롭히면 그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고 그것이 자신의 판단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절대선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선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예수님이 그러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인 성도들도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정확하게 전하며 그 말씀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판단을 보류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8:28)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기에 예수님에게 사후에 지극히 큰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지고 있습니다(15:1, 2:8-11). 그것이 부활과 승천이며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5:13).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8:28). 참고로,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가운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가 있는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기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생각을 해보면,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에게 부활과 승천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인생을 살아갔기에 부활과 승천이 이루어졌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상급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이 행하면 될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3-14).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가 생명의 부활로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말씀입니다(5:29, 21:7).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과 계속 동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인생길에 하나님이 계속 동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29). 그 말은 만약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행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이나 감정을 앞세우게 되면 하나님의 동행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나가는 작업이 항상 선행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육신의 생각을 희생시키는 산 제사입니다. 참고로,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생길에 함께 하심으로 어떠한 역사가 발생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믿게 되는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8:30). 생각을 해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동행하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죄와 죽음을 관장하는 사탄의 권세가 깨어진 것입니다. 만약 창조주의 임재와 동행의 역사가 없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패배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창조주의 능력은 죽음에서 부활로 나타납니다.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세계를 부수고 악한 영의 지배를 강화하고자 하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가 사탄과 악한 영들의 권세를 무찌르고 아름다운 세상을 재창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시(摘示, 잘 지적하여 보여줌)하고 있습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20:14-15),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