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70강(요7:31-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25. 00:03

요한복음 강해 제70(7:31-36)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30()

 

유대인 중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일 수도 있다고 믿게 되는 이유(7:31)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일 수도 있다고 믿게 되는 이유를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7:31). 예수님이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성전에서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왔으며 하나님의 교훈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7:14-18). 그러나 청중들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구약상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는 여러 표적을 보았으며 성전에서 말씀하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 말씀에 대한 풀이를 들었지만 요지부동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신기한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선지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있는 독생자를 오로지 인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만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있는 창조주의 능력도 그저 기이한 것으로만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층 업그레이드가 된 경건한 유대인들의 평가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이 대단하고 그가 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일 수도 있는 것이다”(7:15, 31). 단지 그 능력의 행함이 그리스도의 수준에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보는 정도입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경건한 유대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세상의 구원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르침 때문입니다. 야훼 하나님만을 전심전력으로 섬겨야만 축복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유대교의 교리입니다. 그들이 준수하고 있는 모든 율법은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에게는 아들도 없으며 창조주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있는 독생자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서 세상을 창조하셨지 그 누구와도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주장하고 있는 복음의 대전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1-4)는 말씀은 유대교인들이 보기에는 허구이며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 점은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 율법서 신명기의 다음 구절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유일한 야훼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6:4-7),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야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20). 야훼 하나님과 창조주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독생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히브리 성경에서 그 근거가 박약한 것입니다. 그리고 독생자의 성육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체포하려고 하는 진짜 이유(7:32)

 

  성전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경건한 유대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나사렛 일파의 주장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주장 때문에 그들의 유일신 사상이 흔들릴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한 마디로, 나사렛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신적인 능력을 계속 발휘하게 되면, 그 표적으로 말미암아 민심이 예수에게 쏠리지나 아니할까 그 점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교리와 정면으로 어긋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유일신 사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두 분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신론적인 것입니다. 예수님 일행은 하나님의 아들도 사람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 창조주만이 행하시는 일을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신성모독이며 참람죄입니다(5:17-18). 따라서 나사렛 예수는 모세의 율법에 비추어보면, 당연히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처벌의 대상입니다(20:5-7, 22:18, 20). 요컨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무덤 속에서 다시 깨어나는 기적이 없는 한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단지 놀라운 영적인 능력이 나사렛 예수로부터 발휘되고 있는 것이 상당히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귀신이 쫓겨나고 병마가 떠나가는 신기한 기적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면 예수의 주장에 현혹되어 그를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또 유대인의 왕으로 떠받들고서 로마황제에게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그 점이 지극히 근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빈약한 유대인들의 힘으로써는 로마제국의 군대를 상대할 수가 없는 것이 상식인데 만약 그러한 민란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상되는 동족들의 큰 희생을 미연에 방지하자면 한 사람 나사렛 예수의 희생이 요구되고 있을 뿐입니다(11:50). 결론적으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님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이유(7:33-36)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선지자가 스스로 무덤 속에서 되살아나는 경우를 보지를 못했습니다. 단지 금방 죽은 자를 되살려내는 선지자의 기록을 히브리 성경 두루마리에서 보았을 뿐입니다;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 불리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러한 능력을 선보인 것입니다(왕상17:22, 왕하4:33-35). 선지자들이 하나님에게 간절하게 기도하여 백성들에게 보여준 기적이 거기까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께 돌아갈 것이며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까지 백성들에게 보내어 줄 것이라고 참으로 광오(廣傲, 크게 오만함)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7:33-34, 38-39).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입장으로서는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것도 금시초문(今始初聞, 전혀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만이 성령을 사람에게 보내어줄 수가 있는데 그 약속을 나사렛 예수가 하고 있으니 정신이 나간 선지자라고 속으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사도 요한은 심정이 담담합니다. 선지자의 부활도, 성령님의 강림도 모두 체험을 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20:19-23, 2:1-4, 8:14-17). 이제 팔십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이 주님의 품에 안겨서 부활, 승천하고 영생의 하나님께 돌아가는 영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13:23, 21:1-8, 22:20). 자신의 한 평생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가를 새삼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부활의 신앙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동족들에 대하여 요한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도 요한은 애정을 가지고 그 옛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던 동족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7: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