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67강(요7:16-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24. 00:39

요한복음 강해 제67(7:16-18)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2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성전이나 회당에 들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곳에서는 랍비들이 히브리 성경 두루마리를 읽고서 먼저 하나님 말씀의 뜻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자세하게 그 뜻을 전통적인 히브리 사상과 주석에 의거하여 풀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러한 말씀의 선포, 나아가서 말씀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가르침의 경지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생도들이 랍비 가운데 큰 스승을 찾아가서 오랜 세월 배워야만 가능합니다. 그와 같은 각고의 노력과 배움이 없이는 감히 성전이나 회당에서 히브리 성경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고 나서 그 말씀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과 교훈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방의 회당이 아니라 유대교의 총본산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것도 매주 찾아오는 안식일이 아니라 일년에 단 세 번 존재하는 명절 가운데 하나인 초막절 기간 동안에, 예수님이 히브리 성경 두루마리를 펴 들고서 곧장 놀라운 하나님 말씀의 뜻을 교훈으로 풀어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7:14-15). 그래서 유대인들이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경이로운 일이 가능한지 서로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가말리엘과 같은 랍비 큰 스승에게서 배우지 아니하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풀이와 그 속에 숨어 있는 영적인 교훈이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가지고 전파되어 오는지 그것이 놀라운 것입니다(22:3). 여기서 예수님의 교훈을 듣게 된 경건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그저 단순히 예수님이 히브리 성경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글을 읽을 줄 알고 그 뜻을 주석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감탄을 하고 있다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7:15).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글의 의미를 영적으로 정확하게 풀어서 생명력 있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탄복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의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7:16).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독생자이십니다. 아버지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으로 들었던 분이십니다(5:20).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지금 풀어서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생명의 말씀이 시공간에 갇히어서, 그것도 백 년 안팎의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교통하시며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14:14:26, 16:13-15). 영생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를 유한한 인간의 경험과 안목으로 깨닫고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성령의 감동입니다. 그 감동이 성전 안에서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큰 감명을 받으며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파송을 받은 말씀의 전달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입니다(7:16). 그렇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인지 혹은 틀린 것인지를 어떻게 하면 판별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하게 됩니다. 그 이슈를 다음 단락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와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7:18)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풀이가 옳은지 아니면 틀린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 두 가지를 예수님이 스스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는 것인지를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7:17). 둘째는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인지를 살펴보면 된다는 것입니다(7:18).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제12장 첫머리에서 잘 요약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은 거룩한 삶이며 대속의 삶이라는 것입니다”(12:1ab). 여기서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영적인 방법으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12:1c). 반면에 세속적인 삶은 세상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물질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12:2ab). 다음으로, 대속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기뻐하시는 뜻, 온전하신 뜻입니다(12:2c);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은 대속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삶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성도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놀랍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풀이나 가르침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7:18).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는 자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 경우는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필요이상으로 높은 자리를 얻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둘째, 명예욕에 불타고 있습니다. 셋째, 세상적인 경쟁심리가 강합니다. 넷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훈장을 수여 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자신의 성취를 세상적인 방법으로 대대손손 세습하려고 합니다. 여섯째, 종교생활에 있어서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것 등입니다. 그와 달리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는 그와 같은 성취와 영예를 주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조용하게 뒷전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1:23). 비록 큰 일을 이 세상에서 행했다고 하더라도 주인의 뒷전으로 물러나서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요 청지기입니다(17:10). 그와 같은 제자를 주님은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차 이 세상에 재림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고 손수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것입니다(고전15:24). 주님께서도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 그렇게 영광을 올려드리는데 주님의 제자인 우리 성도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