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69강(요7:25-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25. 00:01

요한복음 강해 제69(7:25-30)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29()

 

경건한 유대인들과 당국자들의 차이(7:25-26)

 

마지막 초막절 기간 중 예루살렘성전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경건한 유대인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신상에 관하여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전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전청결운동을 벌인 바 있는 장본인입니다(2:13-22). 그리고 2년전 유월절에는 성전 동쪽 출입구와 성문 동쪽 대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베데스다연못 가에서 38년된 병자를 치료하였으며 그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한 장본인입니다. 마침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에 유대인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체 노동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자리를 들고 가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5:10). 그것이 박해의 빌미가 됩니다(5:16).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가운데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7)고 말한 대목을 꼬투리로 삼아 하나님을 자신의 친 아버지라고 부르는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여기서 그냥  유대인들이라고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유대교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의 권력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본문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국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7:26).

이제 세월이 이년이나 흘렀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 일행은 변방 갈릴리 지방에서만 사역을 했습니다. 일체 예루살렘에 들르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몰려든 유대인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첫째,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삼 년 전 예루살렘에 나타났던 기이한 선지자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상당한 호기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7:11). 둘째, 당국자들은 그가 나타나면 체포를 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7:32). 그렇게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와중에 예수님이 마지막 초막절을 당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강해를 듣는 동안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삼 년 전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청중들은 예수님이 그 때의 그 선지자임을 알아채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당국자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7:25). 당국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도 아니며 선지자도 아니라고 흑색선전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평가절하하면서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했던 일이 과거에 있었는데 지금은 신속한 대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워낙 은밀하게 그것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7:10).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이 엉뚱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이 이제는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인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7:26).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단 노출이 되자, 그 정보를 수집하게 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부하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7:32).

본문에서 두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에게 우호적인 경건한 유대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완전히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복음전파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 당국자들이 부하들을 예수님 체포조로 보내고는 있으나 그 일이 성사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7:30). 그 두 가지 사실은 모두 한 가지의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을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돕는 일도 해치는 일도 모두 하나님의 장중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묵묵히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일만을 수행할 따름입니다. 요컨대, 고난도 그리고 부흥발전도 모두 때가 정해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나사렛 예수와 그리스도와의 차이(7:27-29)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가 갈릴리의 산촌 나사렛에서 태어난 선지자라는 것입니다(7:27a). 예수님 역시 땅에서 태어난 선지자이기에 장차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보내어지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7:27b).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줄 아시고서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새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너희들이 알고 있는 대로 나는 땅에서 태어났다(7:28ab). 둘째, 그러나 나를 보내신 이는 땅에 계시지 아니하신다. 그래서 사람인 너희들이 그 분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7:28c). 셋째, 그렇지만 나는 하늘에 계시는 그 분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의 출생이 하나님으로부터이며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파송하였기 때문이다(7:29). 위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출신 선지자로만 알고 있는 경우에는 하늘의 뜻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라고 하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믿을 때에 비로서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성육신 자체가 유대교의 신앙을 뛰어넘는 축복, 은혜 위에 은혜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1:14-16, 7:29).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이는 첫 걸음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