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공의의 하나님, 끔찍한 십자가의 형벌이 선불, 그러므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22. 10:42

제목; “공의의 하나님, 끔찍한 십자가의 형벌이 선불, 그러므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32:30-35, 4:34-38)

설교일; 주후 202232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322일 화요일 작성)

 

모세는 나이 80세이지만 지난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장인 이드로의 양치기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2:21, 7:7, 7:23). 그와 같은 모세의 처지는 다음 두가지의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나이 40세까지 애굽제국에서 왕자 대접을 받고 있던 모세가 이제는 별볼일 없는 이방 땅의 나그네로 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2:22);

또 하나는, 나이 80세의 노인 모세가 아직 양을 몰고서 집을 떠나 멀리 다닐 수 있는 것을 보면 그의 건강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는 것입니다(90:10).

그러한 사실을 모세가 시편에 남기고 있는 단 한편의 시가인 제90편을 음미해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9-12).

120세에 향년을 맞이하게 되는 모세가 동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교훈을 단 한편의 시가에 담고 있는 것이 시편 제90편입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 곧 제9절에서 12절까지를 곰곰이 음미해보면 다음 두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나이 80세에 모든 청운의 꿈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신체적으로는 아직 건강하여 장인의 양치기생활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처가살이를 하면서 떠돌이로 지내는 것이 무슨 보람과 기쁨이 있겠느냐고 하는 모세의 서글픈 신세 한탄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절망 가운데 부르짖고 있습니다; “10.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둘째로, 그런데 모세는 그 다음 구절 곧 제11-12절에서 전혀 다른 내용을 노래하면서 동족들에게 마지막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가 나이 80세에 호렙 산의 꺼지지 아니하는 불꽃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는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이 한갓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90:11).

또 하나는, 모세가 호렙 산에서 기이한 불꽃 가운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출애굽의 사명자로 세움을 받은 후 동족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광야생활 40년을 지내는 동안에 특별히 깨닫고 있는 여호와의 뜻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제12절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차제에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첫째, 모세는 120세로 향년을 맞이할 때까지 이 세상에서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 곧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들을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함께 데리고 들어가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향한 주님의 계획의 전부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나 자신이 잘못을 범하여 동족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운명이 되고 보니(20:7-12) 비로소 주님의 계획에 대한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90:12). 그 내용을 나누어서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모세는 40세까지 애굽제국의 상속녀인 핫셉수트 공주의 양자로 살아간 그 세월이 이 세상에서의 영광을 누리던 좋은 시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인생이라고 모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2)  하지만, 40세에 여자 바로로 불리고 있는 핫셉수트가 죽고 모세가 권좌에서 내쫓기게 되자 그는 변방 고센 땅에서 동족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획책합니다(2:11-12, 7:23-25). 그러나 그만 탄로가 나서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2:13-15, 7:26-29). 40년간이나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생활을 하고 있는 모세는 나이 80에 인생이 이대로 끝나고 말겠구나 생각하면서 절망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세는 여호와의 진노를 받은 인생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90:11).

(3)  그런데 80세의 노인 모세가 호렙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창조주의 능력으로 120세가 될 때까지 40년간 모세 자신을 출애굽의 지도자요 광야생활의 인도자로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이제는 동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일까지 끝나게 되면 모세야 말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영원히 국부가 되며 만세에 칭송을 받는 메시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해에 그만 일이 잘못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어겼기에 졸지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운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20:7-12).

(4)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120세의 향년을 맞이하게 되는 모세가 얻고 있는 마지막 깨달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이 한마디로, 인생의 나이를 계산하는 새로운 방법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속자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비로소 이 세상에서 보낸 인생의 나이가 영원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지막 깨달음을 동족들에게 모세가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라는 깨달음의 노래로 가르쳐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구체적으로 언제 대속자 그리스도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훗날 대속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되면 도저히 모세의 시편 제90편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익명의 저자가 기록하고 있는 히브리서 제11장 제26절의 내용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그러한 맥락에서 이제부터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제32장 제30-35절 말씀과 요한복음 제4장 제34-38절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본문 가운데 모세는 대속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얻은 자들이 주님과 함께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본문이 구성되어 있는지를 이제부터 한 구절 씩 풀이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신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32:30-32);

(1)  이 대목은 여러 번 강해설교를 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최고지도자 모세가 시내 산 정상에 올라간 지 한달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두려우신 여호와의 면전에서 무언가 잘못하여 죽임을 당한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도자 없이 어떻게 광야에서 출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걱정하자 장로들이 제사장 아론을 찾아와서 부탁합니다.

(2)  그 내용은 백성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아론이 그대로 시행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을 처음부터 위반하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 모독이며 심각한 범죄입니다;

 따라서 시내 산 정상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모세가 겨우 진정을 시킨 다음에 하산하여 백성들에게 금송아지 가루를 먹이고 주동자 3천명을 처단합니다. 그 이튿날 여호와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다시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32:30).

(3)  모세가 여호와의 존전에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32:31). 따라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생을 걸어 놓고 읍소를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죄악이 너무나 중대하여 모세의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생명책에서 모세 자신의 이름을 지워 버리시고 그 대신에 부디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의 큰 죄악을 용서하여 달라는 간구입니다;

(4)  그것은 한마디로,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모세 자신이 영원한 벌을 대신 받겠다고 하는 결단을 보이고 있는 대목입니다(32:32). 모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그 마지막 속죄의 기도가 과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참으로 신묘한 여호와 하나님의 대속의 방법이 그 이하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점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창조주의 공의의 원칙에 따라)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이 세상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대속자 그리스도가 끔찍한 십자가를 지는 방법으로)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창조주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욕심껏 살아간 우리들이 모두 아론처럼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다)”(32:33-3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창조주의 공의의 원칙에 따라)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버리리라”(32:33);

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을 살리시고 하나같이 돌보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을 자식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모든 피조물을 공평하게 사랑하시고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것이 창조주의 아가페의 사랑이며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최고지도자 모세이거나 일반 백성이거나 그 값어치가 같은 것입니다;

2)    그러한 맥락에서 모세의 목숨 값 또는 영생의 값어치를 가지고 수백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속죄할 수는 없습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들은 대신 지도자를 속죄물로 삼아보아야 효과가 없습니다. 당사자의 잘못에 대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을 위반하였으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고 영벌에 처해지는 것입니다(32:33). 

3)    창조주께서 어떻게 피조물인 모세 하나의 영생을 가지고 모든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는 불공정한 심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모든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속죄의 제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제물이 과연 누구일까요? 이 세상 창조에 참여하신 독생자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습니다(1:3). 여기서 독생자라는 용어의 뜻은 이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 이전에 그것은 벌써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4)    쉽게 말하자면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의 의미가 여기서는 독생자라는 말의 뜻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14). 그 점을 훗날 세례 요한이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습니다; “15.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1:15). 사도 요한이 더 쉽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5)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성육신하셔서 복음을 선포하는 공생애를 살아가시고 마침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십니다(1:29, 2:36). 그 공로로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고 40일후에 감람산에서 그대로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좌정하십니다(2:24-33).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고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는 자들이 영생의 구원을 받고 이제는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만민구원을 위한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2)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이 세상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대속자 그리스도가 끔찍한 십자가를 지는 방법으로) 보응하리라”(32:34); 모세가 자신의 목숨이나 영생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대신 백성들을 위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만민구원의 은혜는 오로지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속자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그때를 염두에 두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대속자 그리스도가 끔찍한 십자가를 지는 방법으로) 보응하리라”(32:34b). 그러므로 모세가 이제 남은 인생 가운데 마무리하는 일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 뿐입니다(32:34a).

(3)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창조주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욕심껏 살아간 우리들이 모두 아론처럼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다)”(32:35);

1)    아론이 장로들의 요청에 따라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말하면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였습니다(32:1-6). 그것이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중대한 범죄입니다(20:1-7). 그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고 모세를 보내어 크게 징벌하셨습니다(32:7-29). 그러한 내용의 스토리가 본문에 들어오기 전에 벌써 기록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한번 모세가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32:35)고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훗날 누구든지 동일한 범죄를 여호와 앞에 범하게 되면 동일한 처벌을 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한번 더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들의 잘못에 대하여 보응하시는 날이 반드시 역사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여호와를 남은 인생 가운데 주인님으로 섬기며 그 맡기신 지상명령을 끝까지 실천하는 성도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모세와 달리 끝까지 충성하여)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이 세상 자연의 이치에만 사로잡혀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영적인)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아버지 하나님)가 이미 삯(대속자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만민구원)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영생구원을 주기 위하여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고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거두는 자(그리스도의 제자들)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하심이라. 37. 그런즉 한사람(대속의 그리스도)이 심고(십자가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처벌을 받으셨으니 이제는 남은 인생 가운데 그 사랑의 생명의 빚을 갚기 위하여 내가 만민구원에 나선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려 보내었노니(대속의 끔찍한 십자가를 지신 분이 그리스도이기에 그 은혜를 공짜로 입은 너희 성도들은 만민구원의 수확이라도 하도록 조치하였으니) 다른 사람들(믿음의 선진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4:34-38);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모세와 달리 끝까지 충성하여)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이 세상 자연의 이치에만 사로잡혀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영적인)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4-35);

1)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대속자로 보내신 분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영이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4);

 그러므로 예수님이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양식은 다분히 영적인 양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는 인생들에게 이제는 영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영적인 안목으로 온전한 복음사역을 하라는 것입니다(4:34).

2)    예수님께서 수가성에서 과부와 대화를 통하여 영생의 물에 관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4:7-14);

 유대인들이 이방인 취급을 하며 멸시하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실은 그리스도를 만나 영생의 구원을 얻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4:15-26). 그것은 유대인들의 세상적인 안목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인 자신들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고 이방인은 전부 멸망의 심판을 당한다고 믿고 있습니다(4:9, 9:54).

3)    그와 같은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유대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마리아인은 구원에서 멀다고 판단하지 말아라. 내가 영적인 눈으로 볼 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무르익어 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눈으로 가을에 익는 무화과를 봄철인 지금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선입견을 버리도록 하라. 영적인 시간과 수확의 때는 벌써 너희들 앞에 다가와 있다”(4:35의역);

 

(2)  36. 거두는 자(아버지 하나님)가 이미 삯(대속자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만민구원)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영생구원을 주기 위하여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고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거두는 자(그리스도의 제자들)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하심이라. 37. 그런즉 한사람(대속의 그리스도)이 심고(십자가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처벌을 받으셨으니 이제는 남은 인생 가운데 그 사랑의 생명의 빚을 갚기 위하여 내가 만민구원에 나선다) 하는 말이 옳도다”(4:36-37);

1)    공의의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들에게 칭의의 은혜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끔찍한 십자가 형벌을 나를 대신하여 받으신 예수님의 은혜는 우리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불을 아버지 하나님께 지불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영생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남은 인생을 통하여 성도들은 어떻게 그 사랑의 빚을 갚아가야 할까요?

2)    주님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살리기 위하여 선불로 자신을 희생하셨으니 이제는 생명의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하여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게 되면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이 크게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6. 거두는 자(아버지 하나님)가 이미 삯(대속자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만민구원)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영생구원을 주기 위하여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고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거두는 자(그리스도의 제자들)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하심이라”(4:36).

3)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 뒤를 사도와 제자들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제 성도들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씨를 뿌리고 사도와 제자들이 수확을 하며 또한 사도와 제자들이 뿌린 씨가 복음으로 자라나는 것을 우리 성도들이 뒤따라 가면서 수확하면 됩니다. 그와 같은 연쇄반응을 사도 요한이 여기서 37. 그런즉 한사람(대속의 그리스도)이 심고(십자가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처벌을 받으셨으니 이제는 남은 인생 가운데 그 사랑의 생명의 빚을 갚기 위하여 내가 만민구원에 나선다) 하는 말이 옳도다”(4:37)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려 보내었노니(대속의 끔찍한 십자가를 지신 분이 그리스도이기에 그 은혜를 공짜로 입은 너희 성도들은 만민구원의 수확이라도 하도록 조치하였으니) 다른 사람들(믿음의 선진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4:38);

1)    예수님께서는 제자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겉으로 보면, 예수님과 동일한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이 무거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실천하기 위하여 그 끔찍한 십자가 형벌을 감내하신 경우와 우리 성도들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그 십자가의 무게와 끔찍한 형벌의 정도가 엄청나게 차이가 있습니다.

2)    그 점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상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주님께서는 나의 약함을 아시고 가벼운 멍에를 메도록 조치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것은 능히 감당할 수가 있는 작은 십자가입니다;

 그 점을 여기서는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려 보내었노니(대속의 끔찍한 십자가를 지신 분이 그리스도이기에 그 은혜를 공짜로 입은 너희 성도들은 만민구원의 수확이라도 하도록 조치하였으니) 다른 사람들(믿음의 선진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4:38)고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로서는 같은 피조물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영생의 구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이 세상의 창조에 참여하신 독생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성도들이 죄의 용서와 구원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가 있습니다.

벌써 공의의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 끔찍한 십자가 형벌을 대신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나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선불임을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생명의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본문을 음미하시면서 그 사랑의 빚을 갚는 방법을 깊이 있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복음전파와 생명살림의 역사에 동참하는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