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들(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6. 08:08

제목;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들”(5:22-29, 1:22-26)

설교일; 주후 202232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316일 수요일 작성)

 

인자됨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이 세상에서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다 인자됨의 과정을 이미 밟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특별히 인자됨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2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모친 마리아에게서 사람으로 태어나 나사렛 동네에서 부모형제와 함께 생활하시고 30세 무렵부터는 제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복음사역이라는 독특한 공생애를 살아가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과정으로 말미암아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시게 됩니다. 그 결과 요한복음 제5장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권한을 위임 받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점에 관하여 먼저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평생을 헌신하고자 하는 성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이전에는 그저 평범한 인간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본받아 복음사역에 관심을 두고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자 결단하고 그렇게 실천을 하고 보니 자신의 인생의 목표와 방법이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와 닮아 있으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을 빌립보서 제1장에서 찾아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말씀은 첫째가 요한복음 제5장 제22-29절 말씀이고 둘째가 빌립보서 제1장 제22-26절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한 구절 씩 풀이하면서 다음과 같이 묵상의 결과 얻게 된 교훈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2-24);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5:22-23);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주 바깥에 보좌를 가지시고 계신 것으로 지혜의 대왕 솔로몬과 시편의 저자인 다윗이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예루살렘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왕상8:30), “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103:19);

2)    그 하늘의 보좌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고 계십니다. 그 점을 지혜의 대왕 솔로몬이 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 대로 갚으시옵소서”(왕상8:32)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요한복음 제5장 제22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의 고유권한인 인류에 대한 심판을 아들인 자신에게 맡기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고유한 심판권을 아들에게 위임하신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요?

3)    그 목적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동일하게 공경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23). 그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서 복음으로 정확하게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말씀의 의미에 따라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전해준 모든 여호와의 말씀을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 재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11:27).

4)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세상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그 복음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하는 인생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마태복음 제28장 제18-20절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제자의 삶의 방식을 이미 말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 곧 마태복음 제16장 제24절에서 똑똑하게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5)    그와 같은 제자의 길을 완주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이 풍성합니다. 그 점을 주님께서 누가복음 제22장 제28-30절에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따라서 예수님의 인생이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6)    구체적으로,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영생의 구원을 받으며 천국의 놀라운 논공행상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아가게 되면 이미 심판을 받았고 훗날 부활하여 창조주의 심판대에서 정죄를 받고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25:45-46). 그와 같은 말씀이 뒤이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1)    믿음의 본질이 무엇이며 믿음생활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그 생애를 묵상하면서 그 삶을 닮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그러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원의 상급을 반드시 주신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상급이라고 하는 것이 심판을 받아 영원한 사망의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언으로 심판대를 무사히 통과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믿음생활의 결과입니다.

2)    그것이 영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라는 표현을 여기서 사용하고 있습니다(5:24a). 앞으로도 그러한 이중적인 강조의 표현이 나타나게 되면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실천이 동일한 것이므로 반드시 그대로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달성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서 시공간을 뛰어넘고 있는 영적인 진리의 내용을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3)    구체적으로, 그와 같이 믿고서 믿음생활을 끝까지 영위하게 되면 훗날 그 열매인 영생구원의 상급을 얻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성령님의 은혜로 그러한 상급이 벌써 마음속으로 확정되고 있기에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 특별히 과거형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b).

둘째로,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5:25-26);

(1)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진리를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5:25a). 그 내용은 죽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리는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것입니다(25). 여기서 죽은 자들의 의미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마치 죽은 자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2)  환언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아니하고 무시하며 나아가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도무지 헤아리지도 아니하고 실천하지도 아니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자들의 인생 가운데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마지막 한번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그것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면서 자신의 인생 가운데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때가 영생의 구원이냐 아니면 영벌의 처벌이냐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심판의 순간입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진리를 알고서 부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3)  또 하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은혜를 얻지 못하고 그 이전 시대를 살다가 그만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떠한 심판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따라 이미 죽은 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회개할 수 있는 별도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점을 뒤에 있는 제28절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 가운데 그리스도의 제자로 올바르게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구원의 은혜가 영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5:26)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뜻은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들어 있는데 그 영생의 씨앗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벌써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그 영생의 씨앗을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심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4:23, 17:21-24). 그 작업을 보혜사 성령님께서 장차 진행하실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그곳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과 함께 임재하시는 것입니다(8:9-11);

(6)  특히, 그 점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계시는 성경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영적으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16-20).

셋째로, “27.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7-28);

(1)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와 직접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육신을 입고서 사람들과 똑같은 인생을 살아 보신 주님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가운데 어느 분이 더 인간의 삶에 대하여 친숙하시며 더욱 정확한 판단을 내리실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 보신 그 체험 곧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더욱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체적인 정확한 심판을 행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심판의 권한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27).

(2)  요컨대 그것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인자됨의 은혜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생 가운데 만나게 되는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이며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가기만 하면 영생의 구원은 이미 영적으로 얻은 바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지 못하고 진작에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에게도 공평한 기회가 최종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3)  주님께서 무덤속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창조주의 음성으로 그들을 불러내어 부활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시기 때문입니다(28). 그 다음에 최종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속자이며 구원자인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시기를 고대하면서 천국입성을 소원하며 살아간 구약시대의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함께 영생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29, 19:25-27, 11:16, 26);

넷째로,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함께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1:22-26);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1:22-24);

1)    이방인 사도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바울이 참으로 중요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놀랍게도 영적인 만민구원의 열매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22a).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인생은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가 있으며 천국의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사도 바울이 그 영생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천국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3);

2)    한편 그렇게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육신을 입고서 복음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의 면류관을 얻느냐? 아니면 이 땅에 남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영생의 열매를 거두느냐? 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여야 할지 자신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22b). 오로지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는 고유권한이기에 바울은 주님께 자신의 운명과 향년의 때를 맡겨드릴 따름이라는 신앙적인 고백입니다(1:7).

3)    그렇지만 사도 바울이 한가지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욱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23). 그러나 세상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더 체계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체류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24, 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결론은 인자됨의 유익이 이방인 사도로 진실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분명한 것이므로 자신의 향년과 운명을 주님께서 전적으로 결정하여 달라는 것입니다(22). 참으로 복음의 사도인 바울의 생사관이 은혜가 되며 주님의 사도이며 종인 바울의 정체성이 신앙적으로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2)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함께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1:25-26); 사도 바울은 남아 있는 인생살이 가운데 아무리 고난과 고생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체계적인 말씀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밝히고 있습니다(25). 그러므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 기회를 활용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깨달은 말씀대로 실천함으로써 사도 바울처럼 전도와 선교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할 것입니다(26);

 그것을 위하여 여기서 사도 바울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것이 사도 바울이 여전히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영적인 복음의 수확이며 인자됨의 유익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인자됨의 은혜가 풍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삶의 고달픔을 체험하시고 이제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복음적인 열매를 평가하고 천국의 시민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실효성이 있는 구체적인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이 제시하고 계시는 그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위임 받으셨다고 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인자됨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고 영생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유익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이방인 사도로 계속 끝까지 살아가는 그것이 만민구원에 있어서 참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복음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삶이 세속화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전도의 열매는 육신을 입고 있는 그 고난과 핍박의 인생 가운데 얻을 수 있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고 천국에 들어가서 상급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것도 좋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선교적인 사명을 다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우리 모두 남아 있는 생애가 자신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보람과 풍성한 유익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