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41. 벨사살 왕 (바벨론)(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9. 23:13

41. 벨사살 왕 (바벨론)

 

(1) 갈대아 왕조가 세운 신 바벨론 제국의 다섯번 째 왕이 나보니더스인데 그 아들이 벨사살 왕이었다. 다니엘서에서 벨사살 왕을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 또는 그 부친이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5:2,18,22) 벨사살 왕이 느부갓네살 왕의 직계 자손이며 그 직계 조상이 느부갓네살 왕이라는 뜻이다. 이는 고대 중동 지역에서 흔히 사용되어지던 표기법이다.

 신 바벨론 제국은 초대 왕 나보폴라살(재위 BC 626-605)과 두번 째 왕 느부갓네살(재위 BC 605-562)이 장기 집권하면서 이미 세계적인 대 제국으로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 다만 서남방의 아라비아 미개인들이 다소 골치거리가 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섯번 째 황제인 나보니더스가 서남 전선 데마 지방으로(6:19, 21:14, 25:23) 장기 원정에 나서면서 그의 아들 벨사살을 대리청정하게 하고 두번 째 치리자인 왕으로 삼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신 바벨론 제국 전체를 통치하는 왕은 왕중왕으로서 황제에 해당하며 그 아래에는 필요에 따라 내치를 책임지는 왕이 있고 또 그 아래에 복수의 총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니엘도 총리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5:29, 6:2). 그런데 벨사살 왕은 내치에 만전을 기한 것이 아니라 셋 째 치리자인 총리에게 전권을 위임시켜 놓고 자신은 매일 연회만을 즐겼다(5:1,7,29). 서서히 제국에 망조가 들고 있었다.

 

(2) 잔치 자리에 갑자기 이상한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회칠한 벽에 고대 문자를 새기는 이적이 나타났다. 벨사살 왕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서 덜덜 떨었다. 왕궁내 박사와 학자들을 모두 불러 들였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었다(5:8).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 때 대 현자였던(2:48) 다니엘을 불러 들였다.

 다니엘은 이와 같은 이적이 나타난 이유부터 설명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지 못한 채 벨사살 왕이 우상을 섬기며 예루살렘 성전의 그릇으로 잔치자리의 술 그릇으로 삼는 만용까지 서슴치 아니했기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판결이 나타났다(5:21-24 내용의 요약임)는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은 글자의 뜻도 해석했다. 왕의 나라의 존속 기간을 하나님이 결정하셨는데 이미 만기가 되었다(메네메네)는 것과 왕의 자질이 부족하므로 나라를 나누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했다(데겔우바르신)는 것이었다.

 

(3) 왜 이와 같은 기이한 현상(이적)이 나타났을까? 만약 벨사살 왕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섭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는 이른 바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구태여 이와 같은 이적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연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이성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질서를 지키고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을 먼저 사용하시지 이와 같이 초 자연적이고도 초 이성적인 방법을 즐겨 사용하시지 아니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이적을 사용하신 것은 벨사살 왕이 마치 어리석은 부자(12:19-21)처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는 이성과 인식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벨사살 왕 뿐만 아니라 왕궁내 현자들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의 하나 그 것도 우상과 동격으로 치부하고 있었기에(5:11,14,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 다니엘) 하나님은 초 자연적인 강력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권과 통치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 벨사살 왕은 다니엘의 해석을 듣고 나서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는 결단을 보이지 아니했다. 그 대신 그가 선택하고 보여준 것은 하나님의 영과 통하는 사람인 다니엘을 높여줌으로써 액운을 피해보고자 한 것이었다. 다니엘을 일종의 무당으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앙은 철저한 세속적인 기복신앙이며 무당을 잘 대접함으로써 우상의 비호를 받는다고 하는 소위 근본적인 인본주의이며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주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벨사살 왕의 모습은 현세주의와 인본주의적 실용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는 현대 인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이 파격적으로 유대인인 다니엘을 총리로 삼았지만(5:7,29, 나라의 셋 째 치리자인 총리임) 이 것으로 그 자신의 구원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왜냐 하면, 기본적으로 무당에게 잘 보여서 위기를 면하는 샤머니즘과 하나님 경외사상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벨사살 왕이 지키던 갈대아 왕조는 결국 동북면의 메대와 동남쪽의 바사 두 나라의 합동 기습을 받고 어처구니없이 망하고 말았다(5:30-31). 서남 전선에 나가 있던 부왕 나보니더스가 손쓸 사이도 없이 신 바벨론 제국의 운명은 이와 같이 기습적으로 결말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