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느부갓네살 왕 (바벨론)
(1)BC 605년 느부갓네살은 아버지 나보폴라살 왕의 뒤를 이어 갈대아 왕조가 세운 신 바벨론 제국의 두번 째 왕이 되었다. 아버지에 이어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왜냐 하면, 아버지는 앗수르 제국을 정복했으며 아들인 느부갓네살 왕은 BC 586년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가나안 땅에서 애굽 군대를 완전히 몰아내버리고 만 것이다. 한 마디로, 나보폴라살 왕(BC 626-605)과 느부갓네살 왕(BC 605-562) 단 두 사람에 의하여 세계적인 제국이 중동 땅에 건설된 것이다.
그와 같은 위업은 약 130년 전에 앗수르 제국의 네 정복왕, 디글랏 빌레셀(BC 745-727, 아람 왕국 멸망시킴, BC 733년임, 왕하16:7-9), 살만에셀(BC 727-722, 북 이스라엘 왕국 거의 멸망시킴, BC722년임, 왕하17:3-6), 사르곤(BC 722-705, 북 이스라엘 완전 정복 및 블레셋 점령, 사20:1), 산헤립(BC 705-681, 예루살렘 압박, 왕하18:13-17) 모두의 업적을 합한 것과 같은 것이다.
참고로, 셈족인 갈대아 인들은 유프라테스 강 하류 비옥한 땅 우르 지역을 차지하였는데 그곳 우르 곡창지대는 일찌기 기원전 24세기의 니므룻 제국(창10:8-12, 11:2-9),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BC 1726-1686) 시대의 구 바벨론 제국 등의 초창기 기반이 되었을 뿐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역이기도 했다. 우르지역의 셈족들은 바벨 탑이 무너진 후 이 곳 문명을 아람 지역과 가나안 지역에까지 전해준 것으로 보이며 그 행렬 가운데 “데라-아브람-롯” 일행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창11:31-12:5).
(2)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과정과 그 후 바벨론 땅에서 유대 인 현자들로 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되는지에 관하여 성경은 말하고 있다.
먼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유다 왕국의 마지막 성군인 요시야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대상3:15). 애굽과의 전쟁에서 요시야 왕이 갑자기 전사하자 백성들이 추대한 왕은 둘 째 왕자였다(여호아하스 또는 요하난으로 불리는 둘 째 왕자가 먼저 왕이 되었기에 족보에는 맏이로 기록되고 있다. 왕하23:30-36).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애굽 왕이 첫 째 왕자를 내세워 괴뢰정권을 세웠다. 그런데 BC 605년 느부갓네살 왕이 즉위하자마자 첫 전투에 나서서(렘46:2) 유프라테스 강 상류 갈그미스까지 쳐들어온 애굽 군대를 대파해 버렸다. 이를 지켜본 유다 왕국의 여호야김 왕은 얼른 친 바벨론 정권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그렇지만 BC 601년이 되자 애굽 군과 바벨론 군은 팽팽한 세력 균형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유다 왕 여호야김은 등거리 자주노선을 천명했다. 이는 오판이었다. 정복왕 느부갓네살의 위력을 몰랐던 것이다. 그는 대규모 공세를 취하여 애굽 군대를 아예 가나안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 버렸으며 BC 597년 괘씸한 유다 왕을 사로잡아 갔다. 이 때 잡혀간 유다왕은 여호야긴이었으며 그 아비 여호야김은 다행스럽게도 일 년전에 병사함으로써 포로신세를 면했다. 느부갓네살은 유다 왕국에서 쓸 만한 것은 인재뿐 아니라 재물까지 아예 싹쓸이해갔으며 유다 왕의 두번 째 숙부인 시드기야를 앞세워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해 놓았다(왕하24:10-12,17). 결국 요시야 왕의 네 아들 가운데 위로 세 아들이 모두 유다 왕을 지낸 셈인데 세번 째 아들인 시드기야 시대에 왕국은 멸망하고 만다.
멸망의 직접 원인은 다음과 같다. 시드기야가 국제정세에 어두워서 신흥 바벨론 제국과 오래된 제국 애굽 사이의 군사력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애굽의 강경파인 군부와 짜고서 기습적으로 애굽 군대를 끌어들여서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바벨론 세력을 몰아내버렸다(렘37:1-5,11). 이에 대노한 느부갓네살이 BC588년 대군을 이끌고 재침했으며 삼년만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시켜버리고 말았다(왕하25:1-7). 이와 같이 국제정세에 어두울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아니하는 시드기야 왕에게 당시 선지자 예레미야가 상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이 하나님도 떠나고 오로지 애굽 군대의 힘만을 의존하고자 하니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아니하시는 한 바로의 군대는 갈대아 인들의 원정군에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렘37:6-10, 38:17-18).
느부갓네살 왕은 적국의 왕이었지만 상벌이 분명한 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제 주제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날뛴 시드기야 왕을 소경으로 만들어 끌고 갔지만 국제정세를 알고 하나님의 메세지를 받아서 유다 백성을 살리고자 화친설을 주장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를 오히려 구해 주었던 것이다(렘39:5-14).
(3)느부갓네살 왕이 유대 인 현자들로 부터 영향을 받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BC 605년 그는 친 바벨론 노선으로 돌아선 유다 왕으로 부터 귀족 자녀들을 인질로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그들을 삼년간 왕궁에서 교육시켜 양국 문물을 아는 학자와 통역관으로 활용할려고 했다. 이 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그 가운데서 가장 빼어났다. 느부갓네살 왕은 출신성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그들의 능력대로 출세의 길을 열어주었다(단2:48-49, 3:30). 이 것은 갈대아 인들의 신 바벨론 제국이 명실상부한 패권국이며 다민족 제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중용될 수 있는 열린 제국이었기에 소수의 갈대아 인들이 찬란한 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만큼 느부갓네살 왕은 큰 그릇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의 괴상한 꿈을 알아 맞히고 명쾌하게 해석해준 다니엘은 훗 날 재상의 지위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단2:46-48, 5:29).
느부갓네살 왕은 인재등용에 있어서만 열린 정책을 추진한 것이 아니고 다니엘과 유대 인들의 여호와가 왕과 왕국의 흥망성쇠까지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체험으로 깨닫게 되고 이를 고백한 왕이기도 하다(단2:47, 3:29, 4:30-37).
(4)느부갓네살 왕이 유대 인 현자들의 지혜를 빌리고 그들의 신 여호와의 능력을 칭송했다고는 하지만 유대 인 백성들에게 완전한 신체적, 종교적 자유를 준 것은 아니었다. 이 일은 그가 죽고 나서 23년이 지난 후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천하통일을 했을 때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북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과 비교할 때 분명히 신 바벨론 제국은 열린 다민족 사회였다. 요컨대 활짝 열린 페르샤 시대로 이행되어 가는 역사 발전의 중간 단계에 있었던 제국인 것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유다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은 북조 이스라엘 백성들의 앗수르 포로 생활과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마리아 인들은 앗수르 제국의 식민정책과 혼혈정책 때문에 종족의 순수성마저 말살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유다 백성들은 종교적, 신체적 자유를 어느 정도 누리면서 훗 날 고향으로 돌아가는 페르샤 제국 시대까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가 발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째로, 유다 왕국은 이세벨의 딸이 국정을 농락했던 6년 기간을 빼고나면(왕하11:1-3) 다윗의 왕조가 순리대로 계속되어져 왔다. 그렇지만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의 에브라임 왕조가 바아샤의 잇사갈 왕조로 바뀌는 큰 반역사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2세 이후 전개된 말기의 역사에 있어서는 반역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왕들이 살해되었던 것이다.
둘 째로, 유다 왕국은 말기에 요시야 같은 성군이 나타나서 국정을 쇄신하고 성전을 청결하게 했다. 비록 그 윗대 므낫세 왕의 잘못 때문에 요시야 왕이 죽고 난 후 그의 아들 삼 형제가 모두 외침을 받아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지만 그래도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여로보암2세 시대에 호세아 선지자가 멸망을 예언했을 뿐 별다른 왕국 구원의 메세지가 없었다. 그 만큼 영적으로 어두운 나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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