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56강(요6:34-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8. 07:44

요한복음 강해 제56(6:34-36)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에게 예수님은 생명수와 생명의 양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4:14, 32-34). 그런데 그 두 가지를 합하여 여기서는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6:35). 그 이유는 생명의 떡을 얻어 먹으면 백성들이 영원히 주리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목이 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모태에서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것은 유한한 육체입니다. 그것은 하루 세끼를 먹어야 허기를 면하고 자주 물을 마셔야만 피가 돌아가는 그러한 몸입니다. 게다가 사용연한도 백 년 안팎입니다. 그 몸을 가지고서는 영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양식을 얻어 먹고서 그것을 에너지로 삼을 수도 없는 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허기와 갈증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그런 몸입니다. 그러므로 치유와 치료는 가능한 몸이지만 결코 구원과 영생이 가능한 몸은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불완전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과 생수를 떡으로 나누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염두에 두고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장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의미를 가지고 말씀을 전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훗날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했을 때 부활의 몸을 입고 있습니다. 그 몸은 사람들이 만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생전의 몸과 약간 다릅니다. 한 마디로,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제자들과 함께 생선을 구어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21:13-15). 그렇지만 하루 세끼의 식사나 음료수가 꼭 필요한 몸은 아닙니다. 더구나 그 몸을 입고서 베다니에서 그대로 승천하고 있습니다(24:50-51). 요컨대,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부활의 몸입니다. 육체가 부활한 다음에나 가질 수 있는 그러한 구원받은 몸을 살아 생전에는 과연 성도들이 얻을 수가 없는 것일까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는 하는데 왜 여전히 살아 생전에는 허기가 지고 갈증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사명을 이 세상에서 유한한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라는 명령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17:15, 18-21). 이방인들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같은 배고픔과 갈증을 경험하지 아니하는 존재가 만약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경이로운 구경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것이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무덤에서 부활을 했다는 것은 믿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구원이 가능하다는 소망을 가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6:36)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6:35a). 그리고 그 생명의 떡을 나누어 받게 되는 사람은 결코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지 아니하게 된다고 말합니다(6:35bc). 그러한 생명의 떡을 예수님이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자신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6:36). 그렇다면 우리는 그 생명의 떡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영원한 생명력인 신성(神性)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루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선보였습니다. 이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 신성이야말로 하늘의 곳간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인성(人性)은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느끼고 경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은 그 필요를 영원히 채워줄 수 있는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유일하신 존재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였다고 하는 것은 성도들의 구원과 영생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6:36).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던 인간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배가 고프지 아니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기서는 생명의 떡을 얻은 자입니다(6:35). 사족을 더하자면, 하나님 말씀의 완전 계시자이며 복음의 완전한 실천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본 받아 그대로 자신의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생명의 떡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의 떡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과 그리스도의 말씀과 창조주의 능력이 속사람 속에 깃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경우처럼 성도들에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그것이 생명의 떡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