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49강(요5:41-4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4. 19:35

요한복음 강해 제49(5:41-47)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12(주일새벽)

 

영생하는 영광과 사멸(死滅, 죽어서 없어지는 것)하는 영광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영생하는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고 죽어서 없어지는 영광을 선호하고 있다고 질책하고 있습니다(5:40-44). 그리고 영생하는 영광과 사멸하는 영광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영생하는 영광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5:44b, 21:33). 반면에 사멸하는 영광은 장차 썩어서 없어질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5:44a, 고전15:42, 벧후3:12).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영생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5:42). 반면에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사멸하는 영광을 얻을 뿐입니다(5:42, 44). 셋째, 사람들은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서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5:44a).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생의 영광을 취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5:40, 43). 넷째, 사멸하는 세상의 영광은 많이 차지하는 자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 만큼 적게 차지하게 됩니다. 제로 섬’(zero sum)적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유한한 세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영광은 다릅니다. 그것은 그 속에서 흘러 넘치는 생수와 같습니다(4:14).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게 되는 생수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좋은 것은 서로 나누어줄 수가 있으며 함께 누리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12:2-3). 그것이 하늘에서 오는 영광의 성격입니다.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6:13). 한 마디로, ‘플러스 섬’(plus sum)적인 것입니다. 다섯째, 영생하는 영광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왔습니다(3:15-17). 그렇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아니했습니다(5:40-44). 당장 이 세상의 영광을 그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메시아를 원했기 때문입니다(19:35-38). 그들은 유대 땅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해 줄 수 있는 메시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깃발 아래 모든 이방인들을 굴복시키고 시온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세상적인 국수주의적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는 자들이 유대인들입니다(78:66-72).

그러한 아전인수(我田引水, 다른 사람의 논은 마르든지 말든지 제 논에 물만 댈 수 있으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격이고 자기중심적인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신은 우상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만민과 만물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3:16). 결코 그와 같은 제로 섬게임을 원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점을 유대교인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민집단 안에서 대를 이어서 살다가 보니까 그만 이기적인 유대교 집단의 종교의식과 히브리 사상이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만민구원사상을 지니고 있는 예수님의 기독교가 이방 땅에 먼저 전파되는 초대교회의 역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훗날 그 점을 사도 바울이 심히 안타까워하면서 동족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9:3, 10:1). 그리고 자신이 이방인 사도로 헌신하는 만큼 자신의 동족과 친지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11:13-14). 그 중보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긍정적으로 응답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로마서 마지막 장에서 약 30%의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그의 친지와 동포들로써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경험

 

유대인들의 신앙상의 문제점을 모세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시켰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전히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절실하게 깨달은 모세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경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의 행태에 대하여 하나님께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모세의 경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젊은 시절 모세는 애굽에서 배운 방식으로 동족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시도했습니다. 그 방법은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 하나를 살해하고서 암매장을 한 것입니다(2:12). 당시 애굽의 왕자 급 대우를 받고 있는 자신이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사랑하여 압제자 애굽 인을 살해하였기에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자신을 독립의 기수로 삼고서 단결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이가 없게도 그들은 자신의 뜻을 철저하게 배신을 했습니다. 그의 살인행위를 동족이 떠벌리는 바람에 그만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2:14-15).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양치기로 40년을 지내는 동안 그의 젊은 시절의 패기와 영웅심은 세월과 함께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야심과 힘이 모두 사라진 다음에 그를 하나님이 호렙 산으로 불렀습니다(3:1-5). 이제는 사람의 계획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으로 애굽에 가서 동족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시키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주의 능력의 일부를 모세에게 공개했습니다(4:3-9). 모세는 용기가 백배하여 애굽으로 가서 바로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신위적인 역사와 도우심으로 모세는 출애굽에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 동족들을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합니다(19:1).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잘 가르치면 제사장의 나라가 이 땅 위에 건설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전히 애굽인들의 노예였습니다. 몸은 출애굽을 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애굽의 종의 신분으로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을 십계명으로 그렇게 강조하면서 가르쳐주었지만 막상 모세가 40일간 눈에 보이지 아니하자 그들은 불안해 하면서 애굽에서 배운 방법 그대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야훼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였습니다(32:1-6)”.

그렇다면, 몸도 마음도 모두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광야생활 40년만으로는 부족함을 모세는 절감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그 일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모세가 미리 알고 있습니다(29:24-28). 오히려 영적으로 타락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신앙을 저버릴 그들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고 말 것입니다. 온 이방세계를 헤매면서 유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의 후손을 훗날 부디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같은 선지자를 꼭 보내어 달라고 간절하게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18:15). 그것이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모세의 기도입니다. 모세는 그의 마지막 기록인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야훼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섬기라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6:4-9, 28:1-6). 그리고 축복의 내용을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 못 섬기는 경우에는 애굽의 열 가지 재앙보다 더 큰 진노가 저주로서 임한다는 사실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축복의 내용보다 저주의 내용이 세 배나 됩니다(28:15-68).

결론적으로, 모세는 신명기 제30장에서는 그의 마지막 유언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야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험한 세상에서도 장수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구원의 역사를 베풀고 있습니다. 모세의 깨달음의 연장선상에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셨으며 이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광이 주어지고 있습니다(1:12-1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한 세상을 살고자 세상적인 영광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함께할 것입니다(28:15-68, 5:44-45). 그것이 모세의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5:45-47). 그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도 살아서 동일하게 역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