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50강(요6: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4. 19:37

요한복음 강해 제50(6:1-4)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13()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6:4)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행적을 상당히 알기 쉽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유월절을 가지고 첫해, 둘째 해, 셋째 해, 넷째 해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이 고향을 떠나서 공생애에 나선 시점은 그의 나이 삼십 세쯤입니다(3:23).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 때가 첫 번째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단 강 건너 편 베다니 동네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시고 최초의 제자 안드레를 만나 함께 갈릴리로 북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28-44). 그리고 가나에서 모친과 형제들을 만난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와서 공생애 첫 번 유월절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1-13). 그 기간 동안에 성전청결운동과 니고데모와의 만남이 예루살렘에서 있었고 다시 북상하는 도중에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과의 대화가 있게 됩니다. 갈릴리로 돌아와서 일년간 사역을 하시고 있는데 사도 요한은 대표적으로 가나에서의 두 번째의 기적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4:54). 그 후에 두 번째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하여 상경을 합니다(5:1). 그런데 공교롭게도 베데스다못 가에서 38년된 병자를 안식일 날 치료한 것이 유대교인들에게 시비거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 때의 논쟁이 요한복음 제5장에 상세하게 실려 있는데 분위기가 심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율법을 어기고 야훼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하여 그를 신성모독죄로 죽이려고 합니다(5:18). 예수님은 살해의 위험을 느끼고 급히 예루살렘을 떠나서 변방 갈릴리로 되돌아오고 맙니다.

사도 요한은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두 해째 공생애의 기록을 그의 복음서 제6장에서 다음과 같이 단 두 절로 압축을 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6:1-2). 그렇게 예수님은 다시 한해 동안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 사이에 공생애 세 번째의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6:4). 예수님은 그 해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를 지시기에는 일년의 세월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와 기한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은 매사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네 번째의 유월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의 총 기간은 36개월쯤이 됩니다. 참고로, 그 기한은 교묘하게도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하여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 비가 내리지 아니했던 기간과 일치하고 있습니다(5:17).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종교생활을 하고 있던 아합 왕 시대의 이스라엘 왕국에 대하여 하나님이 물리적인 가뭄으로 징계를 행하고 있습니다(왕상17:1, 18:1).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배척하고 제멋대로 자기 의를 내세우며 외식적인 율법적 종교생활에 깊이 빠져있던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과 유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치 그 옛날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매달아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보여주었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그들의 엄청난 죄의 무게를 직접 눈으로 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3:14, 21:6-9, 3:13, 23:44-49).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6:1)

 

예수님의 고향은 갈릴리 호수 서편 산골 아래쪽 마을인 나사렛입니다. 더 북쪽으로 가면 가나에 다다르게 됩니다. 가나에서 동쪽으로 곧장 진행하면 갈릴리 호수 북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가장 큰 도시 가버나움이 나타납니다. 가버나움의 동쪽 근교 마을이 벳새다입니다(1:44). 그곳은 작은 마을이지만 어로작업을 하는 배들이 출항을 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어부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어부들은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의사 누가의 기록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벳새다에 살고 있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준 적이 있습니다(4:38-39). 그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낮 동안이 아니고 모두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안의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오고 있습니다(4:40)”. 그 이유는 아무리 집안 식구들의 병 치료가 급해도 낮에는 벌어먹고 사는 일이 너무나 바빠서 잠시의 짬도 낼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마치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임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의사를 찾아갈 수도 없는 적빈(赤貧)의 마을이기에 예수님의 긍휼과 치료가 그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각종 병자를 한 사람도 물리치지 아니하고 밤이 늦도록 모두 고쳐준 것입니다. 그 소문이 벳새다에서부터 가난한 갈릴리 동편 마을에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그 결과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수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께 몰려드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6:1). 그 사실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6:2).

디베랴라는 마을의 이름은 로마제국의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재위AD 14-37)의 이름을 히브리 식으로 발음을 한 것입니다.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재위 BC 4-AD 39)는 로마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갈릴리 호수 서안에 자리잡고 있는 옛날 마을 하나를 재개발했습니다. 그 곳에 로마의 건축양식으로 조그마한 신도시를 만들고 그 이름을 디베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베랴의 갈릴리 호수 또는 바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호수 서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건너편이므로 호수의 동쪽 연안이 되고 있습니다(6:1). 그곳은 동북 호안(湖岸) 벳새다 마을에서 호수를 끼고서 남하를 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곳으로 백성들과 함께 예수님 일행이 이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점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고 있어서 더 넓은 공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두 가지 사역을 행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둘째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질병과 장애를 고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하여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백성들에게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