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48강(요5:35-4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3. 14:12

요한복음 강해 제48(5:35-40)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11()

 

세례 요한의 증언과 하나님의 증언의 차이

 

갈릴리에서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로 자신을 찾아온 나사렛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로 소개를 했던 선지자가 세례 요한입니다(1:28-29, 34-3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세례 요한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5:34-35). 사람들의 증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증언만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5:32, 36-37). 그 이유는 구원과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언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5:34, 38-40).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셔야 외세를 몰아내고 그 옛날 다윗 왕 때처럼 지역패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대한 이스라엘 제국을 다시 건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유대인의 왕 메시아를 이 세상에 소개하기 위하여 일찍이 불 수레를 타고서 승천을 한 바가 있는 선지자 엘리야가 다시 이 세상에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왕하2:11). 왜냐하면, 히브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이 그 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5-6).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보낸 랍비들이 세례 요한에게 네가 메시아냐?또는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1:19-21).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신의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지 아니하고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물세례만 주고 있었습니다(1:22-28). 그러다가 느닷없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백성들에게 증거를 한 것입니다(1:29, 34-36).

그러한 경과를 모두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왜 이제는 세례 요한의 증언이나 사람들의 증언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유대 인들이 메시아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과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백성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서로 맞지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해방과 독립 그리고 유대교의 부흥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만민구원과 영생입니다. 바야흐로 예수님은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유대 백성들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하고 유대교를 부흥시킬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말씀의 본 뜻이 선민만의 구원과 영광의 회복이 아니고 만민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고자 하는 것임을 분명히 전해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은 확실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인기나 영광을 얻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5:34, 41). 히브리 성경에 담겨있는 하나님 말씀의 본래 취지, 그 진리를 되살리고 만민에게 구원을 주기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도 구원과 영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5:34, 39-40). 한 마디로, 예수님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증언에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진리대로 잘 실천했다고 인정을 해주셔야 자신의 구원과 영생도 하나님 나라에서 확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증언이 있어야 무덤 속 부활도 이루어지고 승천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증언과 인정함 만으로써는 부활도 승천도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구원과 영생도 바랄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 자신의 제자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5:37-38)

 

예수님은 유대교인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심도 있게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입니다(5:38). 둘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5:24, 42). 창조주의 음성을 듣고 그 영광과 주권을 인정하였더라면 이방인들을 똑같이 사랑하고 계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발견하였을 것인데 유대교인들은 그러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19:19-25, 4:10-11). 그들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의인이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하게 상실하고 있는 죄인들이라고 종교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되살리려고 하는 메시아의 노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5:34, 40). 유대교인들은 메시아의 표적을 원하고 있습니다(4:48). 그 표적은 모세의 출애굽이나 다윗 왕의 제국을 다시 보여주는 하나님의 능력의 발휘입니다. 그러한 현실문제의 해결과 세상적인 복 그리고 시오니즘에 입각하고 있지 아니하면 그들이 원하고 있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구원과 영생을 전파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만민구원과 영생을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하여 유대교인들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5:39-40).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는 사람들을 선민, 이방인으로 구분하지 아니하고 모두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한 지당한 사랑이 유대교인들에게는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교인들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그들의 증언도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그 증언만을 받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게 외로운 투쟁을 하시다가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