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46강(요5:27-2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2. 19:09

요한복음 강해 제46(5:27-29)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10()

 

또 인자(人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5:27)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 제5장에서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의 설전(舌戰, 날카로운 말다툼, 언쟁)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대하여 격분하고 있습니다(5:16, 18). 예수님의 해명이 합당하지 아니하면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긴박한 상황 가운데에서 밝혀지고 있는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을 이 땅에서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5:17, 19). 둘째, 히브리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 더 큰 일을 행하도록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5:20). 예를 들면, 부활의 권세와 심판의 권세를 위임한 것입니다(5:21-22). 셋째,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믿는 자에게는 이제 영생, 심판의 면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의 특혜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5:24). 넷째, 이어서 하나님 아들의 음성이 죽은 자들에게 들리게 되고 그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5:25-29). 다섯째,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30-47).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시고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첫째, 이미 구약에 예언을 해놓고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예수님의 행적을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능력으로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그 일이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예수님이 유대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칭할 때에 특이한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라는 일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5:24).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삼인칭의 신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5:20-23, 25-26a). 또 그 다음에는 라는 삼인칭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5:26b, 28). 그런데 특별하게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 대신에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5:27). 사실 예수님은 평소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인자’, 사람의 아들이라는 위치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11:19, 12:8, 32, 16:13, 2:10, 6:5, 22, 3:13) . ‘인자라는 용어가 구약에서 사용이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선지자를 인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인자는 선지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고 있습니다(8:17, 2:1, 6, 3:3, 16:21, 58:1). 둘째, 다니엘이 독생자 또는 메시아를 인자와 같은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7:13, 10:16). 그러므로 독생자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인자라고 호칭하는 것은 구약에 비추어볼 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들과 함께 똑같이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때 특별하게 사용하시는 호칭이 인자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특히 인자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용어는 친히 사람이 되어 인생을 몸소 체휼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입장에서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가 있게 된다는 의미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심판을 행함에 있어서 사람의 편에서 정상참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심판의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 것은 사랑의 배려입니다. 그 이유는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여 최대한 정상참작을 해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5:28)

 

  예수님이 자신을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어서 미래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표현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논쟁 중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늘의 것과 미래의 것, 그리고 무덤 속의 것까지 한꺼번에 통찰을 하시면서 답변에 응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진리라고 하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비추어보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속의 것을 모두 살펴보더라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것이 진리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과 심판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시공간의 차원을 넘어서는 진리의 역사임이 분명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미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심판을 위하여 재림하셔서 그들을 찾아가시는 것은 정해진 수순입니다. 그 미래의 광경을 동시에 보시면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미래의 자신을 라고 부르시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지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5:28).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9)

 

  죽은 자가 모두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을 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믿고 있는 종말심판과 부활의 교리에도 일치하는 것입니다(11:24, 22:30, 23:8). 그렇지만 새로운 사실이 하나 추가가 되고 있습니다; “부활 후에 심판대에 서는 자가 있고 심판대를 그대로 통과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대에 서야만 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판대를 프리 패스하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선포된 다음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