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44강(요5:23-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11. 12:41

요한복음 강해 제44(5:23-24)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59()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5:23)

 

예수님은 야훼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5:17-19).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아들인 자신을 공경하여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2:12, 5:23). 특히 아들을 공경해야만 하는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대리자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파송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3:16, 5:20-22). 여기서 보냄을 받은 자와 파견을 시키고 있는 자와의 관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본국에서 외국에 대사를 파송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국의 대사는 주재국에서 자신을 파견한 나라의 주권을 대리합니다. 주재국에서는 그 대사의 대리권을 믿고서 양국간의 협정을 체결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관계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대리자로 이 세상에 파송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성립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야훼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그 대리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제자들을 이 세상에 파송하고 있으므로 세상사람들은 그 제자들의 말을 들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영접하고 주님을 자신의 인생의 구원주이며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그 속사람 속에 임재하여 영적으로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이며 영생이 시작되는 일입니다. 그러한 자초지종을 성경말씀이 드라마틱하게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the God’s talk)를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시는 방식을 사람들에게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창조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계시를 받고 있는 인간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 신론(神論) 뿐만 아니라 인간론(人間論)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앞부분에서 사람들의 존재양식과 행동양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1:26).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거하면서 청지기의 교육을 받고 있었다(2:7-9, 16-17). 그런데 그가 외로워하기 시작했다. 영이신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육적인 삶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의 외로움을 달래주고자 처음에는 애완용 동물들을 그에게 보내어주었다(2:18-19). 한동안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동무가 되어 지냈으나 아담은 애완용 가축이나 새들만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영과 육의 완전한 형상과 모양을 가진 자를 친구로 삼기를 원했다. , 인생의 반려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으며 친히 그 손을 이끌어서 아담에게 보내어 주었다(2:20-22). 그들은 서로 사랑을 고백하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자고 맹세하면서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2:22-25). 그것이 인류최초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모시고 이룬 가정이었다. 그 가정의 특징은 첫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청지기의 가정이며 둘째, “부부가 되도록 중매하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셋째,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monogamy)라는 것이다. 그들 아담과 하와가 비록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퇴출되고 말았지만 그들의 하나님 사랑은 셋의 가계를 통하여 계승이 되고 있다(4:25-26, 5:3). 자신들을 청지기 교육을 시켜서 이 세상에 파송하고자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락원’(失樂園, lost paradise)에서도 잊지 아니하고 실천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5:22, 6:9). 그 결과 그들의 7대손 에녹에 와서는 그가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아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모범을 보이고 휴거가 되는 놀라운 역사까지 이루어졌다. 10대손인 노아와 그의 아들부부들은 모두 홍수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았다. 그들로부터 신 인류가 탄생했으며 그들에게는 무지개언약이 주어졌다(8:20-22, 9:8-17). 그 내용은 사람의 생각에 뿌리를 박고 있는 악한 영들의 지배를 장차 청산하고 온 세상을 죄와 사망에서부터 구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세상구원의 계획이 구약시대 선지자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계시가 되고 있으며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 아들의 파송으로 그 계획이 이 땅에서 바야흐로 성취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길게 설명을 했지만 한 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여서 이 세상의 청지기로 파송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악한 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계속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악한 영과 싸워서 사람들이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두 차례의 특별한 조치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을 구세주 메시아로 파송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얻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인간으로 태어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이 세상에서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 부활과 승천으로 죽음의 권세를 극복합니다. 그 후 진리의 성령님이 이 세상에 파견되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직접 임재하고 내주하여 역사하시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자 모두에게 증거해줄 것입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파송을 받은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고 온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매진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구원의 한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계십니다. 지금 그 분이 유대인 사회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 장소에서 자신을 구세주 메시아로 믿지 아니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5:23).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이 구원을 얻는 첫 번째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쉽게 풀이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들을 공경하는 것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방법이 된다. 그러므로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성취하라”. 그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의 제자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교회를 하나님의 지체로 인정하는 것이 지역사회가 구원을 받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며 주인이 되고 있는 교회를 세상사람들이 함부로 폄하하고 훼손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인님으로 모시고 신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핍박할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전도와 양육 그리고 중보의 기도가 살아 있음으로 말미암아 지역사회가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존속되고 있는 것입니다(18:32, 왕상19:18). 그렇게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강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의인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 성도는 사회적으로도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사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창조주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5:19, 22). 국가 사이의 대리권은 대사가 행사하고 있습니다. 대사의 말을 듣고 대사의 파견국과 조약을 체결합니다. 파견국이 대사에게 조약체결에 관한 권한을 위임하였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조약은 그 믿음에 기초하여 양국간에 발효가 됩니다. 따라서 주재대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대사를 통하여 그 나라의 의사를 확인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권한을 위임해준 그 나라가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을 하는 경우에 조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나라가 신용이 좋지 못하다면 그 대사의 말을 듣고서 조약을 체결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을 주고 아니 주고는 그 나라의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즉 파견을 받은 대사가 문제가 아니라 그 대사를 파견하고 있는 나라의 신용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만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말을 믿고 아니 믿고는 백성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말씀을 다시 살펴보고서 예수님의 말씀이 창조주 하나님의 본 뜻과 맞는지 않는지 하는 문제는 백성들이 판단을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중이 틀림이 없다고 믿는 자는 그 대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신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에 참여를 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복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의중과 다르다고 판단을 할 때에는 예수님을 배척할 것입니다. 간단하게 압축을 하자면, 만민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일 것인가 아니면 선민만의 구원을 고집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유대백성들에게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족을 붙이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서 만민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첫째, 이미 영생을 얻었고 둘째, 벌써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5:24). 아직 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서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예수님이 과거형 시제로 구원과 영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그들의 이름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창조주의 만민구원의 뜻을 믿은 그 순간부터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육체적으로는 아직이지만 영적으로는 벌써 소급하여 조치가 되었다는 진실로 기쁜 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엄청난 특권이며 사도 요한의 말에 따르면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1:12-13,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