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37강(요4:43-4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8. 11:54

요한복음 강해 제37(4:43-47)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53()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4:44)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 동네를 방문하신 기사는 공관복음에 상세하게 실려 있습니다(13:54-58 , 6:1-6, 4:16-30). 공통적인 내용은 어릴 적부터 예수님의 성장을 지켜보았으며 그 집안의 내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향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했습니다. 특히 의사 누가는 더 정확하게 기사를 쓰려고 나사렛을 방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향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까지 했다는 기가 막힌 사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격노하고 있습니다(4:28). 예수님이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있었기에 엘리야가 나라 밖 시돈으로 피신하였으며 또한 엘리사는 수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의 나병만 고쳐주었다는 것입니다(4:26-27).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그 의미가 장차 예루살렘에서 발생할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관련이 되고 있는 심오한 내용입니다. 고향 나사렛에서 자신을 배척하는 것이나 조국 유대 땅에서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를 못하고서 오히려 화가 나서 예수님을 해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선지자의 말씀선포와 메시아의 복음은 고향과 조국을 떠나서 이방 땅에서 그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11:7-12). 창세기에서 이미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1-3). 선지서 가운데 요나의 기록이 그 대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가 앗수르의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더니 놀랍게도 왕과 백성에 이르기까지 단숨에 모두 회개를 하고서 심판을 면하고 있습니다(3:3-10). 그러하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와 애굽이 모두 이스라엘과 더불어 구원의 대상이며 장차 복음의 전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지가 된다는 사실까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9:19-25).

공관복음에서 이미 상세하게 예수님의 고향방문의 행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는 배척을 받았지만 기타 갈릴리 지역에서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대조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43-45a). 고향을 제외하고 갈릴리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선지자 예수님을 환영했던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4:45b). 그리고 특히 가나와 가버나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수님 환영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환영하였기에 그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나에서 치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 치유의 기적은 멀리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4:46-52). 그와 같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헤롯 왕의 신하의 집안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4:53).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4:47)

 

부자의 귀는 밝습니다. 이유는 부자가 남보다 빠르게 정확한 소식을 듣고 있어야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도 그러하지만 옛날에도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가 역시 재물을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권력의 유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로마총독이 군정을 펴고 있었고 갈릴리 지역에서는 에돔 출신 분봉 헤롯이 로마황제의 신임을 얻어서 위임통치를 행하고 있었습니다(3:1). 분봉 헤롯 안디바의 왕궁이 가버나움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헤롯 왕의 청지기는 신분이 높은 자입니다(4:46, 8:3). 이유는 왕의 신임이 두텁지 아니하면 왕궁의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직분을 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하의 집은 당연히 가버나움에 있습니다. 그가 멀리 가나까지 예수님을 찾아오고 있습니다(4:47). 이유는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 있는 그의 집에서 그만 중병이 들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46). 참고로, 일부에서는 구사를 예루살렘과 가나안 일대를 전부 통치했던 헤롯 대왕의 청지기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헤롯 대왕의 통치기간이 BC 37년에서 BC 4년까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유는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예수님을 적극 후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8:3). 무려 30년이나 지난 시점 AD 27년경부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까지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살아 있으며 더구나 남편의 관직의 이름으로 여전히 불리고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의사 누가가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 헤롯 왕은 갈릴리의 분봉 헤롯 안디바라고 이미 기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1).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헤롯의 신하가 가나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하의 집안사람들이 때부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4:46-53). 그러므로 갈릴리의 분봉 헤롯 안디바의  신하인 구사가 아내 요안나를 통하여 은밀하게 예수님의 사역을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갈릴리 나사렛 출신인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성전청결사건을 일으켰습니다(2:13-22). 그리고 내륙으로 북상하면서 요단 강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3:22-23, 4:1-4).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표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푸는 물세례를 받는 백성들의 수가 자꾸만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적은 이제 정치적인 집단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동태를 정치권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 예루살렘의 로마의 군정당국, 갈릴리의 헤롯 왕의 신하들이 그들입니다. 가운데 헤롯 왕의 신하인 구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의 아들이 중병이 들어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입니다(4:46). 사람이 고칠 없는 병이기에 하나님의 사람의 안수와 기적적인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마침 예수님이 나사렛을 거쳐서 가나로 북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버나움에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서 예수님께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 니고데모가 그의 신분과 체면 때문에 밤중에 은밀하게 예수님을 찾아 왔다고 한다면 4 본문에서 구사는 그러하지를 아니했습니다. 아들의 목숨이 급한데 체면과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낮에 예수님을 찾아 와서 다짜고짜 가버나움으로 왕진을 가달라고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4:47). 그의 절박한 심정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세주를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구사처럼 아들의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절박한 아비의 심정으로 달려와서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유일한 구원의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