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17. 모세의 하나님 발견(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7. 00:56

17. 모세의 하나님 발견

 

(1)   모세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청년 모세가 생각해야만 하는 과제는 세 가지였다. 그 첫 째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히브리 인인가? 아니면 애굽 인인가? 두 번째 과제는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그 목적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과제는 풀었다. 유모 요게벳이 사실은 생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쉽게 풀릴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 레위 족장 아므람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은 명백하게 히브리 인이었던 것이다(6:20). 두 번째 과제도 풀었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은 애굽의 왕자로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애굽 인들의 노예가 된 히브리 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모세 인생의 목적이었다. 모세라고 하는 이름도 이를 나타내고 있지 아니한가? 민족의 해방자 모세! 어머니 요게벳과 아버지 아므람,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 등 부모 형제 모두가 자신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민족 해방의 염원이었다. 그 것은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노예 해방이기도 했다. 문제는 세 번째 과제였다. 어떻게 민족 해방, 노예 해방의 염원을 이룰 것인가? 애굽 왕궁에서 교육 받은대로 힘으로 이룰 것인가? 그렇다면 이 민족의 힘은 어떻게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히브리 인들의 숫자는 애굽 인 보다 적지 아니했다(1:9). 그 동안 수백년 동안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하나님의 보호로 신체 하나는 건강했으며 자식도 여럿 낳을 수 있는 다산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자신이 봉화의 깃발을 은밀하게 올려 보기로 했다. 히브리 인 동족들을 괴롭히는 애굽 인 하나를 쳐죽여서 암매장한 것이다(2:11,12). 이 쯤이면 자신이 누구인지 그들이 인정하고서 자기 주변으로 은밀하게 히브리 인들의 힘이 결집되어질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2)   모세의 생각은 180도로 빗나갔다. 동족들이 지도자로 믿어줄 줄 알았더니 오히려 살인자, 테러리스트로 자신을 몰아부친 것이다(2:13,14). 일이 탄로난 줄 알고 애굽 바깥으로 탈출했다. 그 결과 미디안 땅으로 흘러 들어가서 아브라함의 서자 미디안의 후예이며(25:2) 제사장인 르우엘(또는 이드로, 2:18, 3:1) 의 맏사위가 된 것이다. 양치기로 잔뼈가 굵어진 아내 십보라와 살면서(2:16,21)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양치기가 되어 신세 한탄이나 하였다(2:22).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한다는 십보라의 질책까지 받아 가면서(4:25) 양을 몰고서 먼 지방으로 떠돌았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이었다. 애굽의 왕자로 산 세월 만큼이나 긴 시간이었다. 허허 벌판 광야에서 낮이면 구름을 바라보고 밤이면 별무리를 쳐다 보면서 모세는 또 다시 생각했다.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제는 노예 해방자나 민족 해방자가 아니었다.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졌는데 어떻게 더 이상 그 목표를 고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 것은 다른 사람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의 목적은 다른 것일 것 같았다. 그 것은 무엇일까? 그 것은 과연 무엇일까?

(3)   80세가 된 노인 모세 앞에 갑자기 하나님의 불꽃이 나타났다(3:1-4).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하나님의 사자로 삼으셨다. 민족 해방자로, 노예 해방자로 임명하시면서 달랑 지팡이 하나 쥐어 주고 애굽으로 보내시는 것이었다. 유일한 말씀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3:12) 는 것이었다. 모세는 기가 막혔다. 그래서 거절했다. 지역 패권국인 애굽의 군사력에 자신이 정통해 있는데 가당하기나 하신 말씀인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라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신기한 기적을 보여 주셨다. 생사여탈권, 자연재해관리권, 질병과 치료의 역사 등이 모두 하나님께 속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로 다시 애굽 나라에 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처럼(3:18-22) 바로 왕과 애굽 귀족들의 완고한 인간적인 생각을 깨부수고 히브리 인들의 출 애굽 역사를 이루기 까지에는 뱀 만들기 뿐 아니라 열 가지 재앙을 전부 동원해야만 했었다. 장자들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들었다. 그래서 장정 60, 총 인구 240만으로 추산되는(12:37)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대장정에 오른 것이다.

(4)   40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하루 10 KM씩만 걸어도 요단 강 까지 400 KM는 주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40년이 걸렸다. 출 애굽한 20세 이상 어른이 오직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기고 모두 광야에서 죽은 후에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가? 문제는 바로 왕과 애굽 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히브리 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으로 탈바꿈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장 나라는(19:6) 거룩한 백성들이 그 구성원이었지 노예 근성과 애굽의 우상 문화에 젖어 있는 히브리 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광야 생활 40년간 모세는 절망했다. 돌판도 내던져서 깨어 버렸다(32:19). 자신이 생각한 노예 해방, 민족 해방은 잘못된 것임을 실감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로 서는 민족 해방, 세상적인 가치에 노예로 살지 아니하는 노예 해방은 과연 불가능할 것인가? 모세는 절망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로 돌판 두 개를 다시 주시면서 이 것만 전해주고 모세는 요단 강가에서 임무를 끝내라고 말씀하셨다(32:52). 모세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은 그의 소임이 아니라 메시아의 소임이었던 것이다(9:4,7,8). 요단 강가에 다다른 모세는 느보 산에 올라(34:1) 건너 편 약속의 땅을 내려다 본 후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쳐다 보았다.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며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34:4-8, 23:46). 왜냐하면 그가 궁극적으로 깨달은 인생의 목적은 민족 해방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위대한 일을 이루어 보겠다는 자신의 이데올르기로 부터 자신이 구원받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창조주에게로 돌아가자. 그 분의 얼굴을 부끄러움 없이 마주 보는 그 것이(34:10) 나의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모세처럼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만족스럽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