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비멜렉 왕의 하나님 발견
(1) 가나안 땅 서남부 해변가에 위치한 그랄 지역은 비옥하였으며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창20:1, 26:1, 민13:27,28). 그 곳을 지배하는 왕의 칭호가 아비멜렉이었다. “ 아버지의 왕”이라는 의미이므로 여러 지역의 왕들을 자식으로 둔 대왕이라는 뜻이었다. 징기스칸과 같은 뜻이므로 아비멜렉 왕은 정복 왕으로서 당연히 정치는 물론 군사에도 밝아야 했으며 힘센 블레셋 아낙 자손들을(민13:28, 고대 지중해 섬과 연안에서 이주해 온 북구의 바이킹과 같은 해양 민족들의 자손들) 다스리자면 절대 강자여야만 했다. 훗 날 다윗에게 쓰러지는 힘만 센 가드 출신 골리앗과는 달리 아비멜렉은 지략에도 뛰어나야만 왕좌를 지킬 수가 있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히브리 인 아브라함 부부가 이주해 왔을 때와 그 후 그 아들 이삭 부부가 그랄 땅에 왔을 때 그 들의 길을 안내하고 든든한 뒷 배경이 되어 주고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창21:22, 26:28).
(2) 그런데 아비멜렉 왕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지를 아니했다. 다만 힘이 센 하나님으로 부터 피해를 입지 아니하면 그만이었다(창21:23, 29-31). 두려우신 하나님(창20:8, 26:3,10), 그의 방백을 잘 대접하면 더불어 복을 주시지만(창12:3, 26:4) 잘못 대접하면 왕가의 모든 태를 닫아서 멸종시키시는 하나님을(창20:18) 자기 편으로 만들지 아니하는 대신에 아비멜렉 왕은 적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브라함 때나 그 아들 이삭 때나 아비멜렉 왕이 원한 것은 상호 불가침 평화 조약의 체결이었다. 그저 좋은 이웃만 되면 되지 않겠는가! 구태여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아브라함 부자 처럼 이방 세계를 나그네로 떠돌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옥한 그랄 지역만 있으면 그리고 지중해 바닷 길만 열려 있으면 현재도 넉넉하고 장래에도 계속 잘 살 수 있을텐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이 센 그리고 인간이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절대 신을 모시고 질질 끌려 다니면서 한 평생을 나그네로 고생하며 산다는 말인가? 그럴 이유도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또한 받은 복을 온 세상 모든 족속에게 훗 날 나누어 준다는 그 사상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피와 땀을 흘려서 마련하고 빼앗은 재물을 왜 아무 이유없이 이웃 나라에 그저 나누어 준다는 것인가? 그러한 손해만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법이며 약육강식의 세상 이치에 전혀 맞지 아니하는 흰 소리였던 것이다.
(3) 아브라함이나 이삭 일행이 그랄 땅에 머물러 주는 동안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동시에 있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우물에서 물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창21:25, 26:15,18,19,21,22,32). 농사도 풍년이 계속 되었다(창26:12). 믿음의 조상들이 받는 복이(창12:3) 그랄 땅에 흘러 넘친 것이다. 이에 비해서 그들이 주는 피해도 만만치 아니하였다. 첫 째로, 백성들이 히브리 인들이 자기 나라 땅에서 부자가 되는 것을 시기한 것이다(창26:14). 그냥 버려두면 살인이 날 판이었다. 둘 째로, 그렇게 되는 경우 하나님의 축복은 재앙으로 바뀌게 될 것이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사람은 바로 아비멜렉 왕가였던 것이다(창20:7,18, 26:10,28,29). 셋 째로, 아비멜렉 왕보다 힘이 센 절대 신이 만약 블레셋 나라에 군림하게 된다면 아비멜렉 왕의 위엄과 권위에 큰 위해가 발생할 판이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을 믿지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힘이 약하고 능력도 부족한 아비멜렉 왕을 “ 왕중의 왕”으로 떠 받들 것인가?
(4) 그래서 아비멜렉 왕은 가장 현명한 정치적인 결단을 내렸다. 하나님의 방백들을 잘 대접하다가 고이 나라 밖으로 내 보내자. 국경 바깥 브엘세바 땅으로 은밀하게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찾아가서(창21:22,31,32, 26:26,33) 그들을 만나 평화 공존의 협정만을 맺도록 하자. 이 것이 최선의 정치 외교적 해결 방법이었다. 아비멜렉의 기득권을 지키고 백성들의 정신적인 동요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복과 세상 만민들이 그렇게나 희구하고 있는 천국의 모습이 없었다(사11:4-9, 65:17-25). 아비멜렉 왕조의 기득권만이 절대적인 가치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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