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13. 이스마엘의 하나님 발견(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4. 14:34

13. 이스마엘의 하나님 발견

 

(1)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씨받이 하갈에게서 낳은 첫 아들이었다(16:15,16). 14년후 정실인 사라의 몸에서 적자 이삭이 태어날 때까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이었다(21:2-5). 장자가 족장의 지위를 승계하는 가부장 족장 사회에서 이스마엘은 비록 장자였지만 서자였기 때문에 적자로 태어나는 이복 동생인 이삭에게 차기 족장권을 양보하고 그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 것이 억울했다. 지난 14년 동안이나 자신이 누리고 있던 차기 족장의 위신과 신분이 이삭의 탄생과 더불어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100세가 된 아버지, 90세가 된 안방 마님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 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안방 마님 사라는 평생에 자식이라고는 낳아 본 적이 없는 불임의 여성이 아니었던가! 고목에 꽃이 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은 나무에서 꽃이 핀 것이다. 이와 같은 조화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 때문이라고 전해 들었을 때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두려웠다. 능력의 신 하나님, 그 분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지만 적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했다. 하나님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결코 자신이 하나님의 편이 되어 왜 그 분이 자신에게 장자권을 주었다가 도로 빼앗아 가버리셨는지 그 점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불합리한 문제는 자신의 힘으로 또는 인간 사이에 해결하면 되는 역사적 과제로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똑 같지 않는가? 할례로 따지더라도 자신이 이삭 보다 14년이나 먼저 받았지 아니한가? 적자와 서자의 구별은 가부장 사회의 전통이지 결코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하나님이 만든 제도가 아니지 아니한가? 그와 같은 제도는 힘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 것이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이 사고하는 기성 제도와 문화에 대한 기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이스마엘의 선지자인 마호멧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사라센 제국의 힘은 파괴적이었다.

(2)   이스마엘은 어머니 하갈과 함께 아브라함에게서 버림을 받았다(21:14).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만 달랑 매고서 브엘세바 들판으로 쫓겨난 것이다. 기가 막혀서 울었다. 어머니 하갈의 방성대곡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 났다(21:17). 샘물이 솟아 나는 곳을 알려 주면서 앞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 주었다(21:18,19). 아비에게 버림을 받은 자식 이스마엘, 하나님으로 부터 자손의 번성과 물질적인 축복은 받았지만 약속의 아들이 되는 영적 축복만은 받을 수 없었던 이스마엘! 그의 고민은 그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고 있었다.

(3)   이스마엘은 장성하여 광야에서 활쏘는 자가 되었다(21:20). 아내는 애굽인인 어머니 하갈이 역시 애굽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 들였다(21:21).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애굽 문명 사이를 오가는 대상들의 길인 아라비아 북쪽 광야에서 칼과 활로 일어선 이스마엘은 여러 부족들이 무시할 수 없는 주몽과 같은 존재였다. 가나안과 애굽 사이, 그리고 사해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의 광야를 지배하게 된 이스마엘은 교역을 통하여 부를 늘리고 문명권 사이를 오가면서 나름대로의 학문의 세계와 물질 문명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자손의 번성만 더해 진다면 가나안 지역에 한정된 이삭의 세력 따위는 두려워할 이유도 그의 영적 권위에 굴복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영적인 굴욕감을 부와 숫자의 많음 그리고 패권과 세상적 가치체계로 한 번 뒤집어 보고자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아비 아브라함은 137세 때 조강지처인 사라를 사별하고(23:1) 향년 175세가 될 때까지 38년간 후처인 그두라와 살면서 여섯 아들을 낳아 모두 재산을 주고 동방 땅으로 분가시켰다(25:1-6). 이를 지켜 본 이스마엘은 자신의 편이 더욱 늘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쪽 땅을 자신이 지배하고 그들이 동방 땅을 지배한다면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가나안 땅과 미개한 야벳 족속들이 살고 있는 서토로 진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포위하면서 자신의 장자권을 되찾아 오자! 이스마엘의 염원은 그 후손인 마호멧과 아랍인들에 의하여 계승되어지고 있으며 창세기의 갈등은 오늘날도 세계 패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적으로 그들을 과연 버리셨는가?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19:23-25). 다만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이 열패의식과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이를 만회하고자 인간적인 힘의 논리와 세속 종교적인 편법을 동원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선민 이방인 구별없이 부끄럽게도 이삭의 혈통만을 중시하는 유대주의자와 이를 미워하는 반유대주의자들이 극한 대결을 벌려오는 와중에 인류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본 뜻이 설자리를 잃었을 뿐이다(1:12,13, 3: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