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33강(요4:27-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6. 01:59

요한복음 강해 33(4:27-30)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4:29)

 

예수님과 수가 성의 여인과의 대화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중단되게 됩니다(4:27). 그렇지만 때쯤 필요한 최소한의 이야기는 모두 끝나고 있습니다. 여인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해준 입니다(4:29). 여인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모두 알게 해주었다는 놀라운 증언입니다. 따지고 보면, 과연 그러합니다. 여인의 과거는 다섯 남편과 함께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의지가 되고 자신을 보호해줄 있는 남편과 같은 존재로 우상을 섬기고 각각 다른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 왔지만 결코 원하는 보호와 안식처가 되지를 못했다는 공허함이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아직도 그러한 보호를 땅에서 구하고는 있으나 진정한 의지처가 되지 못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디로, 우물물과 같이 매일 물을 길어서 마셔도 여전히 돌아서면 갈증이 나는 그러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게 해줄 영적인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게 해주실 것입니다(4:19-20).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하여 야훼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고 영원한 만족을 주실 있는 메시아를 조용하게 기다리는 것이 여인의 유일한 소망임을 선지자가 알아본 것입니다(4:24-25). 그렇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자화상 그리고 미래에 대한 유일한 소원을 한꺼번에 알아 맞추는 사람이 있다니! 여인은 너무나 놀라와서 혹시 자신이 지금까지 유일한 소망을 가지고 바라고 있는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우물가에서 간접적으로 은근히 물어본 것입니다(4:25). 그러자 너무나 속이 시원한 답변이 들려왔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4:26).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수가 여인은 이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과 같이 희망이 없는 인생 앞에 메시아가 직접 나타나다니! 감격을 사람들에게 어서 가서 말하고 소리를 치고 싶은 것입니다. 그녀는 동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지 이상한 현상은 대화의 현장에 불쑥 등장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는 그와 같은 감격이 발견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격이 물결치고 있는 현장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가 여인의 영혼이 진동하고 있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약간 이상하다는 말고는 도무지 어떠한 변화도 감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4:27). 그러한 이상한 사도 요한의 기록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인간의 내면의 변화는 소리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의 확신이 그러합니다. 영적인 변화가 쉽게 바깥으로 노출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감지하지를 못하고 있지만 지금 수가 성의 여인의 내면에서는 진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생일대의 감격을 맛보고 있습니다. 살아 생전에 선지자를 만나고 메시아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 실제로 발생을 하다니! 이제는 분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받고서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배하는 일만이 시급합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을 혼자서만 가지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지금 시간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서 분을 만나볼 수가 있을까요? 수가 여인은 마음이 급해지고 있습니다. 결과 물동이까지 우물가에 버려 두고서 정신 없이 동네로 뛰어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4:28);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29). 말을 전해 듣자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우물가로 몰려 나오고 있습니다(4:30). 그들이 모두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들 모두가 여인과 같은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디로, 살아 생전에 자신들에게는 의지할 없는 현실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영생하시는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메시아가 가장 절실합니다. 갈증을 해소해줄 영적인 단비 바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입니다. 그것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 사상입니다(4:25). 잠시 요엘 선지자의 표현을 참조하여 말하자면, ‘이른 해당하는 의의 교사 메시아입니다(2:23). 분이 오신 다음에는 늦은 오시는 성령님의 강림이 남녀노소 만민에게 있게 것입니다(2:28). 바야흐로 마른 광야와 같은 사마리아 이방 땅에 영적인 단비가 차례나 내릴 태세입니다. 서막이 수가 성에서 그렇게 열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계자로 오시는 메시아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행차가 대단할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패권국 이스라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오시는 왕중왕 행차가 것이니 당연히 그러하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런데 메시아로 자처하고 있는 예수님의 행차는 실로 은밀하면서도 조용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분의 제자들도 뚜렷하게 감지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4:27). 유대인들은 표적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표적을 외형적인 데서 찾고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왕으로 모실 메시아는 현실적으로 로마제국을 물리칠 있는 무력의 소유자이며 동시에 놀라운 기적을 베풀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선보일 있는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죽어가는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며 백성들에게 하늘의 곳간을 열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수시로 제공해줄 있는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이어야만 합니다. 마디로,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메시아는 그와 같은 기적을 연출하면서 야단스럽게 등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21:7-11).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의 상징으로 있는 수가 성의 여인은 정반대입니다. 정치적인 메시아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해갈해줄 있는 메시아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를 받고 있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불쌍하게 여겨주실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긍휼을 베풀어서 메시아가 나타나서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와 더불어 하나님을 예배할 수만 있게 된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자신에게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주실 것으로 그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구원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인에게 오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인 갈급함을 해소시켜줄 있는 생수 그리고 현실을 이길 있는 소망입니다. 그와 같은 내면적인 욕구를 아시고 말씀으로 잔잔하게 풀이를 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신 분이 바로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 대화의 상대방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적임을 수가 여인의 영혼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표나는 외형적인 기적을 바라고 있는 유대교인들에 비하면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사마리아 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수가 여인의 바람과 메시아 관이 복음에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노년의 사도 요한이 자신의 깨달음에 기초하여 예수님과 수가 여인과의 대화의 내용과 행적을 여기에 특종으로 싣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