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31강(요4:19-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3. 4. 14:30

요한복음 강해 제31(4:19-21)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 27()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4:21)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드리는 인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두께의 장벽과 같은 것입니다. 두꺼운 장벽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깨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장벽은 제거될 있는 것입니다(2:18-22, 1:34-35, 27:50-54). 차이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은 시공간에 갇혀서 유한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간에 갇혀 있지 아니하며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영생을 누리시는 창조주입니다. 둘째,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알고서 지금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분입니다. 셋째, 인간은 생노병사의 과정을 밟고 있지만 하나님은 과정이 없습니다. 넷째, 사람은 모태에서 조성이 되어 태어나지만 하나님은 출생과정이 없습니다. 다섯째, 사람은 살고 있는 장소에 갇히어 문화 속에서 제약적인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장소에 갇히지 아니하며 만물과 만민을 한꺼번에 보고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하는 존재입니다. 끝으로, 사람은 성전을 지어놓고서 그곳에서만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왕상8:13, 4:19-20).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 갇혀있을 수도 없으며 그곳에서만 인간을 만나기를 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왕상8:27, 9:6-9, 11:4, 104:1-5) . 모든 관념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입니다(3:14). 결코 인간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이 우상처럼 다듬거나 만들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손길과 사고체계를 뛰어 넘어서 스스로 존재하고 계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을 예배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만남이 일대일로 대등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본체가 창조물인 인간 앞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하면 사람은 즉시 죽음을 맞이하고 것입니다(33:20). 태양 빛보다 강렬한 창조주의 영광 앞에 마주 서있을 있는 육적인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22:5). 오늘 인류는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조태양 만들고자 핵융합 반응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 수소와 헬륨의 반응에 불과하지만 일단 반응을 하게 되면 그것을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핵분열의 경우와 같은 연쇄반응’(chain reaction)으로 유지가 되지를 못하고 곧바로 폭발을 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높은 온도와 압력을 견디면서 자력을 생산하여 핵융합을 계속하게 해줄 있는 자성물질과 용기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핵융합보다도 강력한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인간이 만나고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서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믿음의 열조들이나 선지자들 앞에 때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잠시 현신을 하셨습니다(18:1-8). 그리고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 법궤 안에서 자신의 의사를 인간의 음성으로 변조하여 내보내기도 했습니다(25:22). 때로는 속이나 환상 가운데서 나타나셨습니다(28:12-22, 6:1-13, 37:1).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동안의 계시만 가지고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방법이 바로 본문 가운데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 앞에 마주 서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4:19-21).

지금 그리심 산의 성전이 나은가? 아니면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에 나은 장소인가를 여인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래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게 되면 사람들이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영적으로 예배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가 언제일까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 이루어지고 후가 것입니다. 이유는 현재 수가 성의 여인 앞에서 육체를 입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장차 부활의 몸을 입고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20:17). 그래서 사도 요한은 때에 가서 예수님이 자신의 영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 안식일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하시니라”(20:19-23). 예수님의 영이 제자들에게 임재하여 동행하고 있음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6-7). 사도 바울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세상에 강림하시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보혜사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재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24:49). 말씀 그대로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시고 능력을 주셨습니다(2:1-4). 결과 초대교회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2:32-47). 마디로, 성령의 세례로 이제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드릴 있는 방법이 가능해졌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영적으로 임재하여 동행하고 계십니다(14:16-20).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죽고 다시 태어난 존재인 성도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8:9-17). 그것이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에게 답변하시는 예수님 말씀의 풀이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복음으로써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하라고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계십니다; “ 이르시되, 너희는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그들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6:15-18). 성전에만 머물지 아니하고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성도들이 어떠한 예배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명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생을 살아갈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천국으로 들어갈 있게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그와 같은 은혜와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면서 각자 예배인생을 살아가기만 하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주일 성전예배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예배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