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패권(손진길 정치학박사)

동서양의 패권1 중국의 중심인 장안에 대하여(작성자; 손진길 박사)

손진길 2022. 2. 26. 16:58

동서양의 패권(작성자; 손진길 정치학박사)

 

1.    중국의 중심인 장안에 대하여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먼저 천하통일을 이룬 자는 최초의 황제로 불리고 있는 진시황인데 그는 본래 진나라의 왕이다. 당시 진나라의 수도는 훗날 천년의 고도 장안(長安)으로 불리게 되는 오늘날의 서안(西安, 중국발음으로는 시안)의 북쪽 30km에 위치하고 있던 함양이다.

진시황은 한족이 아니며 유목민 출신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진나라는 훗날 흉노로 불리게 되는 유목민 훈족이 남동진하여 차지하고 있던 섬서성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인구수로 보면 농업을 주로하고 있던 한족이 절대다수이다.

그들은 독특한 중원사상을 지니고 있는데 그들이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 수도는 섬서성의 장안(長安)이 아니다. 한족이 내세우고 있는 수도는 언제나 하남성의 낙양(洛陽, 중국발음으로는 뤄양)이다;

서쪽의 장안과 동쪽의 낙양은 불과 880리 정도 떨어져 있지만 두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중국사람들의 역사의식은 천만리나 떨어져 있는 것처럼 아주 다르다. 그 이유는 장안이 자리를 잡고 있는 섬서성은 본래 유목민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의 서쪽 변경이기 때문이다.

한편, 남쪽 장강과 회수지역에서 벼농사를 시작하여 민족의 수가 많아지자 한족은 북상하여 황하유역에서도 논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유목민 세력을 방어하기 위하여 섬서성의 장안을 마주보고 있는 하남성의 낙양을 중시하였으며 따라서 그곳이 역사적으로 한족의 자존심인 중원사상의 본거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전 221년에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황제국이 되지만 그 수명이 엄청나게 짧다. 주전 210년에 진시황이 죽고 그 아들이 황위를 잇지만 불행하게도 주전 206년에 동쪽에서 발흥한 초나라의 용장이며 군주인 항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천하는 다시 분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쪽에서는 유방이라고 하는 걸출한 영웅이 나타나는데 그는 출신지역으로 볼 때 한족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를 건설하면서 그 수도를 장안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한시대가 끝나고 나중에 후한시대가 되자 유목민 출신의 한나라 황실이 얼른 한족의 중화사상을 받아들여 낙양으로 천도하고 만다. 그들은 한족의 변방 오랑캐 멸시사상을 그대로 흡수하여 훈족을 흉노로, 한민족을 동이족 등으로 부르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벌써 중국의 역사 가운데 그 선례가 있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왜냐하면, 그 옛날 자신이 훈족 출신이면서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그때부터 용맹하기 그지없는 유목민 흉노의 직접 침입을 막기 위하여 고육지책으로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가 망하고 중국이 45열 되어 있을 때에 그것을 통일하여 수나라와 당나라가 연이어 성립되고 있다. 그들은 섬서성의 장안과 산서성의 태원을 중심으로 하여 천하를 통일한 유목민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도를 장안에 두고 있다;

당나라가 망하고 서기 960년에 비로소 한족에 의한 중국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조광윤의 송나라는 그 수도를 같은 하남성이지만 낙양에서 동쪽으로 480리 떨어져 있는 개봉(開封, 중국발음으로는 카이펑임)으로 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서쪽 장안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유목민의 세력을 막아내기에 그만큼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나라는 만주에서 발흥하여 서진하고 있는 여진족 금나라의 기세에 밀려서 서기 1126년에 황제와 상황제가 모두 사로잡히고 개봉을 빼앗기게 된다. 그것이 소위 정강의 변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때 겨우 살육의 현장에서 피신한 황제의 동생이 그 남동쪽 항주에 있는 임안에 새로이 수도를 세우고 남송을 세우게 된다. 그가 남송의 황제인 고종인데 그때부터 남송은 겨우 회수와 장강 이남을 다스리게 된다.

당시 만주족인 여진족은 만주에 살고 있는 유목민인 동족들을 거의 중국으로 이주시켰으며 그 수가 많지 못하여 서쪽에 살고 있는 유목민 거란족까지 중국에서 살 수 있도록 이주정책을 펴고 있다. 따라서 금나라의 수도는 만주에 가까운 오늘날의 북경(北京, 그 옛날의 연경임. 중국발음으로는 베이징임)인 것이다;

그렇지만 만주의 여진족보다 더욱 용맹한 북방의 유목민이 몽골족인데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큰 변화가 발생한다. 만고의 전쟁영웅 징기스칸에 의하여 그들 유목민이 통일을 이루고 그때부터 풍요롭고 살기 좋은 따뜻한 땅 중국으로 남하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금나라가 서기 1234년에 먼저 망하고 마침내 남송마저 서기 1279년에 징기스칸의 손자인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다. 그런데 원나라 역시 나중에는 북경을 수도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유목민을 북방으로 밀어내고 서기 1368년에 한족인 주원장이 천하를 통일하고 명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것이 한족의 마지막 통일왕조이다. 당시 명나라의 수도는 본래 남경이었지만 서기 1421년에 북쪽으로 천도하여 북경을 새로운 수도로 삼고 있다;

한족이 세운 통일왕조 명나라가 만주의 유목민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에게 밀려서 서기 1644년에 수도 북경을 빼앗기고 만다. 명나라의 잔존세력은 남하하여 남경에 수도를 두고 무려 40년간 청나라 유목민에게 저항하게 된다.

그렇지만 마침내 서기 1683년에 명나라의 한족은 그 운명을 다하고 만다. 따라서 외세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20세기초까지 한족의 중국을 다스리게 된다;

 요컨대,  서기 1912년에 한족의 시민혁명에 의하여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중국은 유목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외세에 의하여 지배를 당한 것이다.

그와 같은 동양의 패권국 중국의 역사를 고찰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패권의 특징을 알 수 있게 된다;

첫째로, 동양의 패권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중국이 실제적으로 한족에 의하여 통일왕조를 이루게 된 때는 19세기 이전의 역사에 있어서는 송나라와 명나라 시대 뿐이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신해혁명 이후에 한족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 외의 시대에는 외세인 유목민들이 중국으로 진출하여 터전을 마련하고 나중에는 중국천하를 통일하고 있는 것이다. 간략하게 살펴보아도 북방의 유목민으로서 섬서성을 지배하고 있었던 진나라의 진시황, 한나라의 고조인 유방, 그리고 동북면 선비족 출신인 수나라의 문제 양견과 당나라의 고조 이연 등이 그러하다.

그들 유목민 출신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이 하나같이 장안을 중심으로 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또한 중국의 다수 민족인 한족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서북면에서 용맹한 흉노족이 쳐들어 오는 것을 견제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수도가 흉노족을 막기에 전진기지가 되고 있는 장안인 것이다.    

둘째로, 13세기에는 북방의 유목민인 몽골족이 남하하여 원나라를 세우고 송나라를 멸망시켰으며 17세기에는 만주의 유목민인 여진족이 서진하여 청나라를 세우고 명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들의 수도가 북방과 동방의 유목민의 세력에 가까운 북경인 것이다.  

셋째로, 그런데 1911년에 우창에서 신해혁명이 발생하고 지방의 군벌들이 득세하게 되자 통일왕조 청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그후 중국천하는 3분이 되어 손문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장개석(중국발음으로는 짱제스임)의 국민당 세력, 서쪽에서 천하통일을 노리고 있는 모택동(중국발음으로는 마오쩌둥임)의 공산당 세력, 그리고 외세인 일본과 구미세력 등이 서로 힘을 겨루고 있다.

중국의 동쪽을 거의 점령하고 있던 일본제국이 미국에 의하여 19458월에 무조건 항복하게 되자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군사적으로 대결하게 된다. 그런데 지주와 상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던 국민당 세력이 노동자와 농민 세력을 의지하고 있던 공산당 세력에 의하여 중국본토를 잃어버리고 서기 1949년에 대만으로 내쫓기고 만다;

그때부터 중국본토를 장악하고 있는 한족의 공산당은 자신들이 동양의 유일한 패권국이라고 다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적인 중화사상이 모든 유목민 세력을 이미 흡수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동북아공정을 실시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인 조작에 그치지 아니하고 주변의 나라와 민족을 전부 문화적으로 흡수하고 동시에 군사적으로 정복하고 말겠다는 야심이다.   

결론적으로, 한족의 역사는 중국천하의 패권에 있어서 그 지배세력으로 행세한 시기가 상당히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와 21세기에 한족이 중국천하를 지배하고 있기에 오늘날 모든 유목민과 변방세력이 모두 황제사상과 중원사상을 지니고 있는 한족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인 뿌리가 약한 패권주의로서 단지 오늘날 중국의 공산당이 아전인수격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힘의 논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를 올바르게 고찰하게 될 때에는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너나없이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명분이 빈약한 한족의 동양패권은 오래 지속되기가 힘들다고 하겠다. 그것이 역사에서 알 수 있는 소중한 하나의 결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