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20강(요2:19-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26. 04:02

요한복음 강해 20(2:19-25)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 4 18()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독생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 14).   말의 뜻은 독생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고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고 계십니다(1:3-30). 그리고 말씀은 오늘날에도 인간에게 계시가 되어 생각과 행동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구태여 비유를 하자면 황제의 칙서와 같은 것이며 왕의 조서와 같은 것입니다. 일단 칙서가 내리고 어명이 전해지면 만조백관과 백성들은 그대로 따라야만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독생자께서 직접 인간세상에 계시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독생자가 원하는 선지자를 통해서 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점을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어쨌든 하나님과 함께 계신 독생자가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계시를 주관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독생자가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게 전하다가 보니까 계시를 받은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를 너무나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결과 독생자의 성육신이신 예수님이 인간에 대해서 너무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를 훤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셔서 가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만든 유대교의 성전도 믿을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2:16-22). 둘째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지 아니하는 사람은 신뢰의 대상도 의지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2:23-25). 먼저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하여 성전을 헐고 완전히 신뢰할 있는 새로운 성전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2:19). 새로운 성전은 하나님이 진실로 믿고 임재하실 있는 부활의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2:21-22). 그것은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조성을 받았던 육신을 벗어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받게 되는 새로운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3:3-12). 마디로, 옛사람의 죽음이며 새로운 성령의 사람의 탄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생의 의미와 직결이 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몸에는 하나님의 완전한 임재와 능력이 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시공간을 통과하며 몸으로 아무런 도움이 없이 바로 천국으로 승천하는 장면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20:19, 24:50-51).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그러한 몸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비결을 말씀 드리자면, 예수님처럼 살다가 죽으면 부활의 몸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째 열매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뒤를 따라 계속 부활의 열매가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20-24). 그렇지만 당장은 살아 생전에 땅에서 영광을 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유는 겉사람과 옛사람 때문에 새로 태어난 속사람이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입니다(7:21-25). 그래서 도움을 주고자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속사람 속에 임재를 하고 계십니다(8:1-2, 9-17). 성경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시는 시대가 전개되고 교회가 탄생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20:21-23, 1:8, 2:1-47). 뿐입니까? 성령의 전에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영적으로 함께 임재하고 있습니다(14:18-19). 그리고 살리시는 영이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고 있습니다(14:20, 8:11).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법 그리고 옛날 습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따른다면 살아 생전에도 영적인 삶이 가능하고 구원과 영생의 확신과 기쁨을 세상에서도 누릴 있을 것입니다(6:4).

다시 한번 말씀을 풀이해보자면, 그러한 사실을 본문에서는 가지의 기사로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계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하여 제도화시키고 있는 것이 이른 선민들의 유대교입니다. 유대교의 상징이 여기서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청소하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아예 헐어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짓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건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부활의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것이 죽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종교적인 개혁의 차원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다. 완전한 변혁, 본질적인 재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완전히 새로 창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훗날 니고데모에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3:3-10).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인간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23-24). 그것을 독생자로서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계시자로서 인간을 파악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지만 결코 선민들이 온전한 회개를 하지 아니했다는 절망감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 전체 기간을 함께 동고동락하게 되는 열두 제자들도 완전히 의지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8:20). 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승이 체포가 되고 나면 길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질 것을 이미 아시고 있기 때문입니다(14:27-31, 13:37-38). 완전히 신뢰할 있는 자는 오로지 인간적인 필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제자들도 아직 인간적인 필로 사랑에 머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목숨의 유지가 먼저인 것입니다. 그러나 목양의 생활 가운데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마침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 사랑의 경지에 이르게 것임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언하고 있습니다(10:10-11, 15, 17, 21:15-19). 그것은 예수님이 개인 베드로에게 주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제자들에게 주고 있는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자 하는 모든 제자에게 앞으로 성령의 능력이 주어지고 성화의 열매가 있게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16:15-18, 17:17-26). 그러한 자는 주님이 믿고 의지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주님이 신뢰하고 어린 제자의 양육과 선교를 안심하고 맡길 있는 교회와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