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 제17강(요2:11, 18)
작성자; 손진길 목사(로토루아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년 4월 17일(수)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표적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5:17-18). 기도하고 간구하면 엘리야 시대처럼 엄청난 표적이 이 땅에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첫째, 유다 백성들이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요4:48). 그 점은 본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요2:18). 둘째, 그러나 많은 표적을 행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요12:37). 셋째, 그래서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을 하시고(막8:12) 오로지 요나의 표적만을 다시 보여주고자 하십니다(욘1:17, 마12:39). 그것은 죽은 지 삼 일만에 무덤에서 다시 부활을 하는 표적입니다(마12:40, 막8:31). 넷째, 그 부활의 표적에 이어서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님의 강림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속사람 속에 성령의 전이 건설되고 영적으로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임재하시게 됩니다(고전6:19, 요14:17-20). 그 때부터 성도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영적인 삶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롬8:1-18). 따라서 구원과 영생의 확신 가운데 힘있게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바로 표적 중의 표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엘리야의 경우를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 마디로, 엘리야의 시대는 종교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당시 북조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아내 이세벨의 영향을 너무나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우상을 섬기기로 유명한 페니키아 시돈 왕국의 지배자 ‘옛바알’의 딸입니다(왕상16:31). ‘옛바알’이라는 왕의 칭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땅에서는 바알을 섬기는 대제사장이 왕의 직무를 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초창기 신라시대에 천신(天神, the heavenly God)을 섬기는 제사장의 이름 ‘차차웅’이 왕의 칭호로 사용된 것과 동일합니다. 어업의 중심지 시돈에 유독 우상숭배가 심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첫째, 어업은 풍흉을 짐작할 수 없는 대표적인 산업입니다. 그래서 풍어를 비는 제사가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바다의 날씨가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어로작업을 하다가 폭풍을 만나게 되면 비명횡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닷길의 안전을 항상 신에게 빌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힘이 센 신 ‘바알’에게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시돈의 백성들은 농사의 신 바알이 풍작뿐만 아니라 풍어까지 가지고 온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세벨은 그 땅의 공주로서 ‘바알’ 섬기기에 열심이었던 여자입니다. 그녀는 비록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왕비가 되었지만 야훼 대신에 ‘바알’ 우상을 섬김으로써 나라의 번영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아합 왕이 하나님신앙을 버리고 이세벨을 따라서 ‘바알’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왕상16:30-33). 백성들도 물질적인 축복을 바라고 우상 ‘바알’을 섬기게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의 씨가 말라가는 형편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러한 비상시국에 엘리야가 등장하여 하나님의 표적을 행하고 있습니다(왕상17:1-7). 그가 부르짖자 3년6개월 동안 가뭄이 계속됩니다. 다시 기도하자 큰비가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제단주위를 살라버립니다(왕상18:37-38). 놀라운 하나님의 표적을 보게 되자 백성들이 용기백배하여 바알 선지자를 도륙하게 됩니다(왕상18:39-40). 그런데 그 효과가 길지를 못합니다. 이세벨이 군대를 동원하여 선지자 엘리야를 집요하게 죽이려고 할 때에 그를 도와주는 백성이 없습니다(왕상19:1-4, 10). 정치집단의 종교적인 탄압 앞에 백성들이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목숨을 보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17세기에 일본에서도 재현이 되고 있습니다. 강력한 무신정권인 막부가 기독교인들을 탄압하자 멸절이 되고 맙니다. 그 결과 21세기 오늘 날까지 일본에서는 하나님 신앙을 찾아보기가 쉽지 아니합니다. 한 마디로 우상숭배가 극심한 나라로 계속 남아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길게 말씀을 드린 이유는 ‘표적’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표적’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증거가 됩니다. 둘째로, 그러나 그것만으로 완전한 하나님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표적은 표적에 그치고 맙니다. 세월이 지나고 더 이상 표적이 계속 발생하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표적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는 그 영원한 표적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미 모두(冒頭)에서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그것은 부활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 역사하심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도 부활할 수 있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성도들에게 임재하고 계시는 성령님이 매일 강화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생에의 확신은 인간의 이데올르기나 사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인간 이성의 한계와 과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구원과 영생에 대한 믿음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피조물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표적 중의 표적이며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표적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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