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91강(창49:29-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4. 08:04

창세기 강해 제291(49:29-3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10()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안장되어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야곱의 언급(49:31)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자 그녀를 막벨라 굴에 안장을 합니다(23:2, 19). 그 굴과 주위의 밭을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서 은 400세겔이라는 큰 돈을 주고서 샀습니다(23:16-20). 그 후에 아브라함이 죽자 그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역시 그 막벨라 굴에 부친의 장사를 지내게 됩니다(25:9-10).

그 다음 에서와 그의 아내 리브가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삭의 죽음만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헤브론에서 죽자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35:29). 그런데 창세기가 끝나가기 전에 제49장 본문에서 갑자기 야곱이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부모님과 그의 아내 레아의 장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49:31).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와 그의 아내 레아의 장례식에 관해서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그녀들이 모두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어 있다고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한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어머니 리브가의 죽음이 분명히 야곱의 금의환향 이전에 있었을 터인데 왜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를 않을까요? 그리고 레아가 남편 야곱을 따라서 애굽으로 이민을 온 것으로 분석이 되고 있는데 왜 그녀의 장례식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 아니한 것일까요? 그 점에 관하여 나름대로 이미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그 내용을 간략하게 다시 한번 적어보고자 합니다; “리브가는 차남 야곱을 장남 에서처럼 꾸며서 남편 이삭의 방으로 들여보냅니다(27:12-19).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함입니다. 비록 그녀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렇게 하였다고는 하지만(25:23) 그것은 하나님의 족장인 남편 이삭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과 생전에 이별을 하게 되고 살아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동생 라헬과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30:8-9, 15).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그 대신 많은 아들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서운한 마음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이민을 와서도 라헬의 몸종출신 첩 빌하를 냉대했으며(46:23-25) 라헬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대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라헬에 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는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29:35). 그 결과 비록 그녀의 장례식 장면이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믿음의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49:31)”.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면서 되도록 중복설명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미가 같은 사건은 그 횟수를 줄이고 있습니다. 대 족장 이스라엘의 장례식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그의 아내 레아의 장례식을 생략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의미의 장례식이기에 중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장례식 만으로 충분한 교훈이 미래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달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그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한 마디로, 애굽에서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약속의 땅 막벨라 굴로 들어가서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가르침입니다”(11:13-16, 25-26).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땅 선영 막벨라 굴로 돌아가려는 이유(49:29-33)

 

가나안 땅 헤브론 골짜기에서 살고 있던 야곱이(35:27, 37:1, 14)  식솔들을 모두 이끌고 애굽으로 이민을 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가나안 땅에 흉년이 연이어 찾아와서 먹을 양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42:2, 43:2, 45:6). 그러므로 흉년 가운데에서도 곡식을 저장하고 있는 애굽 땅으로 이민을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둘째, 총리 요셉의 이민 초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45:9-11). 요셉은 애굽 땅에 노예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조상의 하나님을 만나고 전적으로 의지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지혜를 얻었으며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좋은 정책을 제시할 수가 있었습니다(41:32-36).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만민의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고 있습니다(50:20). 위의 두 가지 사실을 간추려보면,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으로 이민을 간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이 애굽에 있으며 그곳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양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6:48-51, 67-68).

그와 똑 같은 이유로 이제 야곱은 죽어서라도 가나안 땅 선영이 있는 막벨라 굴로 들어가려고 합니다(47:29-31, 49:29-33). 막벨라 굴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잠을 깨워서 천국으로 인도해줄 메시아를 그곳에서 모두들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11:16, 5:28-29, 11:11, 43-44). 야곱은 빨리 그 대열에 합세하고 싶어합니다. 살아서는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이 있는 애굽이 좋았지마는 이제 죽음을 앞두고서는 부활의 소망이 숨쉬고 있는 막벨라 굴이 야곱에게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야곱처럼 살아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죽음을 앞두고서는 자신에게 부활을 가져다 줄 그리스도를 만나러 가고자 걸음을 옮기는 것이 축복 받은 인생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