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90강(창49:27-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4. 08:02

창세기 강해 제290(49:27-2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10()

 

베냐민에 대한 야곱의 예언은 무엇인가?(49:27)

 

야곱은 22첩이 있었지만 평생토록 라헬만을 연애하고 사랑했던 인물입니다(29:20, 30, 30:15). 그리고 야곱은 애처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 끝에 라마에서 객사를 하자 그때부터는 그녀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만을 사랑했습니다(35:18, 37:3, 42:38, 44:30-31). 야곱의 사랑이 비록 인간적인 편애의 모습으로 비추어질지는 몰라도 그가 요셉과 베냐민을 엄청 아끼고 사랑했다는 사실만은 진실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대 족장 이스라엘은 사랑하는 막내 아들 베냐민과 그의 자손들에 대하여 잔인할 정도의 예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49:27).

야곱의 예언은 먼 훗날 사사 시대 베냐민 지파의 역사를 참조하면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나머지 열한 지파와 전쟁을 벌이기 때문입니다(20:14-17). 그 전쟁의 계기는 애초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그의 첩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베냐민 족속들의 성읍 기브아에서 일박을 하는 동안에 발생한 사건에 기인하고 있습니다(19:16-30). 그 사건은 그 옛날 아브라함 시대에 두 천사가 소돔 성 롯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에 발생한 사건과 동일합니다. 당시 소돔 성의 주민들은 두 천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서 그들을 밖으로 끌어내어 욕을 보이고자 했습니다(19:5). 소돔 성의 주민들은 아름다운 용모의 남자를 보면 성적으로 흥분을 느끼고 남색을 자행하는 잘못된 행위에 푹 빠져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 제1장의 기록에 비추어보면 다음과 같이 저주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1:24),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1:27).

기브아에서도 베냐민 사람들에 의하여 동일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19:22). 집 주인 노인은 여행객인 레위인 남자를 보호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레위인의 첩이 성적인 제물로 그 무리들에게 제공이 됩니다. 그 결과 베냐민 족속들은 그 여자를 밤새 욕을 보이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맙니다(19:25-28). 그 일이 너무나 참혹하고 악하여 레위인 남자는 그녀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이스라엘 열한 지파에게 호소를 합니다(19:29-30). 그러나 베냐민 지파는 열한 지파의 개입을 반대하면서 전쟁을 벌입니다(20:11-14). 그 결과 베냐민 지파는 거의 몰살을 당하고 오직 600명의 용사만이 남게 됩니다(20:46-48).

훗날 베냐민 지파에서 초대 왕 사울이 나타납니다(삼상9:1-2, 10:1). 그리고 사도 바울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역사 가운데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3:5). 그러나 그 옛날 기브온 성읍에서 보여준 그들의 행위는 영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완전히 타락해버린 저주스러운 모습입니다. 그와 같은 행태는 한 마디로 이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미래를 내다보면서 베냐민에게 자손들을 잘 다스리라고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남의 것을 약탈하고 빼앗은 것을 먹고 마시며 즐기는 늑대의 모습이 바로 베냐민 족속의 미래상이 될 수가 있으므로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세상의 잘못된 습관을 따르지 아니하도록 베냐민 지파는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어 달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49:27).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49:28)의 의미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두 아들을 불러모아 놓고서 운명 직전에 야곱이 행하고 있는 예언과 축복의 기도도 분명히 부모의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으며 그 말씀 가운데서 아들들과 그 후손들의 미래를 보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야곱은 자기 마음대로 예언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좋은 말만을 골라서 아들들의 장래를 축복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예언과 축복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서 행해져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와 같은 정직한 내용이 아니라면 그것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야곱이 죽기 전에 영적인 눈을 부릅뜨고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아들들에게 예언과 축복의 기도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였다는 사실을 모세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나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4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