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89강(창49:22-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3. 05:55

창세기 강해 제289(49:22-2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9()

 

요셉 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크신 복을 야곱은 먼저 어떻게 찬양하고 있는가?(49:22-24)

 

첫째로, 요셉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에 머물고 있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애굽 제국의 백성들과 주변 국가의 모든 백성들을 7년 흉년으로부터 구원해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자입니다. 그 사실을 아버지 야곱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크신 복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49:22).

둘째로, 요셉을 장차 크게 사용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의도는 일찍이 17세의 요셉의 꿈을 통하여 예고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꿈은 이스라엘의 차기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묶은 볏단 주위에서 형들이 묶은 볏단들이 절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7:7-8). 그 무성한 가지가 이스라엘 족속과 가나안 지역의 담을 훌쩍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의 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별들뿐만 아니라 해와 달도 요셉에게 절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37:9-11). 요셉의 부모님도 장차 그의 도움을 크게 입고서 구원의 혜택을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그 예언이 실제로 22년 후에 애굽에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셋째로, 17세의 소년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와서 30세에 총리가 됩니다(37:2, 41:46). 그 세월 13년 동안 요셉이 겪은 고난과 고생을 엄청난 것입니다; “가나안 세겜의 북쪽 도단 땅에서 이복 형들이 요셉을 죽이고자 했습니다(37:20). 그러나 유다의 설득으로 요셉은 겨우 죽음을 면하고 애굽 땅으로 팔려가는 노예신세가 되고 맙니다(37:26-28). 그가 이방인 함족의 대제국 애굽에서 오로지 조상들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서 매어 달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39:2-3). 형통의 은혜로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신임을 얻습니다. 그러나 안방마님의 유혹을 뿌리치자 너무나 억울하게도 감옥살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39:19-20)”.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그 모습을 야곱은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49:23).

넷째로, 하나님께만 매어 달리고 있는 요셉의 신앙은 끝내 승리를 얻게 됩니다. 그 점을 이스라엘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49:24). 야곱은 요셉을 사지에서 건지시고 새로운 승리의 운명을 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생하고 있던 자신을 어엿한 족장으로 세워주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31:41-42).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고 정확하게 이스라엘이 신앙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49:25a)의 의미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의 신하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어엿한 가나안의 대 족장 이스라엘의 운명으로 바꾸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32:28-33:4, 35:9-15, 48:22).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확실하게 분별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이 바로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49:25a)는 대목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위하여 하나님께 축복의 기도를 드려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을 줄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 복은 오로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차이를 설명하면서 하나님 앞에 반듯하게 서있는 야곱의 모습은 참으로 성숙한 신앙인 이스라엘의 위대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모습의 아버지 야곱을 바라보면서 요셉의 신앙도 놀랍도록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로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이스라엘처럼 살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출애굽을 하여 들어가고자 작심을 하게 됩니다(47:29-31, 48:3-6, 19-21). 그와 같은 요셉의 선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모세는 창세기의 기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50:22-26).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49:25bc)의 의미

 

흔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하늘의 신령한 복땅의 기름진 복으로 구분하여 말합니다. 본문에서 야곱은 하늘의 신령한 복위로 하늘의 복”(49:25b)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땅의 기름진 복에 대해서는 그 표현을 훨씬 상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49:25c).

이 땅에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기름진 복은 세 가지라고 야곱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깊은 샘의 복입니다. 둘째, 젖먹이는 복입니다. 셋째, 태의 복입니다. 그것은 지금 땅에서 얻고 있는 복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족속은 목축을 하고 있습니다. 샘물이 있으면 안심하고 가축을 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샘이 깊으면 깊을수록 수량이 풍부하며 가뭄에도 마르지 아니합니다. 그와 같은 깊은 샘물은 산업을 번창하게 하며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깊은 샘의 복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여인의 태를 열어주시는 하나님, 아기에게 젖을 먹여줄 수 있도록 산모에게 먹거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는 기업의 창대함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장차 요셉 지파에게 그와 같은 생육과 번성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49:25). 이스라엘의 축복 그대로 훗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족속이 가나안에서 번성하게 됩니다. 므낫세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에브라임은 쟁쟁한 민족의 지도자를 배출하면서 훗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창건하게 됩니다(왕상11:26, 12:20).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49:26a)라고 야곱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선조들보다 더 많은 성취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고 있는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계자인 약속의 아들 이삭은 자신들의 운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운명을 얻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만은 타고난 운명을 새로운 운명으로 바꾼 신앙인입니다. 그는 에서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어 달린 사람입니다. 이미 태어날 때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는 하나님의 예언이 있었으니 그 말씀을 실현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집념을 가지고 매어 달렸든지 하나님의 사자가 항복을 했습니다(32:25). 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었습니다. 타고난 운명을 바꾸고 전투에서 승리를 한다는 것입니다(32:28). 한 마디로, 가나안 땅에 우뚝 서게 되는 대 족장의 칭호가 이스라엘인 셈입니다(48:22). 그러므로 야곱의 성취가 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에 비추어볼 때에 더욱 뛰어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아버지 야곱의 축복이 그 선조들의 축복보다 더욱 낫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49:26)

둘째로, 요셉을 알고 지낸 햇수를 따진다면 야곱이 가장 깁니다. 예를 들어보면, 요셉이 17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됩니다(37:2, 28). 그때 아버지 야곱의 나이는 108세입니다. 할아버지 이삭의 나이는 168세입니다. 증조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나이는 268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야곱은 147세 향년이 될 때까지 앞으로 39년간을 더 생존합니다(47:28). 할아버지 이삭은 180세가 향년이므로 12년 후에 운명하고 맙니다(35:28). 증조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은 175세가 향년이므로 이미 9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25:7). 따라서 요셉을 애굽에서 다시 만나고 17년간을 더 그를 지켜본 사람은 당연히 아버지 야곱입니다(47:9, 28). 요셉에 대하여 오랜 세월 관찰을 하면서 함께 살아온 아버지 야곱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예언과 축복을 해줄 수가 있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49:26b)의 의미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49:26)라는 말은 한 마디로, 첩첩산중(疊疊山中, 산이 겹쳐 있음. 가도 가도 산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임)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축복은 먼저는 위대한 산과 같은 인물 요셉의 머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 가운데에서도 그 만큼 뛰어난 인물이 또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셉과 견주어도 결코 부족하지 아니한 새로운 리더가 바로 유다입니다. 그는 요셉이라고 하는 하나의 거대한 산을 지나고 나면 그 다음에 만나게 되는 또 다른 태산준령(泰山峻嶺, 큰 산과 높은 봉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축복이 먼저는 요셉에게로 돌아가고 그 다음에는 요셉의 형제 중의 뛰어난 자 유다의 정수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의미심장한 축복의 예언입니다. 당장은 요셉이 애굽에서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유다 지파가 십이 지파의 리더가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교묘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찰력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지혜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요컨대, 죽기 전에 엄청난 선견자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스라엘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