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84강(창49:5-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1. 20:44

창세기 강해 제284(49:5-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5()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에 대한 아버지 야곱의 예언 및 축복기도의 내용(49:5-7)

 

소위 세겜 사건의 주범이 시므온과 레위입니다(34:25). 그들은 여동생 디나를 욕보인 세겜 추장뿐만 아니라 아예 히위 족속의 남자 모두를 도륙하고 맙니다. 자신들의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면서 엄청난 보복행위를 자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시므온과 레위의 앞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49:5-7).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야곱의 예언이 그대로 실현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자손들은 그 세력이 미미해지는 것입니다. 그 힘이 결집이 되지를 못하고 모래알같이 흩어져버리는 족속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49:7).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저주를 초래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분노(provocation) 때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동생 아벨을 시기하고 있는 카인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 그러나 카인은 시기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동생을 죽여버리는 분노의 화신이 되고 맙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면, 시기와 분노가 원죄를 구성하고 또한 죄악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경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엄격한 구별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다는 사람은 자꾸만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선악과를 따먹고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합니다(3:5-6). 그것은 하나님의 지위를 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자면, 피조물로서의 지위를 이탈하여 창조주를 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를 시기할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질투하고 있습니다. 그 실례가 카인의 아벨 암살사건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인간사회에서 더욱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카인의 5대손인 라멕의 대에 와서는 77배로 보복을 하게 되는 분노의 시대가 전개되고 맙니다(4:23-24). 그 분노가 이스라엘의 집안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입니다. 소위 세겜 사건을 통해서 폭발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의 마음에서 치유를 받을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세겜 사건후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야곱의 차남인 시므온과 삼남인 레위가 종들을 끌고 가서 세겜 성을 급습합니다. 세겜 성의 히위 족속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서 한참 고통 중에 있는 3일 날을 택하여 기습을 한 것입니다(34:24-26). 세겜 성의 지배족속이었던 히위족속이 말살되고 맙니다. 그러자 야곱의 아들들이 그 성의 여자들과 가축을 모두 약탈합니다(34:27-29).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야곱은 땅을 치고 후회를 합니다. 주변에 함족 원주민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겜 사건을 알게 되면 야곱의 집안은 초토화가 되고 말 것입니다(34:30).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엄청난 사건을 벌린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앞뒤 분간을 못하고 그저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우기기만 합니다(34:31). 야곱은 드디어 자신의 힘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없음을 알고서 하나님 앞에 다시 납작 엎드리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에게 살길이 열립니다. 우상과 이방 풍습을 버리고 벧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애초의 서원을 지키라는 것입니다(35:1-5)”.

 

야곱의 예언과 축복기도의 효력은 언제까지 미치고 있는가?(32:26, 33:1, 삼상2:30)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야곱의 예언과 축복의 기도의 내용이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기업의 분배에서 제외가 되고 여러 지파의 땅에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21:3). 그리고 시므온 지파는 그 세력이 너무나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12지파의 하나로서의 땅을 배분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시므온 족속은 유다 지파의 땅을 일부 배정받는데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19:1)”. 참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 두 번 자신들의 장정의 수를 점검했습니다. 그때 시므온 지파의 장정의 수는 다음과 같이 격감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시므온 자손의 지휘관은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인데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59300명입니다(2:12-13). 그런데 나중의 두 번째 인구조사를 보면,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 만한 자는 22200명에 불과입니다(26:2, 14)”.

시므온 지파의 인구수가 격감한 것은 전투를 좋아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적을 많이 죽인다고 하는 것은 아군의 피해도 크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를 좋아하는 시므온 자손을 하나님께서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신 결과로 보입니다(1:24). 그 반면에 레위의 자손은 시므온 자손과 달리 행동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두 영웅 모세와 아론을 배출하면서 그들의 행동에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2:1, 10, 4:14, 5:1-3). 더 이상 폭력을 좋아하는 시므온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합니다(32:26). 무기를 더 이상 자신들의 분노를 발산하는 도구로 사용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도구로서만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 레위 지파는 제사장을 배출하고 성막과 성전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는 지파로 거듭나게 됩니다(40:12-15, 대상6:31-53). 그들이 유다 지파와 함께 제사장나라를 이끌고 가는 견인차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새로운 운명으로 거듭나는 일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그와 같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모세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예언과 축복의 기도를 행하고 있습니다(33:6-29). 요컨대 모세의 축복의 기도에 의하여 야곱의 것은 보정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