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86강(창49:13-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2. 13:44

창세기 강해 제286(49:13-1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7()

 

같은 레아의 아들들인데 잇사갈과 스불론은 왜 그 서열이 뒤바뀌어 있는가?(49:13-14, 30:17-20)

 

형제간에 서열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서열을 중시하고 있는 고대 족장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같은 어머니 레아의 막내들인 잇사갈과 스불론의 서열이 바뀌어 있습니다(30:17-20). 동생인 스불론이 앞서고 있습니다(49:13-15). 그 이유를 드러내고 있는 모세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49:13). 야곱의 예언은 스불론 족속이 해변에 거주하며 해변의 통행로와 무역항인 두로까지를 장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군사들이 이동을 할 수 있는 해변로를 장악하고 나아가서 지중해 무역을 석권할 수 있는 페니키아의 두로 항구를 지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스불론 지파야말로 열두 지파 가운데 가장 번창하는 족속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의 예언은 그냥 축복의 기도에 그치고 맙니다. 그 이유는 훗날 가나안 북부 해변의 땅은 스불론이 아니라 아셀 지파의 차지가 됩니다. 그리고 아셀 지파가 장악을 했던 두로의 항구도 멀지 않아 시돈에서 남하하는 페니키아 인들에 의하여 장악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해변 길을 얻었던 아셀 지파도 크게 번성하지를 못하고 BC 722년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지상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유일한 아셀 지파의 후손이 BC 4년경 아기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 선지자 안나의 이름으로 등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2:36-38). 참고로, 그녀의 조상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당시 남쪽 유다 왕국으로 월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BC 19세기의 이스라엘의 예언과 축복의 기도는 BC 8세기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까지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선지서 제9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9:1). 여전히 갈릴리 북부의 해변 길은 스불론의 차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시대에 아셀 지파는 과연 어디로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선지자 이사야의 상식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열두 지파의 영토를 구분하고 있는 학자들의 지식이 잘못된 것일까요? 의문은 여전히 역사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예언의 내용(49:13-15)

 

  스불론에 대한 예언은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는 시돈까지리로다”(49:13). 시돈은 페니키아 조상들이 개척했던 어업의 중심지입니다. 그 아래 쪽은 그들이 그 다음에 개척하게 되는 무역항 두로입니다. 야곱의 예언의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그 두로 항구를 스불론 지파가 차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훗날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에 한때 그와 같은 역사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유프라테스 강 서쪽과 나일 강 동쪽의 중근동 지역 대부분을 정복하게 되는 다윗 대왕의 시절에도 두로 왕은 히람입니다. 그는 다윗과 솔로몬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그의 나라가 완전히 복속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왕상5:1-11). 그러므로 스불론이 두로를 차지하는 시기는 아주 짧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 나마도 스불론 지파가 아니라 사실은 아셀 지파가 해변의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불론은 해변의 땅이 아니라 갈릴리 호수 쪽으로 내륙의 땅을 조금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옆이 잇사갈 지파의 땅이며 그 다음이 갈릴리 호수 서남쪽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야곱의 예언도 100%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환언하면 예언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직접 나올 때는 완전히 믿어야 하겠지만 일단 선지자를 통해서 한번 거쳐서 나온 말씀은 100%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4:4).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와야만 합니다(7:28). 이스라엘의 역사상 그렇게나 많은 선지자가 있었지만 역시 그들이 전한 말씀에는 오류가 있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마지막에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올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잇사갈에 대한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49:14-15). 잇사갈 지파는 얼마나 좋은 농사꾼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목축업도 겸하여 복합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가 모든 산업의 근본이다)이라는 말을 참고하면 잇사갈 지파야 말로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좋은 백성들입니다.

그렇게 충직했던 농사꾼 백성 잇사갈 족속이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왕가를 이루게 됩니다. 레아의 아들로 보면, 유다 다음에 적자로서는 잇사갈의 서열입니다(29:35, 30:18). 그들은 형 다윗의 집안이 계속 남조 유다 왕국의 왕가가 되고 있는 것을 오랜 세월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은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건국했던 여로보암1세와 그 아들의 실정(失政)에 따른 어부지리(漁父之利, 중간에서 그저 얻게 되는 이익)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 제국을 둘로 쪼개고 북쪽에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자는 열 지파의 지도자였던 여로보암1세입니다. 그는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의 후손입니다(왕상11:26). 그런데 초대 왕 여로보암이 유월절 명절에 남쪽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는 백성들의 행렬을 보고서 그것을 싫어했습니다(왕상12:27-33). 따라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섬기라고 백성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그러자 레위인 제사장들이 남쪽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레위인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우고서 우상을 섬기도록 했습니다(대하11:13-15).

출애굽의 하나님은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32:7-10). 그 결과 여로보암의 아들이 왕이 되자 그 다음 해에 군부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잇사갈 족속으로서 당시 군대장관인 바아사가 왕이 된 것입니다(왕상15:25-28). 그는 정변을 두려워하여 아예 잇사갈 족속 출신으로만 군부를 구성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번의 정변이 있었지만 항상 왕가는 잇사갈 지파에서 탄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모두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왕상15:34, 왕하17:21-22). 정치적으로 백성들의 남하를 막는 길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BC 722년에 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패망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왕하17:5-6). 따라서 하나의 결론을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야곱의 예언과 축복의 기도는 위와 같은 먼 훗날의 역사까지 모두 상세하게 내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