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83강(창49:1-4, 2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5월 4일(주일새벽)
죽기 전에 야곱은 열두 아들들에게 미래에 당할 일을 예언하면서 축복의 기도를 하고자 하다(창49:1-2, 28)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삭의 축복의 기도와 야곱의 축복의 기도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두 가지 점이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삭은 장남 에서에게만 축복의 기도를 하고서 그를 집안의 족장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창27:1-4). 반면에 야곱은 대 족장 이스라엘의 모습에 어울리게 12아들 모두에게 축복의 기도를 행하고 그들 모두를 장차 12지파의 조상으로 세우고자 했습니다(창49:1-2). 한 마디로 아버지 이삭에 비해서 이스라엘인 야곱이 훨씬 영적으로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둘째, 이삭은 영육간에 모두 눈이 멀어서 둘째인 야곱을 장남인 에서인 줄 착각을 하게 됩니다(창27:1, 23). 그래서 에서에게 줄 축복의 기도를 잘못 야곱에게 주고 마는 큰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하지만 야곱은 다릅니다. 그는 열두 아들에 대한 축복에서 선지자의 면모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들들의 믿음의 분량과 사람 됨됨이를 너무나 잘 알고서 그 분량과 됨됨이에 맞게 절묘하게 축복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창49:28). 한 마디로, 아버지 이삭과 비교할 때 이스라엘인 야곱이 노년에 훨씬 신령한 사람이 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본문과 관련하여 이삭과 야곱의 차이를 한 가지 더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자신의 향년을 137세로 잘못 알고서 장남인 에서에게 미리 축복의 기도를 하고 그를 명실상부하게 집안의 족장으로 세우고자 합니다(창27:1-2). 그러나 그의 향년은 137세가 아닙니다. 180세입니다(창35:28-29). 그는 큰 실수를 하고만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인 야곱은 자신의 향년이 147세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확실하게 세 가지의 일을 처리합니다; 첫째, 자신이 죽으면 애굽 땅에 장사를 지내지 말고 선영이 있는 가나안 헤브론으로 운구하여 막벨라 굴에 안장을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창47:28-31). 둘째,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을 자신의 가문에 편입을 합니다(창48:5). 장차 가나안으로 입성하여 두 지파를 이룰 수 있도록 미리 조치를 한 것입니다. 셋째, 열두 아들을 모두 불러모아 그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정확하게 미래를 내다보고서 축복의 기도를 올립니다(창49:1-2, 28). 그것이 장차 열두 지파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야곱이 12아들을 모두 자신의 임종의 자리로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 지어다”(창49:1-2). 야곱은 자신이 12아들의 미래지사를 영적으로 보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평생 동행하면서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에게 신령성과 영적인 권위가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야곱은 자신의 험한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보호했으며 어떻게 역사하셨던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성품이 어떠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미래를 주셨다는 사실까지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노하우’(know how)가 지금 선지자 이스라엘의 영적인 안목을 창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그는 열두 아들의 장단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성품들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의 앞날은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당할 일을 걱정하면서 가능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약점을 알고서 개과천선하여 그것을 복으로 바꾸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남인 르우벤의 미래와 축복의 내용(창48:3-4)
레아에게서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 르우벤은 야곱의 장남입니다(창29:32). 그는 힘이 센 아버지를 닮아서 장수감이었습니다(창29:8, 10, 목자들 여러 명이 함께 옮겨야만 하는 들판 우물의 뚜껑인 넓은 돌을 야곱이 혼자서 옮기고 있음. 야곱 역시 그 정도로 힘이 센 사람임. 창48:22, 야곱은 자신의 칼과 활로 세겜을 정복한 사람임). 늠름하며 사내다운 아들입니다. 그래서 장남 르우벤에 대하여 야곱이 다음과 같이 축복의 기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동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창49:3). 한 마디로, 흠 잡을 데가 없는 후계자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르우벤의 엄청난 약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49:4).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가문의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충동적인 인간의 의도를 이성과 영성이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하나님의 대 족장인 이스라엘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영성과 이성의 안전장치가 모두 미흡합니다. 그는 정욕에 사로잡혀서 여인을 탐하는 의도가 그대로 행동으로 분출이 되고 맙니다. 이성과 영성이 모두 마비가 되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야곱은 “물의 끓음과 같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장남의 행동은 묵직해야만 합니다. 요컨대, 솥뚜껑과 같이 무거워야만 합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마치 냄비뚜껑과 같습니다. 그저 충동이 일어나면 참지를 못하고 그냥 행동으로 먼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더구나 르우벤은 정욕의 대상으로 아버지의 첩 빌하를 선택하고 맙니다. 감히 고대 족장사회에서 아버지의 여인을 범하고 마는 패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율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입니다; “너는 네 아버지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아버지의 하체니라”(레18:8). 아무리 은밀하게 천막 안에서 자행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고 있습니다. 그 소식이 야곱의 귀에 들린 것입니다(창35:22). 당시 르우벤의 나이가 약관인 20세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베들레헴의 서쪽인 에델 망대 근처였습니다(창35:20-21). 야곱의 애처 라헬의 무덤이 가까운 그곳에서 라헬의 몸종출신인 야곱의 첩 빌하와 르우벤이 통간을 했으니 막 상처(喪妻)를 한 바 있는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야곱은 도저히 그 일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의 망신이라 40년 이상을 숨겨왔습니다. 하지만 임종을 앞둔 마당에서는 더 이상 쉬쉬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르우벤과 같은 성품의 사람이 대 족장이 되었다가는 온 집안이 내려앉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냉정한 예언의 말씀을 르우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창49:3-4). 그것이 장차 르우벤 지파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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