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80강(창48:7-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9. 17:39

창세기 강해 제280(48:7-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2()

 

눈이 어두워진 야곱이 평생에 사랑한 삼대에 대한 이야기(48:7-11)

 

나이 147세가 되자 야곱은 자신의 향년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있습니다(47:28-29). 사람은 그 정도로 영물에 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족장 이스라엘인 야곱은 말년에 더욱 영성이 뛰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애굽 땅에 장지를 마련하지 말고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운구하여 믿음의 열조들이 잠들어 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안장해달라고 애굽의 총리로 있는 아들 요셉에게 당부를 합니다. 그 일이 너무나 중요하므로 그의 허벅지 아래에 요셉이 손을 넣고서 하나님 앞에 맹세까지 하도록 요구를 했습니다(47:29-30). 죽어서 막벨라 굴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야곱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잠들어 있는 그곳에 자신도 함께 들어가 있다가 아브라함과 함께 그리스도를 맞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49:29-32, 5:25-29, 8:56, 11:11).

야곱은 임종이 더욱 가까워오자 드디어 몸이 너무나 쇠약해져서 병석에 눕게 됩니다(48:1). 그때 수도인 테베에서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라암셋까지 아버지의 병문안을 왔습니다(48:1-2). 그때 야곱은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을 자신의 가문에 편입을 시킵니다(48:5-6). 장차 출애굽의 역사가 있게 되면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열두 지파의 하나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상속받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요셉의 아들들이 총리의 아들로서 귀족의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는 이스라엘의 지파로서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는 새로운 가치의 척도를 그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미 눈이 어두워져서 육신의 눈으로 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48:10). 그렇지만 그는 영적인 눈으로 사람들이 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이미 보고 있는 경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미래지사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48:19, 49:1). 그는 말씀을 통하여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미리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믿음의 사람이며 선지자 또는 선견자이며 지혜자입니다. 야곱은 130세로 애굽에 이민을 올 때까지 가나안과 하란 땅에서 험악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많이 경험한 인물입니다(47:9). 구체적으로, 시공간을 뛰어 넘으며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의 살아있는 역사를 많이 체험한 사람입니다(31:8, 29, 32:2, 35:5, 10-13, 45:26). 그 결과 그는 향년에 이르게 되자 미래를 보는 눈이 믿음 안에서 열린 것입니다. 그 눈을 가지고 야곱은 지금 병문안을 와 있는 요셉 부자를 보고 있습니다.

갑자기 야곱이 요셉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애처 라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주고 있습니다;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기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48:7). 여기서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 먼 곳은 베들레헴에서 16km 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라마를 말합니다. 그곳에서 라헬이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 끝에 그만 길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35:16-18). 그 시신을 운구하여 삼 일만에 베들레헴 입구에 도착을 한 야곱이 그곳 북쪽 근교에 장사를 지냈습니다(35:19-20). 오늘 날에도 베들레헴 북쪽 근교에 라헬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순례자들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 대하여 라헬의 소생인 요셉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요셉의 두 아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애처 라헬이 죽고 나자 오로지 그녀의 소생들을 끔찍이도 편애했던 사람입니다(37:3-4, 42:38). 이제는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또 무척 아끼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요셉의 두 아들을 각각 독립적인 지파의 조상으로 맞아 들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48:21-22). 요컨대, 요셉의 자손은 훗날 두 개의 지파를 이루며 다른 11형제들에 비해서 두 곱의 땅을 배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이 라헬에 이어서 요셉을 편애하고 또 요셉의 아들들까지 편애를 했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야곱의 좁은 사랑은 삼대를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강력한 좁은 시야의 사랑을 모든 피조물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랑으로 바꾸는 것이 공의의 하나님의 역사이며 성령의 내주하심이라고 하겠습니다(1:26-31, 2:28, 1:29, 2:36-39).

 

라헬을 생각하면서 그녀의 손자들을 축복하고자 하는 야곱의 모습(48:9)

 

눈이 어두워진 야곱이 요셉에게 두 아들의 신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48:8-10). 그는 직감적으로 그 두 사람이 바로 요셉의 아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48:5). 그러나 마치 검사나 판사가 법정에서 출석한 사람의 신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그렇게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엄청난 특혜인 축복의 기도가 시작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축복의 기도는 상대방의 신분과 정체를 완전히 파악을 한 다음에 행해지는 것입니다. 덮어놓고 남의 말만 듣고서 마구잡이로 행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야곱은 22첩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라헬만을 끔찍하게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그녀의 소생인 요셉에게로 쏟아지고 이제는 다시 요셉의 소생인 두 아들에게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대 족장 이스라엘로서 시행하고 있는 축복의 기도는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먼 훗날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가문에서 이스라엘에 우뚝 서게 되는 많은 지도자가 탄생할 것임을 미리 엿보게 해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훗날 므낫세 지파에서는 위대한 대 사사 기드온이 나타납니다(6:15).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들어간 여호수아(13:8), 왕정시대의 문을 열어준 대 선지자 사무엘(삼상1:1, 19-20),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건국하는 여로보암1(왕상11:26) 등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찬란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