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79강(창48:1-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5월 1일(목)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병석에서 행한 놀라운 일 또 한 가지는 무엇인가?(창48:1-6)
야곱은 아들 요셉의 초청으로 그의 자손들 모두를 이끌고서 애굽에 이민을 온 사람입니다. 이민 당시 야곱의 가문은 그의 아들들과 자손들 그리고 안방마님 레아를 포함하여 70명이나 됩니다. 게다가 가나안에서 방목을 하고 있던 가축 떼까지 모두 끌고서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에 들어와서 목축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가축까지 돌보고 있습니다(창47:6). 그런데 그들이 돌보고 있는 가축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계속되는 흉년 가운데 양식을 살 수 있는 돈이 떨어진 백성들이 자신들의 가축을 바로에게 팔고서 곡식을 사갔기 때문입니다(창47:16-17). 고센 땅 넓은 들판에서 수 많은 가축을 치고 있는 야곱의 집안은 날로 번성하여 이미 이스라엘 족속으로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창47:27).
그렇게 순조롭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야곱은 130세에 이민을 와서 17년이 지나자 자신의 향년이 다가옴을 깨닫고 있습니다(창47:28-29). 너무나 기력이 쇠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셉을 불러서 자신의 장례식에 관하여 유언을 했습니다; “자신이 죽거든 애굽에 안장하지를 말고 반드시 믿음의 열조들이 잠들어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시신을 운구하여 막벨라 굴에 장사를 지내달라는 간절한 부탁입니다”(창47:29-31).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정말로 야곱은 병이 들었습니다(창48:1). 그때 야곱은 자신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처리를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자신에게 3대에 걸쳐서 주고 있는 미래의 예언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 예언은 세 가지로 요약이 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창17:6, 26:4, 28:14). 둘째, 가나안 일대의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창17:8, 26:3, 28:13, 35:12). 셋째, 반드시 400년 후에 출애굽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창15:13-16, 46:4)”.
야곱은 하나님의 예언을 100% 믿었기에 감히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위대한 일 한 가지를 이제 마지막으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이스라엘 민족에 편입을 시키고 각각 지파를 이루도록 해주는 것입니다”(창48:3-6). 그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 일일까요? 그 이유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애굽 땅에서 총리의 아들로서 계속 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참여하는 것이 더 큰 복이라는 깨달음이 야곱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적인 눈으로 보자면, 애굽은 나일 강 유역의 곡창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대 제국입니다. 그리고 중근동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다음으로 그 문명과 문화가 화려한 곳입니다. 하지만 애굽 제국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며 창조주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가 있는 인생을 책임 있게 살아가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얻고 있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축복의 예언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창48:4, 15:4-6, 16-21, 26:3-4).
거듭 말하지만 야곱은 벧엘에서 주신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두 차례의 언약을 철두철미하게 믿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3-15), “하나님이 그(야곱)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창35:11-12).
가나안 땅에 계속 흉년이 들자 야곱이 애굽 총리가 되어 있는 아들 요셉의 이민초청에 응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나안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브엘세바에서 마지막 제사를 드립니다. 가나안을 떠나서 완전히 애굽으로 이민을 가게 되는 야곱의 마음이 착잡합니다; “언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훗날 그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과연 이스라엘 국가를 이룰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과 예언의 말씀은 있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다시 확실한 신탁을 받고자 브엘세바에서 희생제사를 드린 것입니다”(창46:1).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실 것임을 브엘세바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창46:3-4).
그 결과 야곱은 위대한 신앙인 이스라엘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이 주는 영광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다음과 같이 더욱 사랑하고 있습니다; 첫째, 애굽의 총리 요셉의 아버지로 사는 것보다 가나안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종으로 막벨라 굴에 안장이 되는 것을 선호하고 있습니다(창47:29-30, 49:29-32). 그것이 더 큰 영광이며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요셉의 두 아들도 애굽 귀족의 자녀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낼 수 있는 이스라엘의 지파로 사는 것이 더욱 좋다는 생각입니다(창48:4-6).
야곱의 판단은 정확하며 영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실제로 그 옛날 애굽 제국의 수 많은 귀족들의 후손들은 역사 가운데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참여하게 되는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의 이름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열두 지파의 이름은 새 예루살렘 성의 거룩한 성문의 이름이 되어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 속에 영원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계21:12).
어쨌든 야곱은 자신의 그와 같은 신앙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당장 병문안온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족보에 편입을 시키고 있습니다. 장차 그 두 손자의 자손들이 출애굽의 영광을 누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12지파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창48:5).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벧엘, 창28:19)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창48:3-6).
참고로, 요셉의 두 아들 다음에 다시 아들들이 태어난다면 그들은 훗날 출애굽의 역사가 이루어지면 달리 조치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별도의 지파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형 집안인 므낫세나 에브라임 지파에 편입이 된다는 것입니다(창48:6). 참으로 노년의 야곱은 주도면밀한 대 족장 이스라엘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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