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77강(창47:27-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7. 19:24

창세기 강해 제277(47:27-3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430()

 

애굽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영위하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임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46:3, 47:27, 1:7)

 

야곱은 요셉이 살고 있는 애굽 땅으로 이민을 온지 17년만에 향년을 맞이하게 됩니다(47:28-29, 49:33). 그때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센 땅에서 얼마나 번성하게 되었는지를 모세가 한 마디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47:27).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동시에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을 창세기 제1장과 제46장이 생생하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46:3).

여기서 생육의 복이라고 하는 것은 많이 태어나고 많이 자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고대사회에서는 영아(嬰兒, 갓난아기)의 사망율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여 다시 다음 대의 자손을 많이 낳게 되는 이른 바 번성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큰 민족을 이루자면 생육과 번성이라는 두 가지 축복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고센 땅에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47:27). 모세가 특이하게 생업을 얻어라는 사실을 앞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훗날 생업이 아니라 노예상태에서도 번성하게 되는 일과 대조를 하기 위함입니다(1:7). 여기 창세기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목초가 풍성한 고센 땅에서 목축업이라는 하나의 훌륭한 생산업에 종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익숙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떳떳하게 자신들의 손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삽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민들입니다. 그렇지만 훗날 요셉이 죽고 나서 또 세월이 얼마 흐르게 되면 큰 변화가 찾아 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배민족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변화가 발생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이 됩니다.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놀라운 축복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1:8-12),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1:20). 하나님의 백성은 순경(順境, 편안한 환경)에서만 생육하고 번성하여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경(逆境,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육하고 번성하며 더욱 강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예언의 성취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역사적인 변화의 한 대목을 미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친족을 다시 만난 후 71년을 더 살다가 110세를 향년으로 하여 BC 1,805년에 죽고 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거대한 보호막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23년의 세월이 더 흘러서 BC 1,782년이 되면 약 100년 전에 요셉을 과감하게 등용하여서 연이은 흉년을 극복하였던 당시의 통일왕조 곧 제12왕조가 끝나게 됩니다. 애굽 제국은 내부의 분열에 의하여 여러 민족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애굽의 역사에 있어서 제2의 분열기인 소위 2 중간기의 시작입니다. 그때 애굽의 본토를 차지하게 되는 새로운 지배족속들이 요셉의 공로를 인정하지 아니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날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민족의 수가 많아지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안보상의 이유로 탄압을 하게 됩니다. 아예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역사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달픈 역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임하고 예언은 계속 성취가 되어 나가고 있음을 모세가 특이한 기록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방마님 레아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뒤로 미루면서 147세로 애굽에서 향년을 맞이하고 있는 야곱의 유언을 대서특필하고 있는 이유(49:28-30)

 

야곱의 일행이 애굽으로 이주를 할 때에 그 행렬 가운데 안방마님 레아가 동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33명이며”(46:15). 여기서 합계 33명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레아의 소생인 아들이 6, 딸이 1, 손자가 23, 증손자가 2명 등 모두 32명입니다. 그러므로 레아 본인 1명을 합해야 비로서 33명의 수가 됩니다. 즉 레아가 애굽으로 남편과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46:7-15).

위와 같은 분석에 따르게 되면, 레아가 고센 땅에서 향년을 맞이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무덤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남부 헤브론에 있습니다. 야곱이 다음과 같이 증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49:31-32). 분명히 야곱이 안방마님 레아를 헤브론 막벨라 선영에 장사를 지냈다는 고백입니다. 그녀가 애굽에서 죽은 것이 확실하다면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녀의 시신을 역시 야곱 때처럼 향품으로 처리하여 애굽에서 가나안의 헤브론까지 운구를 해갔을 것입니다(50:1-14). 그런데 왜 레아의 장례행렬에 대한 이야기를 모세가 창세기에 적고 있지를 아니하고 있을까요?

어째서 레아의 시신을 운구하여 가나안 땅 남부 헤브론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세는 왜 야곱의 장례식만을 거창하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당시 애굽의 총리이며 이스라엘 가문의 실세인 요셉이 큰 이모이자 큰 어머니인 레아에 대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아니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친어머니인 라헬이 라마에서 객사를 하여 그 무덤이 베들레헴 근교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35:16-20). 친어머니의 시신이 믿음의 열조들이 잠자고 있는 선영 막벨라 굴에 들어가지를 못했는데 어머니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큰 이모 레아가 그곳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30:6-16).

둘째로, 모세는 똑 같은 기록을 두 번 하기가 번거러워서 야곱의 장례식만을 대표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인 야곱은 개인적으로, 애굽의 총리의 부친으로서 거창하게 장례를 치르고 애굽의 명당자리에 자신의 장사를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믿음의 열조들이 영생을 바라보고서 함께 잠들어 있는 선영 막벨라 굴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47:29-30). 그것이 자신을 죽음에서 부활시키며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앙망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영생의 부활신앙과 동일한 이스라엘의 신앙입니다(8:56). 부활과 영생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는 그 신앙이 바로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모세가 웅변적으로 강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장례식을 대서특필하고 있다고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11:16, 26, 8:56, 19:25-27). 따라서 안방마님 레아의 장례식을 생략한 채 이스라엘의 화려한 시신의 운구만을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의 시선을 하나로 끌어 모으는 엄청난 효과를 얻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