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62강(창45:4-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2. 16:22

창세기 강해 제262(45:4-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411()

 

요셉의 인생길을 인도하신 하나님, 그 인생의 목적(45:4-8)

 

요셉이 이복 형들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인생길을 인도하신 분이 따로 계신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복 형들 열명은 단지 자신의 인생길의 물굽이를 틀게 만드는데 사용이 된 존재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요셉 자신에게 고난의 길을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따지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요셉의 위대한 깨달음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도 하나의 인생의 목적을 가지시고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목적은 7년의 흉년으로부터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요셉 자신의 인생의 목적 그리고 그러한 인생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이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고백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45:4-8a).

흉년이 계속되면 먹거리의 생산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됩니다. 이 땅에서 목숨을 이어갈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흉년으로부터 백성들의 목숨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삼으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를 통하여 7년 풍년 동안의 곡식을 상당부분 거두어서 애굽의 모든 창고에 저장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식을 7년 흉년 동안에 애굽은 물론 그 주변국의 백성들에게도 팔도록 조치하십니다”(41:32-36, 53-57).

그런데 본문에서는 목숨을 구원하시려고가 아니고 생명을 구원하시려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필요한 한시적인 생명입니다. 그런데 글의 저자인 모세는 어째서 영원한 생명의 뜻을 담고 있는 생명이라는 용어를 한시적인 목숨이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은 영적인 양식과 물적인 양식 두 가지를 모두 공급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이 우선일까요? 엄밀하게 순서를 따지자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적인 양식이 먼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그 다음에 하나님의 명령과 섭리로 자연이 생산하게 되는 육적인 양식입니다(1:11-12).

참고로, 영적인 양식이 부족한 자를 가난한 자, 육적인 양식이 부족한 자를 궁핍한 자로 볼 수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그 두 가지 용어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선견자가 아삽입니다. 그의 시편 제82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재판하시느니라.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셀라)”(82:1-2),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82:4). 예수님의 풀이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신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0:35-36). 사족을 더하자면, 하나님의 존전에 시립해있는 그들의 모습이 욥기에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1:6, 2:1).

특히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팔복에 관하여 말씀을 하시면서 가난한 자가 누구인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규정하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 결론적으로, 영적으로 헐벗은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먹을 것이 없는 자는 궁핍한 자입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얻은 신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에게 영적인 양식과 물적인 양식을 공급해주어야만 합니다. 그 순서는 물론 영적인 양식이 먼저라고 하겠습니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발탁하는 노련한 세누스레트2, 그리고 어린 그의 아들 세누스레트3세의 후견인이 된 사브낫바네아 총리 요셉(45:8-9).

 

 이미 제236강에서 설명한 바가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정치적인 배경이기 때문에 본문의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다시 한번 설명을 드립니다; 아무런 정치적인 배경이 없는 30세의 히브리인 청년 요셉을 BC 1885년경에 전격적으로 애굽의 총리로 발탁한 사람은 애굽 제12왕조의 노련한 황제 세누스레트2(BC 1897-1878)입니다(41:37-41, 46). 그는 황제로서 이미 12년이나 애굽을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한창 정치적인 수완이 능숙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듯한 요셉을 총리로 단숨에 기용함으로써 위기에 대처하는 한편 만약에 하나님의 예언대로 미래가 전개되지 아니할 경우에는 그 일에 대한 책임도 물을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똑똑한 황제였지만 7년 풍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그만 타계를 하게 됩니다. 그때가 BC 1878년입니다.

그는 죽기 전에 어린 황제를 잘 보필해달라고 지혜와 실력을 두루 갖춘 수석 총리 요셉에게 신신당부를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눈으로 7년 연속 풍년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애굽에 찾아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41:47-50). 이제 내년부터는 틀림없이 7년 연속 흉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흉년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정책적인 추진력을 동시에 가진 자는 총리 사브낫바네아인 요셉밖에 없습니다(41:38, 45). 만약 그 흉년을 극복하지 못하면 통일 애굽 제국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애굽 제국의 장래가 오로지 총리 사브낫바네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간곡하게 어린 황제인 세누스레트3(BC 1878-1841)의 장래를 부탁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정치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다음과 같은 요셉의 말은 사실인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45:8b-9). 어린 바로가 의지하고 있는 수석총리 요셉이기에 그가 아버지의 식솔 모두를 애굽으로 초청하여 보호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가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에게 극진한 예우를 하고 있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4516-23, 47:7-10).

 

요셉이 드디어 아버지와 형제들의 식솔들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다(45:9-11)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형들에게 밝힌 다음에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 야곱과 그 식솔들을 모두 애굽에 데리고 오라고 형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45:9-11). 요셉은 형 유다의 진술을 통하여 그 마음이 돌아선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친동생 베냐민만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기를 원했던 요셉입니다. 하지만 형 유다의 이야기를 듣고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옛날 22년 전에 자신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 넘겼던 형들이 많이 변화되어 있습니다. 베냐민을 구원하여 아버지 야곱에게 데려가려고 필사적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애굽 총리의 종이 될 터이니 그를 풀어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44:33-34).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던 마음이 풀리고 있습니다.

둘째로,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요셉이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거짓정보를 듣고서 아버지 야곱이 얼마나 슬퍼하였을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가 이제 베냐민이 가나안 아버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 야곱이 요셉의 때보다 더 슬퍼하여 아마도 운명할 것만 같다고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4:28-29). 더구나 요셉은 그와 같은 아버지의 사랑이 이복 형들에 대해서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유다의 설명이 요셉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44:30).

셋째로, 이복 형들의 잘못을 용서하면서 하나의 진리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 형들의 미움을 이용하여 자신을 이곳 애굽으로 보내신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절감하고 있습니다(45:5-8). 13년 동안의 종살이와 감옥살이의 역경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37:2, 41:46). 그리고 지난 9년의 세월을 애굽의 총리로써 한 가지 일에 매진하도록 했습니다. 애굽 및 이웃나라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하여 7년 풍년 동안에 생산된 잉여 농산물을 모두 저장하도록 하는 일입니다(41:32-36). 그 일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아버지의 식구들의 목숨도 살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넷째로, 17세에 꾸었던 그 꿈이 실현이 되고 있습니다(37:6-11). 형들이 곡식을 사기 위하여 애굽을 방문하여 요셉 자신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42:6-9). 그와 같은 기가 막힌 장면을 연출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인생길을 인도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탓을 하는 것은 소심한 인간의 마음일 뿐입니다. 모든 일은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 큰 구원의 계획 속에 요셉의 인생이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와 같은 깨달음을 가지고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모든 식구들을 애굽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착하면 애굽 동북면 고센 땅에 정착을 시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45:10). 그 땅은 가나안과 가깝습니다. 그리고 지형이 비슷합니다. 따라서 목축을 하기에 적합할 것입니다(46:34). 요셉이 장차 먼 훗날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몰라도 그 지방 고센은 가장 애굽을 벗어나기에 편리한 지역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들어갈 때에 벌써 먼 훗날 나올 때를 예비하시는 창조주이심을 새삼 깨달을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15:13-14, 2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