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51강(창43:3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3월 31일(월)
왕과 신하들의 예를 갖추고 있는 애굽 총리관저의 오찬자리(창43:32a).
현대국가에 있어서는 최고권력자가 주최하는 오찬이나 만찬이라고 하더라도 한 상에 둘러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합니다. 혹시 한 상에 다 앉을 수 없을 경우에 한하여 헤드 테이블을 설치하고 그 다음에 수 많은 원탁의 테이블을 배치합니다. 그러나 고대국가에 있어서는 좀 다릅니다. 엄격한 서열사회이므로 황제나 왕이 먼저 단상의 옥좌에 앉습니다. 그리고 단 아래에 신하들이 배열을 합니다. 그것도 좌우로 갈라서 마주보고 섭니다. 그렇게 배열이 된 상태로 상을 차립니다. 따라서 단상에는 황제나 왕이 큰 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단 아래에는 서로 마주보고서 상이 차려집니다. 물론 품계에 따라서 좌석이 배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총리인 사브낫바네아가 가나안에서 곡식을 사러 온 이스라엘의 아들들과 함께 오찬을 하는 좌석의 배치가 그와 같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애굽의 총리는 그 의전에 있어서 왕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모세가 다음과 같이 묘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창43:32a). 둘째, 단 아래에 그와 함께 오찬에 참석을 하게 되는 애굽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총리의 신하로 보입니다. 가신을 거느리고 있는 총리 요셉은 왕과 같은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그때는 어린 바로 세누스레트3세를 모시고 수석총리인 사브낫바네아 요셉이 국정을 거의 도맡아서 수행을 하고 있는 시기입니다(창41:55-57, 45:8-9). 그러므로 그를 황제 바로 아래에 있는 왕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인 타당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정을 입는다’는 정치적, 종교적 의미(창43:32b, 행11:3)
고대 중근동지역에서 문명의 중심지역은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입니다. 그들은 선진문명을 앞세워서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지배족속이 여러 족속을 아울러서 제국을 세운 것입니다. 그 결과 소수민족인 지배족속이 있고 기타 피지배민족이 있으며 그 수가 많습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지배족속은 일종의 성골(聖骨, holy royal family)로서 행세를 하게 됩니다. 식사도 피지배족속과 함께 식사하지를 아니하고 통혼(通婚, 서로 결혼하는 것)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함께 식사를 하거나 통혼을 하게 되면 부정을 탄다고 생각을 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지배족속의 권위를 높이고 다수인 피지배족속에 융화가 되는 것을 예방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조치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인의 경우에는 율법에 따라서 식단이 다르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부정을 탄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늘이 없는 생선을 먹지도 아니하고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습니다(레11:7-8, 10). 그리고 기름기를 먹지 않으며 살코기를 피가 있는 채로 먹지도 않습니다(레3:17). 육식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다른 유목민들과는 상당히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과 함께 식사를 하지를 않습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어도 여전했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도 그 점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출신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가 유대인 성도들이 들어오자 얼른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서 그것을 일종의 외식행위라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2:11-14).
본문에서는 애굽사람들이 히브리인들과 한 상에서 식사를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정을 입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창43:32). 히브리인이라고 하면 본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애굽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와서 사는 족속을 말하고 있습니다(창14:13, 39:14, 41:12).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일족만을 지칭하고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번성이 왕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됨에 따라서 으례히 히브리인이라고 하면 그들을 지칭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출1:7-10). 이스라엘 백성들은 히브리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신론자인 가나안 사람들과 다르고 범신론자들인 애굽사람들과 다르게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는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의미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히브리사상이라고 하면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는 율법사상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정이 탄다’ 또는 ‘부정을 입는다’라고 하는 관념은 배타적이며 쇄국적인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 민족의 정치적인 이권이나 종교적인 특징을 파수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관념을 타파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코페르니쿠스적인 생각의 변화가 나타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행11:6-9). 위와 같은 강력한 하나님의 설명과 명령이 없는 이상 ‘부정을 입는다’고 하는 통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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