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OBS교재(손진길 작성)

성경공부; 히브리서 제13과(13:1-25)(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2. 1. 26. 02:22

성경공부; 히브리서 제13(13:1-25)(손진길 작성)

[OBS31-13]

 

Q1. 히브리서의 저자는 마지막 장인 제13장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을 열 가지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음. 옛 언약에 있어서는 율법의 대강령이 되고 있는 십계명이 있듯이 보다 나은 새 언약에 있어서는 성도의 삶을 규정하는 열 가지의 준수사항, 이를테면, “성도(聖徒)명심보감(銘心寶監) 십조(十條)가 그 설명과 함께 제시되고 있는 것임. 그리고 제13장 말미 제20절부터 제25절까지는 저자 나름대로의 축도와 인사말씀이 실려 있는데 그 축도의 양식이 사도 바울의 것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음. 우선적으로 성도의 명심보감 십조의 대략은 어떠한가?

 

l  제일조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13:1), 제이조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13:2), 제삼조는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13:3), 제사조는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13:4), 제오조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히 여기라(13:5-6)는 것임.

l  제육조는 말씀 인도자를 생각하며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13:7-8), 제칠조는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13:9-15), 제팔조는 오직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13:16), 제구조는 신앙생활을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13:17), 제십조는 선교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13:18-19)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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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1-4조에 있어서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창세기에서 손님 대접하기를 잘 하다가 축복을 받은 사례는 어떠한가? 또한 갇힌 자를 생각하는 방법과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끝으로 음행과 간음의 차이와 공통점은 무엇인가?

 

l  1조와(13:1) 관련된 질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5:12)는 것이었으며 흔히 사랑의 사도로 불리고 있는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일4:20)고 말하고 있음. 따라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상부상조하면서 형제 사랑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음(2:44-47).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교회 내에 분파로 인하여 분열과 갈등이 야기되었음(고전3:3-4). 그러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13:1)고 부르짖고 있는 것임. 히브리서의 전체 내용을 참고하여 그 의미를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다고 할 것임; “형제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늘에 계신 대제사장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성령의 능력으로 받아서 끊임없이 형제를 계속적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임.

l  2조의 질문과 관련하여(13:2) 창세기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한 야훼 하나님과 두 천사를 자신의 장막으로 맞아 들이고 잘 대접함으로써 축복을 다시 확인 받고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자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가 있었음(18). 그리고 롯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천사를 잘 대접함으로써 직계 가족 전체가 구원받는 은혜를 받았음(19).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과 그 약대들에게 물을 잘 대접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며느리, 약속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음(24). 그와 같이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 진심으로 손님을 대접한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임.

l  3조에 있어서는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를 돌보아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음(13:3). 갇힌 자에 대하여 자신도 동일하게 갇힌 자의 처지라는 인식을 가지고 그들을 생각하라는 것임. 핍박과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가 갇힌 바 된 경우에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닌 것임. 또한 사회적으로 범법자가 되어서 수감된 경우에도 그 마음속을 들여다 보면 자신도 별로 나은 것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라는 것임(딤전1:15).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이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기에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었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옥중에 있는 자들에게 겸손하라는 요청인 것임. 학대 받는 자를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은 같은 육체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심히 당연한 일이라는 히브리서 저자의 지적임(13:3).

l  4조와 관련하여(13:4) 저자는 결혼, 침소, 음행, 간음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 결혼을 중히 여겨서 부부의 침실을 타인이 성적으로 더럽히지 말라고 먼저 말하고 있음. 이어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로서 음행과 간음을 들고 있음.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부부관계를 지키지 아니하고 남녀가 통간하는 경우를 말하고 있으며 음행이라고 하는 것은 성적으로 문란한 모든 경우를 포괄하는 음란한 행동을 지칭하고 있음. 그와 같은 약간의 뜻의 차이가 있지만 그 두 가지 경우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신성한 결혼제도를 파괴하며 사회적 종교적인 순수성과 정조를 해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임. 따라서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엄히 심판하신다는 것임. 그것은 종교적인 음행과도 결부되고 있기에 나라의 멸망까지 초래하는 것임(1:2,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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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5-6조와 제8-10조에 있어서 ①지분사상(知分思想)을 가지고 돈의 유혹을 물리치면 어떠한 유익이 있는가?말씀 전하는 자들의 믿음을 본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살펴보라고 말하고 있는가? ③선을 행하는 것은 무엇이며 서로 나누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④어떠한 신앙 인도자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⑤어떠한 선교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가?

 

l  첫째로, 하나님 앞에 종으로서의 분수와 주님을 섬기는 법도를 지키게 되면 하나님의 것을 탐내어 좌지우지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있게 됨. 아울러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복(分福)에 대하여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신앙의 성숙을 얻게 됨. 그 점을 히브리서 저자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게 되면 주님께서 늘 동행해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에 사람이 어찌할 수 없고 무서움이 사라지게 된다고 진술하고 있음(13:5-6, 31:6, 1:5, 118:6).

l  둘째로, 말씀 전하고 말씀으로 제자를 양육하는 자를 마땅히 돌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들의 믿음을 본받기 위해서는 그 전에 그 자가 말씀대로 행실을 바르게 하는지를 먼저 잘 살펴보라는 것임(13:7). 오늘 날도 말씀만 전하고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아니하는 설교자나 영적 지도자가 존재할 수 있는데 그 점을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13:8).

l  셋째로, 선을 행한다고 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하고 있으며 완전한 선의 행함은 창조주의 소관임(3:4, 10:18).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와 방법으로 함부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겠다고 메시아의 흉내를 낼 일이 아니고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정확하게 받아서 헌신을 하여야 부작용이 없는 것임(2:42-47). 그리고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은 물질적인 구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 각자의 재능과 시간 그리고 영적인 능력 등 모든 것들이 나눔의 대상이 됨. 그것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며 기뻐하시는 제사인 것임(13:16, 6:13). 그 모든 것을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지게 되었으므로 그 사용방법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것임(1:21, 16:8-13).

l  넷째로, 어떠한 신앙 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는 자에게 복종하라”(13:17)고 말하고 있음. 그 뜻은 목자가 양을 잘 보호하고 잘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 책임을 다 수행하지 못하여 양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가 참된 신앙지도자라는 것임. 그러한 책임의식이 없는 자는 성도의 순종을 받기에 합당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10:13).

l  끝으로, 다음과 같은 선교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음; “생명을 살리는 복음사역에 전력투구하며 선한 양심을 지키는 선교자를 위하여 기도하라”(13:18). 히브리서 저자는 여러 성도님들의 기도로 빨리 선교사역을 마치고 파송 교회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음(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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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히브리서 저자는 제7조에 있어서 이단의 특징을 먹고 사는 문제 곧 음식을 앞세우고 제물에 관심이 많고 예수님의 거룩한 고난에 참여하지 아니하며 예수님께 드릴 찬송과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자세한 설명은 어떠한가?

 

l  첫째로, 사탄은 세상적인 부귀영화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을 가지고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음.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아니하는 방법은 말씀과 은혜로써 마음을 굳게 하는 것임(4:4).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인간적인 교훈과 논쟁으로서는 이단과 효과적으로 싸울 수가 없는 것임. 더구나 아름다운 음식을 나누어 먹는 방법으로 화평책과 타협안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백전백패할 것임을 말하고 있음(13:9, 4:8-11, 10:16). 그래서 베다니 마리아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손님상을 차리기 위하여 바쁜 마르다 보다는 예수님 옆에서 말씀듣기에 더 열중하고 있었던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의미 깊게 말씀하신 것으로 새겨볼 수 있음(10:38-42).

l  둘째로, 이단은 제물에 관심이 많음. 그렇지만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제물의 분배에 너무 관심을 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임(13:10-11). 그것은 마치 잘못된 스님일수록 염불 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한국의 옛 속담과 같은 뜻인 것임.

l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써 백성들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감수하셨음(13:12). 그러므로 주님의 진실된 제자들은 영혼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받아들임(13:13). 하지만 자신의 영광을 더 중시하는 사탄과 이단은 결코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아니함.

l  넷째로, 성도들은 미래에 다가올 천국 입성과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이 땅에서 자신의 영광을 구태여 추구하지를 아니함(13:14). 그렇지만 사탄과 이단은 그러하지를 아니함. 이 땅에서의 모든 부귀영화와 영광을 취하고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과 주님께 돌리는 성도들의 찬송과 영광까지(13:15) 그들이 가로채고자 획책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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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히브리서 저자가 그의 글 말미 제13장 제20-25절에서 선보이고 있는 축도문(祝禱文)은 사도 바울의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그의 마지막 인사말은 무엇인가?

 

l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라는 문구는 사도 바울의 대표적인 축도문인데 거기에는 성자의 은혜 성부의 사랑 성령의 역사 등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언급되고 있음.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의 축도문에는(13:20-21, 25) 오로지 성부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리고 그 축복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오로지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언약의 피를 흘렸으며 성도를 온전하게 이끌고 있다는 가르침만을 적고 있음.

l  히브리서 저자가 성부 하나님의 축복만을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첫째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을 전부 기도하고 있는 바울의 것과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울이 아니다. 둘째로, 삼위일체설이 사도 바울만큼 가다듬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바울 이전의 서신이거나 아니면 삼위일체설에 대해서 이견을 가지고 있는 진영의 생산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임.

l  히브리서 저자의 마지막 인사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임; ①디모데가 풀려난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와 함께 너희를 방문할 것을 인사말로 전하고 있음(13:23). ②서신을 받아볼 성도들은 저자와 함께 있는 영적 지도자들과 후원 성도들에게 문안인사를 하라는 요청임(13:24a). ③특히 이탈리아에서 저자에게 와서 함께 동역하고 있는 성도들이 너희들에게도 문안하고 있다는 인사말을 첨부하고 있음(13:24b).

l  이상과 같은 인사말과 축도문의 형식으로 미루어 볼 때, 히브리서의 저자는 디모데를 잘 알고 있으며 그리스와 소아시아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자 가운데 특별히 사도 바울의 삼위일체설을 적극 지지하지 아니하고 있는 인물로 보임. 그래서 아볼로를 유력하게 손꼽을 수 있다고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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