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히브리서 제10과(11:1-19)(손진길 작성)
[OBS31-10]
Q1.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히브리서는 어떠한 성격의 글인가?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익명으로 그의 글을 남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글의 성격과 어떻게 관련되고 있는가?
l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종교와 사상에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가 초래되고 있는지를 저자가 깊이 있게 깨닫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글임. 히브리서의 저자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종교인 유대교와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모두 탁월하다는 점에서 초대교회시대 가장 뛰어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에 필적하는 명성을 가진 자라고 짐작할 수 있음.
l 그런데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히브리서에서 밝히지 아니하고 있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을 것임. 그 첫째는 그의 글이 장차 몰고 올 엄청난 파장과 반발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임.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 속 부활로 말미암아 그들이 자랑하는 민족의 고유한 율법과 전통적인 제사가 모두 끝장이 나고 말았다는 히브리서의 결론은 충격 그 자체인 것임. 그 충격이 몰고 올 후폭풍을 직감하고서 저자는 일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힘들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익명으로 문서를 생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임.
l 그 두 번째 이유는 그의 글과 바울의 글과의 차이에서 엿볼 수 있음. 바울은 율법과 제사가 모두 끝장나고 말았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아니했음. 바울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또한 유대인들의 제사의 전통과 죄 사함의 관념에 입각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치루었다고 진술했던 것임. 그러한 차이에 유의해보면 사도 바울은 비둘기파이지만 히브리서의 저자는 매파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임. 히브리인들에 대하여 그래도 온건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바울은 그의 이름을 그의 글에서 밝힐 수 있었지만 강경한 노선을 보인 히브리서의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감출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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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극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이스라엘의 조상들 가운데 믿음의 열조들이 모두 훗날 메시아가 준비할 것이라고 하는 천성(天城, 계21:2,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소망을 가지고 살다가 죽었다고(11:14-16, 요14:2-3) 다소 논리가 비약적인 주장을 하고 있음. 오늘 날 믿음의 장(章)이라고 불리고 있는 히브리서 제11장에서 그가 이같이 무리하게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l 제10장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인내의 신앙”과 관련하여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음. 당시 초대교회시대에 많은 핍박과 환난이 있었는데(10:33-34) 그것을 인내하고 이기는 것이(10:32, 35) 신앙의 본질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임. 그리고 옛날부터 믿음의 열조들이 모두 그와 같은 인내의 신앙을 가지고 한 평생을 천성의 상급을 바라고 살았던 것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임. 요컨대, 초대교회 성도들이 구약의 믿음의 열조들처럼 각자의 인생 가운데 동일한 고난을 당하고 인내로써 극복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상 당연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것임.
l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11:1). 뜻풀이를 해보면 첫째로, 성도들이 그리고 믿음의 열조들이 바라는 것은 내세에 이루어질 천국에서의 논공행상임. 그것은 인생과 함께 과거로 사라져버릴 것들이 아니라 앞으로 남아 있는 것이며 영원히 성도들이 받아서 누릴 수 있는 것들임.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릴 허망한 것들을 위하여 살지 말고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들을 얻고자 사는 것이 옳다는 것임.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선진들이 말해주고 있는 믿음의 삶의 방식인 것임.
l 둘째로, 미래에 성도가 들어가게 될 천국과 그곳에서 받게 될 상급은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님. 또한 그러한 천국과 그러한 상급이 준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 과학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인식론적으로도 명백한 것이 아님. 오로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존재와 교감할 수 있는 믿음에 의해서만 그것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따름임. 따라서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되는 것임.
l 끝으로,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고 간 열조들의 일생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증거가 된다고 히브리서 저자가 진술하고 있음(11:2). 저자가 열거하고 있는 믿음의 열조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음; ①아벨(11:4) ②에녹(11:5) ③노아(11:7) ④아브라함(11:8) ⑤사라(11:11) ⑥이삭(11:20) ⑦야곱(11:21) ⑧요셉(11:22) ⑨모세(11:24) ⑩여호수아와 백성들(11:30) ⑪라합(11:31) ⑫기타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선지자들(11:32) 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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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보이는 모든 세계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방법이 바로 믿음”(11:3)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저자의 주장은 헬라 철학과 히브리 사상을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 것인가?
l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아니하는 것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라고 사고하는 것은 헬라 철학 가운데 특히 영지주의적 이분법이 주장하고 있는 관점임. 그런데 헬라 철학자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보이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영적인 지혜 자체라고 이해하고 있음. 그러므로 그들의 관념은 무신론적인 것이며 철학자가 마치 고승들이 면벽수련(面壁修練)하듯이 깊은 명상과 지적인 훈련으로 태초의 지혜를 깨닫고자 고행을 하고 있음. 그들은 그것이 창조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l 히브리 사상이 영지주의적 헬라 철학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에 초대교회시대에 교회 내에 그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많았던 것이 사실임.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존재하고 있음. 그것은 창조력을 가지고 있는 지혜가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이 있다고 하는 히브리적 사고인 것임. 그 차이 때문에 히브리인들은 무신론자나 철학자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유신론적 종교인들인 것임.
l 세상에는 창조주를 복수로 보는 범신론적 종교가 많이 있고 또한 무수한 영적인 존재들이 지역마다 또 분야마다 인간의 세계나 자연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정령신앙이 존재하고 있음. 그렇지만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사상은 철저하게 일신론이며 야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히11:3절’에서 히브리서 저자가 정의하고 있는 것임.
l 여기서 저자가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정의하면서 구약상의 믿음의 인물들을 그들의 활동상과 함께 먼저 나열하고(11:4-34) 이어서 슬며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고난의 모습을 연결시키고 있음을(11:35-39) 눈여겨볼 필요가 있음. 더구나 신약상의 성도들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준비되어 있는 하늘의 것들을 그들 구약의 인물들이 온전히 받지도 못한다고 결론짓고 있음에 더욱 유의해야 할 것임(11:40).
l 저자가 그와 같이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의 창조력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먼저 정의했기 때문임. 그와 같은 기본 정의에 입각하여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인정하고 그 분이 승천하여 창조주 되심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자신의 논리를 확장할 수 있는 것임. 그와 같은 저자의 의도가 실제로 제12장 초반에서 다음과 같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음;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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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구약상의 믿음의 인물들 가운데 아벨, 에녹, 노아에 대해서는(11:4-7) 각각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l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고 하는 증거를 얻었다는 것임(11:4a). 여기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것을 드리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아벨은 그와 같은 믿음의 본질을 오늘 날도 증언해주고 있는 조상인 것임(11:4bc).
l 에녹은 하나님과 한평생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하늘로 옮겨진 첫 번째 인물임(창5:22-24).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과 발걸음을 같이하여 인생길을 살아간다는 것인데 그는 자녀들에게도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인물임.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음.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 그대로 사는 자에게 상급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음(11:5-6).
l 노아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을 듣고 명령하시는 방주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완성시킨 인물임, 약 120년 후에 이루어질 먼 훗날의 홍수심판을 대비하기 위하여(창6:3) 100년 넘는 시간을 한결같이 방주 만드는 일에 헌신했다고 하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닌 것임(11:7a). 노아를 비웃었던 세상 사람들은 정죄를 받아 심판에 이르렀으며 노아 만이 의인의 족보를 계승하고 신 인류의 조상이 된 것임(11: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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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에 대해서는(11:8-19) 어떠한 점을 지적하고 있는가?
l 흔히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는 믿음의 조상이란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라고 볼 수 있음. 그들 부부는 본래 이름이 각각 아브람과 사래였으나 똑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열국의 어미 사라”라고 개명을 받았으며(창17:5, 15-16) 약속의 아들이 그들 노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던 것임(창17:17-19). 고대 가부장 사회에서는 가장인 남자의 아들이면 족장이 될 수 있었지만 영적인 장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 사이에서 약속의 아들이 탄생했던 것임. 그것은 시대를 넘어서는 남녀평등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임.
l 그와 같은 의미에서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첫째로, 아브라함 부부는 ①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비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나그네 인생을 시작했으며(11:8) ②이방 땅에서도 하나님 신앙을 지키고 대물림하였으며(11:9) ③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목적지까지 끝까지 전진하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것임(11:10).
l 둘째로, 약속의 아들을 생산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기적의 아들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들이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11:11-12).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태를 열고 닫으시는 분이심을 말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그들 부부는 체험으로 알게 된 것임(창20:17-18). 경수가 끊어진 지 오래된 불임여성 사라를 치료하여 그 태를 열어주신 하나님께서는 나이 많은 아브라함을 회춘시켜 그들 노부부에게 기적의 아들 이삭을 주신 것임. 그러므로 이삭의 부모는 아브라함 부부이기 이전에 생명의 기적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라고 볼 수 있음. 그 점을 아브라함이 깨닫고 “영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으로 신앙고백하고 있음(창21:33).
l 셋째로, 아브라함이 영생의 하나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려가서 희생의 제물로 바치고자 한 것임(11:19). 약속의 아들을 주시는 분 그리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 부부가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11:17-18).
l 끝으로, 인생의 목적이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임을 믿고서 살아간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 부부인 것임(11:16). 아브라함 부부처럼 살아간 구약의 수많은 인물들이 모두 천성을 바라보고 살아간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인 것임(11:13-16).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인내의 신앙으로써 초대교회 성도들도 환난과 핍박을 물리치고 하늘의 상급을 받도록 하라고 실감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임(10:34-39, 1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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