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28강(창41: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3월 12일(수)
만 이년 후에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다(창41:1-4)
바로가 꿈을 꾸는 때를 모세는 ‘만 이년 후에’(When two full years passed)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41:1a). 그 때는 정확하게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하나님의 지혜로 해석을 해준 날로부터(창40:13-15) 완벽하게 2년이 경과한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왜 모세는 그 때의 도래를 그렇게 주의를 기울여서 기술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모세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자신이 섬기고 있는 두 관원장이 같은 날 밤에 비슷한 꿈을 꾼 것이 아무래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보입니다(창40:8, 41:25, 단2:28). 그래서 두 관원장의 부탁으로 그들의 꿈을 각각 해석을 해줍니다. 그 가운데 술 맡은 관원장은 해몽의 결과 반드시 복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창40:13). 차제에 요셉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에게 고해달라고 술 맡은 관원장에게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창40:14-15). 그것은 언뜻 보면, 단지 힘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보이지마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같은 내용을 가지고 요셉이 오랜 세월 가슴앓이를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왔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기도와 부탁은 언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일까요?”. 모세는 그 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간구도 그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300년 이상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왔던 것입니다(창15:13-16, 출2:23). 그 때가 바로 모세 자신의 생애 가운데 도래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겸손하게 준비가 된 그 시점입니다(출3:1-12).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사용하실 수 있는 그릇으로 요셉이 준비가 되는 시점이 언제인가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 때가 바로 2년 후 만 30세가 되는 그 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창40:1, 41:46).
요셉을 들어 사용하고자 하는 그 때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기이한 꿈을 주는 것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창41:1b). 그 꿈은 마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13년 전에 주신 꿈과 비슷합니다(창37:6). 비슷한 내용의 꿈을 신기하게도 두 번 겹쳐서 꾸고 있는 것입니다(창37:7, 9). 바로가 꾸고 있는 첫 번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아름답고 살진 7암소가 (나일) 강가에서 올라와서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일 강가에서 올라오는 7암소는 정반대입니다. 아름답지를 못하고 흉한 모습입니다. 살이 찌지를 못하고 못 먹어서 창백합니다. 강가에 풀이 없어서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침 아름답고 살진 7암소를 발견하고서는 그것을 잡아먹고 맙니다”(창41:2-4).
바로의 꿈은 신기하기는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는 잘 먹고 살진 소가 힘이 센 반면에 잘 먹지를 못한 소는 비실거리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힘이 없는 창백한 소가 힘이 좋은 살진 소를 잡아서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꿈과 현실이 반대가 되고 있는 소위 ‘개꿈’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게 치부할 수 없도록 비슷한 내용의 꿈이 이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창41:5-7).
연거푸 꿈을 꾸게 하다(창41:5-7)
바로가 첫 번째 꿈을 꾸고 나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창41:4-5). 두 번째 꿈이 마치 연속극처럼 나타나고 있습니다; “벼가 자라고 있습니다. 벼 줄기에서 이삭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무성하고 충실한 7이삭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정 반대입니다. 무성하지를 못하고 가느다란 이삭입니다. 충실하지를 못하고 동풍에 말라버린 이삭입니다. 그렇게 볼품이 없는 이삭이 기묘하게도 풍성한 이삭을 모조리 삼키고 있습니다”(창41:5-7). 놀라서 바로가 깨고 보니 역시 꿈입니다.
세상에 무슨 그렇게 흉한 꿈이 있을까요? 바로는 지금까지 그러한 꿈을 연거푸 꾸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개꿈으로 치부하기에는 꺼림직합니다. 비슷한 꿈이 두 번이나 같은 밤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이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애굽 제국의 통치자인 바로는 그 메시지를 파악해야만 합니다. 제국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있으며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다가온다는 뜻인 것만 같습니다. 애굽은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디오피아 고원지대에서 발원하고 있는 ‘푸른 나일 강’과 저 멀리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있는 ‘흰 나일 강’이라고 불리는 두 강이 합쳐지면서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은 마치 살진 암소와도 같고 충실하고 무성한 벼 이삭과도 같은 제국입니다. 그런데 먹지를 못하고 굶주린 주변의 족속들이 애굽 제국을 집어삼키겠다고 달려드는 것만 같습니다. 과연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꿈인지를 빨리 파악해보아야만 합니다. 국가안보상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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