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11강(창38:12-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5. 17:23

창세기 강해 제211(38:12-1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227()

 

상처(喪妻, 아내가 별세함)를 한 유다가 산 동네 딤나로 왜 올라가고 있는가?(38:12)

 

유다는 사랑하는 아내, 곧 수아의 딸이 죽자 슬퍼하면서 그 초상을 치르기에 정신이 없습니다(38:12a). 유다가 수아의 딸을 많이 사랑하였다는 근거는 그가 그 아내로부터 세 명의 아들을 얻고 더 이상 자녀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처첩이 있었더라면 또 다른 아들이 태어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엘과 오난과 셀라 밖에는 다른 아들이 없습니다(38:3-5). 비록 수아의 딸은 원주민인 가나안 족속의 출신이었지만(38:2) 그녀를 유다가 깊이 사랑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여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집안의 아들인 유다가 깊이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6:2)는 대목에서도 벌써 알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다는 아내의 초상을 치르고 나서 한동안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38:12b). 그러했던 유다가 갑자기 바깥 나들이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양털을 깎아야만 하는 계절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38:12c). 북반구에서 양털을 대대적으로 깎는 시기는 겨울이 들어서기 직전입니다. 양들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살이 찌고 양털이 많이 무성하게 됩니다. 그것을 깎아야 많은 양의 양털을 한꺼번에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계절에 양의 털을 많이 깎아서 높은 수익을 얻게 되어 좋지만, 양들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참으로 걱정입니다. 이제 추위가 밀어 닥치고 있는데 사람들이 외투를 모두 벗겨가니 마치 알몸이 되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양들을 위기로부터 구해내시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양들에게 자체적으로 엄청난 기름을 생산할 수 있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일명 리놀린이라고 부르고 있는 양의 기름은 양털을 깎고 나면 대대적으로 생성이 됩니다. 그 기름의 생성으로 말미암아 양은 추위를 이기면서 새로운 털을 만들 때까지 견디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유다는 그가 살고 있는 거십에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소작지역을 전부 돌아보고 있습니다(38:5). 이미 양털을 깎는 일꾼들, 양털깎이(shearer) 일꾼들을 많이 수배하여 현지로 출발을 시켰습니다. 그 뒤를 따라서 유다는 청지기 히라와 함께 아둘람의 소작지역을 전부 돌아보고 나서 마침내 마지막 목축지역인 산골마을 딤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38:1, 12).

 

시부(媤父, 시아버지) 유다가 딤나로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말이 왜 변장을 하고 있는가?(38:13-14)

 

소작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토지나 가축의 원 소유주인 지주양반이 자신들의 동네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큰 관심사입니다. 특히 지주인 유다가 청지기 히라와 동네의 마름을 대동하고서 순찰을 나오고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합니다. 만약에 가축의 수가 틀린다거나 많이 야위어 있다고 한다면 다음 번 소작을 주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작인 동네의 주변환경에 있어서도 귀하신 분이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미리 동네청소에도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유다의 행차는 사전에 온 동네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 소문을 자연히 듣게 된 다말도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친정 집에서 계속 얹혀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서러운 신세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시아버지 유다를 반드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마지막 남은 시동생 셀라가 이미 장성하였으니 자신과 합방을 시켜달라고 요청을 해야만 합니다”(38:11, 14). 그런데 다말은 이미 유다의 속셈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셀라도 그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38:11). 막내 셀라 역시 형들보다 그 심성이 나은 점이 없는 것입니다. 선한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잘못하면 또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죽여버리시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38:9-10). 그러므로 시아버지 유다가 결코 셀라가 장성을 하여도 자신에게 합방을 하도록 조치를 취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다말에게 살 길이 열리게 될까요? 다말은 스스로 그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과부의 의복을 벗고서 창녀처럼 변장을 하고 있습니다. 셀라의 씨가 아니면 시부 유다의 씨를 받고자 합니다. 마침 시어머니가 별세를 했으니 자신이 변장만 하고 창녀처럼 꾸민다면 합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발각이 된다면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절박합니다. 그래서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일생일대의 모험에 나서고 있습니다”(38:12-14).

 

다말의 변장을 알아보지 못한 유다가 어떠한 제의를 하고 있는가?(38:15-16)

 

유다는 이미 맏며느리 다말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유다가 다말에 대한 기억을 다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딤나 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과 같은 에나임 문에 들어섰을 때에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돈이 살고 있는 마을 입구에서 창녀를 만나자마자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하는 엉뚱한 제안을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38:14-16). 물론 유다는 인간적으로 볼 때, 사랑하던 아내가 죽고 나자 갑자기 추운 날씨에 그것도 객지에서 옆구리가 많이 시리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이불을 덮고서 몸을 함께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젊은 여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마을이라면 몰라도 그 소문이 며느리 다말이 친정살이를 하고 있는 동네 딤나에 두루 퍼질 것입니다.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해답은 하나입니다. 유다는 다말의 존재와 그녀의 친정이 딤나에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말의 변장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매우 친절하게 유다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변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38:16). 다말의 목숨을 건 모험이 일단은 한 고비를 넘기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녀의 소원이 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유다가 어떠한 판정을 내리고 있는지에 관하여 모세가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계속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