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08강(창37:36-38: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4. 04:37

창세기 강해 제208(37:36-38: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224()

 

낙타 등에 여러 가지 귀중한 물건을 싣고서 국제적으로 무역을 하고 있는 상인들의 정체를 이스마엘 사람또는 미디안 사람이라고 혼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37:25, 27-28, 36, 39:1)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서장자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 여인 하갈에게서 86세에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16:16). 이스마엘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장차 들 나귀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이 되어 있으며 그의 이름도 하나님이 미리 지어주신 것입니다(16:11-12). 그만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생모 하갈과 함께 14살 때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 가나안 남쪽 국경지대에서 살았습니다(21:9-14). 활을 잘 쏘며 용맹하여 가나안 남부 신 광야와 애굽으로 통하는 수르 광야 그리고 그 남쪽 바란 광야에서 아라비아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됩니다(21:20-21). 하나님께서 하갈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그를 키우고 지켜주셨기에 그와 같은 광대한 지역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16:10, 21:13).

 훗날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번성해서 열두 두령이 이끄는 강력한 이스마엘 족속을 이루었습니다(25:12-18). 오늘 날도 회교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아라비아 사람들은 이스마엘이 그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지를 적대관계에 있는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아브라함의 적장자인 이삭은 이복 형 이스마엘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는 서모 하갈이 하나님을 발견했던 장소 브엘라해로이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형 집안과 가까이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16:14, 24:62, 25:11). 그 결과 형제간에 우애가 좋아서 175세로 운명하게 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례를 두 형제가 사이 좋게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25:9). 그 자리에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아들 6명의 이름이(25:1-9)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참조하면 분명히 그러합니다.

아브라함이 하갈 모자를 집에서 내보낸 시점이 105세 정도라고 본다면 그는 32년 후에 사라가 별세하여 상처를 하게 됩니다(23:1). 그 다음에는 젊은 후처 그두라를 얻어서 6명의 아들을 얻게 됩니다. 이삭의 이복 동생들이 되는 그들이 20세 성인이 되자 아브라함은 모두 재산을 나누어주고 각각 동방의 땅으로 분가를 시키고 있습니다(25:6). 그러므로 그두라의 아들들이 시리아와 아라비아 땅으로 분가를 해나간 시점은 아브라함의 나이 157세에서 165세 사이로 보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죽기 10년 전에 이삭의 이복동생 6명의 분가를 모두 끝낸 것입니다. 그 시점은 이스마엘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온 지 무려 5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입니다. 이스마엘이 시나이 반도와 북부 아라비아에 살면서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의 무역에 크게 역할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먼저 이방 땅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맏이답게 자신의 이복 동생이 되고 있는 그두라의 아들들을 많이 도와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가운데 넷째인 미디안은 북부 아라비아 서쪽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특히 이복 형인 이스마엘을 많이 의지하고서 살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창세기 제37장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복 형들이 세겜의 북쪽 도단 땅에서 요단 강 건너 길르앗 쪽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북부 시리아에서 향품, 유향, 몰약 등을 낙타에 싣고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복 형들은 그들 상인들의 정체를 이스마엘 사람때로는 미디안 사람이라고 이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혼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두 족속이 하나의 민족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두 족속이 하나의 상단을 꾸려서 함께 장사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들 두 족속의 사이는 긴밀합니다(37:25, 27-28, 36).

함께 동업을 하고 있는 두 집단이 이스마엘의 후손과 미디안의 자손들입니다. 그들의 동업관계는 거의 4,000년 전에 시작이 되었지만 그 관계는 종교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지금도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날 회교권의 제일 성지와 제이 성지가 모두 그들의 땅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교의 성지가 아라비아에 있는데 그 중심이 메카이고 처음 마호멧이 지지세력을 얻은 지역이 옛날 아라비아의 북서쪽인 미디안의 땅입니다(2:15-16). 그러므로 회교 역시 이스마엘의 정통성과 미디안의 정통성을 함께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형국이 오늘 날 중동의 국제정세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기록은 그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중근동의 역사 가운데 살아서 숨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간 이후 그의 이복 형들 열 명 가운데 오로지 유다의 이야기만이 대표적으로 실리고 있는 이유(37:36-38:1).

 

이복 형들 열명의 이야기를 모두 싣게 되면 지면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경(政經, 정식으로 채택된 경전, canon)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교과서처럼 꼭 필요한 것만을 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미가 있는 부분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의미가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신앙에 의미가 있는 인생을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만을 적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복 형 10명 가운데 오로지 유다 만이 그러한 인물이라고 모세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유다의 신앙과 행동이 귀감이 되고 있다고 창세기 제38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 첫 마디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38:1). 당시의 가나안 땅의 중심은 큰 도시 세겜입니다(12:6, 33:18, 34:1-2). 그 도시를 정복하여 지배하고 있는 자가 바로 대 족장 이스라엘입니다(48:22). 이스라엘은 비록 가나안 남부지역 헤브론에 살고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가나안 중부와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덕택에 그의 아들들이 목축하기에 좋은 가나안의 중부지역을 나누어서 지배하고 있습니다. 즉 요셉의 열명의 이복 형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각자 자신들의 들판을 얻어서 독립적인 족장으로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남부가 아니라 중부지역에 몰려서 살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나안 남부는 반 사막성 기후이며 광야입니다. 즉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메마른 지역입니다. 소위 네게브지역이라고 불리고 있는 그곳은 목초가 잘 자라지를 못하여 유목하기에 적당하지를 못합니다(13:1-7). 그러므로 목축업자인 그들이 남부를 선호할 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가나안 중부지역에 살면서 그 들판을 나누어서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명의 요셉의 이복 형들 가운데 유독 유다 만은 형제들을 등지고서 가나안 남부지역으로 이사를 오고 있습니다(38:1a).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유다가 보기에 형제들의 생각과 행동이 좋아 보이지를 않습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세상적입니다. 모두가 함께 생명을 돌보고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배울 점이 없으며 계속 가까이 살고 있다가는 자신도 완전히 세속화되고 말 것만 같습니다. 둘째, 아버지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앙이 그립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22:12). 그 신앙을 자신의 할아버지인 이삭이 약속의 아들로서 승계를 했습니다(17:19, 26:3-5). 그 신앙이 다시 유다의 아버지인 이스라엘에게 계승이 되어 있습니다(28:13-15, 35:9-15). 그런데 집안에는 어린 막내 베냐민 만이 그 옆에서 하나님 신앙을 배우고 있을 뿐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분가하여 세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앙을 배우고 싶어서 유다는 가나안 중부지역에서 남부지역으로 남하를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결정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제적으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부의 좋은 목초지역을 떠나서 남부의 메마른 땅으로 들어오는 일입니다. 하지만 유다에게는 당장 더 잘 먹고 사는 경제적인 이익보다는 하나님 신앙의 회복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다는 가능하다면 아버지 이스라엘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면서 하나님 신앙을 배우고 하나님의 선지자(20:7) 그리고 하나님의 방백의(23:6) 신분을 계승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유다는 아버지 이스라엘의 본가가 있는 헤브론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이 헤브론 본가를 막내 아들 베냐민에게 물려주고자 이미 작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2:36-38). 그래서 유다는 최대한 헤브론 가까이 남하를 합니다. 그래서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 아둘람입니다(38:1b). 참고로 아둘람은 헤브론에서 북서쪽으로 16km지점입니다. 천년 후에 다윗 제국의 수도가 되는 예루살렘으로 보자면(22:2, 삼하5:9) 아둘람은 남서쪽 26k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30km를 곧장 남하하면 헤브론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결국 아둘람은 예루살렘과 헤브론의 서쪽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남하를 한 유다는 아둘람에서 유능한 청지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히라입니다(38: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