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06강(창37:21-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3. 06:37

창세기 강해 제206(37:21-3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222()

 

장자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려는 이유(37:21-24, 29-30)

 

야곱의 장남인 르우벤이 처하고 있는 처지와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면 그가 왜 요셉을 살리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첫째로, 르우벤은 야곱의 장남입니다. 그런데 그는 부친의 지위를 물려받지를 못하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서모 빌하와 간통을 했기 때문입니다(35:22). 그것은 젊은 르우벤이 잠시 동안의 성적인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여 벌어진 사건인지 아니면 권력적인 야합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합니다. 그렇지만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죄이며 율법에 의하면 둘 다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패륜행위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20:11).

둘째로, 르우벤은 비록 장자이지만 동생과 나이차이가 겨우 1살입니다. 어머니 레아가 워낙 임신능력이 좋아서 매년 아들을 줄줄이 생산을 했기 때문입니다(29:31).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등 네 명의 아들을 연년생으로 출산한 것으로 보입니다(29:32-35). 그리고 그들 4형제는 모두가 용모가 준수하고 늠름하며 남자답습니다(49:3, 34:25, 38:26). 그러므로 아버지 야곱의 입장으로서는 꼭 장남인 르우벤이 아니라도 족장의 지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이 즐비합니다. 그래서 르우벤은 초조합니다.

셋째로, 아버지가 유독 라헬의 소생인 요셉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채색옷을 요셉에게만 입히고 있는 것을 보면 그를 차기 족장으로 내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37:3). 그렇다면 르우벤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로부터 신임을 회복하고 장남의 지위를 되찾을 수가 있을까요?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던 르우벤의 눈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포착이 되고 있습니다. 동생들이 공모를 하여 요셉을 죽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7:18-20).

르우벤이 그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합니다; “만약 르우벤 자신이 일단 요셉을 살려두고서 밤중에 몰래 그를 구출하여 헤브론 아버지의 집으로 갈 수만 있다면 모든 걱정이 끝날 수 있습니다(37:22).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동생들의 비행을 아버지에게 고하면 그들은 중한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구해온 자신은 장자의 지위를 회복할 것입니다. 형제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요셉은 아무리 아버지 야곱의 위세를 등에 업는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후계자의 자리에 오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은 기묘한 발상입니다. 아무리 르우벤이 따져보아도 기가 막힌 묘수입니다. 그래서 장자인 르우벤이 동생들에게 젊잖게 제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을 죽여서 구덩이에 던져 넣는다고 하면 우리 손에 형제의 피를 묻히게 된다. 그 피의 값을 훗날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보다는 자연의 힘을 빌려서 그를 죽이도록 하자. 그 구덩이에 일단 던져 놓으면 아사를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훨씬 낫지 않겠느냐?”(37:20-22).

르우벤은 무척 치밀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밖의 요인들도 이미 계산에 넣고 있습니다; 첫째, 지금은 여름철이라 별로 춥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채색옷을 벗긴 상태로 구덩이에 넣어 두어도 얼어 죽을 염려가 없습니다(37:23). 물론 그 채색옷은 동생들이 짐승의 피를 묻혀서 집으로 보내는데 사용할 것입니다(37:31-33). 가나안 땅은 반 사막성 기후인지라 밤중에는 춥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자신이 몰래 와서 끄집어내어주면 됩니다. 둘째, 최근에 도단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여 구덩이에 물이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37:24). 그러므로 그 물이 없는 빈 구덩이에 요셉을 집어 넣더라도 익사할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요셉의 채색옷은 형제들이 짐승의 피를 묻혀서 집으로 보내는데 사용할 것입니다(37:31-33). 요셉이 도단으로 오는 도중에 짐승에게 물려서 죽었다는 물증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르우벤의 흉계를 알아챈 유다가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다(37:25-27)

 

르우벤의 셋째 동생의 이름이 유다입니다(29:32-35). 그는 큰 형인 르우벤의 흉계를 알아채고 있습니다. 그대로 내어 버려두었다가는 다른 형제들이 모두 줄초상이 날 판입니다. 그는 위기에 처한 형제들의 목숨을 살리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이복 동생인 요셉의 목숨도 살려주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유다는 그 묘책을 찾고자 열심입니다.

 형 르우벤은 자신의 내심을 숨긴 채 일단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습니다(37-29). 가까운 들판에 있는 자신의 양떼를 돌보다가 어두워지면 다시 와서 계획대로 요셉을 웅덩이에서 꺼내려고 합니다. 유다가 그와 같은 르우벤의 행동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살피고 이해하는 특출한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이 훗날에는 며느리 다말과 두 아들의 목숨까지 살리게 됩니다(38:26-30). 더구나 유다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열심입니다. 그와 같은 성품의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지도자입니다(24:14). 이 대목에서부터 유다는 장차 이스라엘 집안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소지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때마침 유다의 눈에 멀리서 오고 있는 이스마엘 대상들의 무리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에서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구입하여 소비지인 애굽으로 가는 중입니다(37:25). 길르앗에서 요단 강을 건너면 바로 도단과 세겜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 무리를 내려다보다가 유다가 좋은 묘책을 찾아내게 됩니다. 요셉을 그들에게 팔아버리면 될 것입니다. 애굽에 가서 노예로 살더라도 일단 목숨은 건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면 다른 형제들도 줄초상이 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유다는 그것이 고육지책임을 압니다. 이복동생 요셉이 장차 먼 타국에서 노예로 살라가게 될 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시간은 급하고 그것이 유일한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을 설득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들도 형제간에 피를 보는 것이 못내 마음이 편하지 아니했는데 유다가 좋은 방법을 이야기하니 좋아들 합니다(37:26-27). 그렇게 순식간에 요셉의 운명이 결정이 되고 맙니다.  

참고로, 향품(spice)은 액체인 방향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향(balm)은 향수이면서 항균효과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몰약(myrrh)은 미르 나무의 송진이며 방부제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미이라를 처리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향내나는 방부제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 족속들이 그와 같은 품목의 무역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고대사회에서 장정 노예의 몸값이 은화 30세겔입니다(21:32). 그 값어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1세겔이 4데나리온이며 1데나리온이 하루치 품삯입니다(20:2). 그러므로 1세겔은 40만원정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어른 노예가 1,200만원 정도의 몸값이라고 추산이 됩니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에 의하여 노예의 몸값으로 팔리고 있습니다(26:15).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왜 노예로 취급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요셉은 17세의 청소년이므로 어른 노예의 3분의 2정도의 값에 팔리고 있습니다(37:28).

 

철부지 요셉에게 애굽의 노예생활이 필요한 이유(37:28)

 

  안하무인인 요셉, 남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릴 줄 모르는 요셉입니다(37:2). 아버지 이스라엘의 편애와 지나친 보호를 받으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살고 있는 자가 바로 요셉입니다(37:4, 7). 그리고 좁은 가나안 지방에서만 살아서 넓은 세상을 모르고 찬란한 세상 제국의 문명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물 안 개구리이며 철부지인 요셉을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그를 애굽의 노예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극단적인 방법입니다. 한 마디로, 요셉의 경우에 있어서 그와 같은 획기적인 처방이 아니면 도저히 인격과 인간의 개조가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판단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방법은 요셉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첫째,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이 그러합니다.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피조물인 인간으로 여자의 모태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2:7).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자는 사람의 형편을 먼저 알아야만 하기에 그와 같은 조치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입니다(2:3-5). 둘째, 모세의 훈련과정이 그러합니다. 애굽의 왕자급 대우에서 하루 아침에 미디안 광야 이드로의 사위로 전락하고 맙니다(7:23, 2:15-22). 그렇게 객지에서 양치기로 산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입니다(7:7). 그 때가서야 모세를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부르시고 있습니다(3:1-10).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고 제사장나라를 건설하는데 모세의 애굽에서의 40년과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의 경험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바리새인으로서 헬라 학문에 밝은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신위적인 방법으로 회심을 시키고 있습니다(9:3-7). 히브리 정경에 비추어서 기독교의 교리를 정립할 수 있는 후속사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열조의 가문에서 요셉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를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서 애굽과 주변국의 백성들을 흉년에서 구해내어야만 합니다(41:53-57, 45:7-8).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요셉이 그 신분이 낮아져서 애굽의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배워야만 합니다.

참고로, 남의 생명을 구하려는 자가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요셉의 종의 삶이 그러합니다. 둘째, 섬기는 삶의 자세를 배워야만 합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은 높은 나리들을 섬겼습니다. 셋째, 넓은 시야와 깊은 지혜 및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애굽의 학문을 배우고 익힌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한시도 앞길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철두철미하게 신앙훈련을 받아야만 합니다. 애굽 천지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요셉입니다. 모든 일을 조상님의 하나님에게 기도함으로써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가장 큰 고난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배움과 훈련의 기회입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이 비록 종이지만 애굽의 문물을 익히도록 그에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만리타향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된 요셉이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그를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와 같은 긴 안목이 없으면 요셉의 인생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들의 인생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