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05강(창37:18-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2월 22일(토)
엄청난 수의 양떼를 나누어 드넓은 초지에서 서로 격리된 채 종들과 함께 전문적으로 목축을 하고 있는 열 명의 이복 형들이 일부러 모두 도단에 모이다(창37:17-18).
요셉이 세겜에서 형들을 찾았지만 평소 그들이 목축을 하고 있는 지역에서 전혀 발견하지를 못했습니다. 혹시 무슨 변고를 당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을 하면서 그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현지인 한 사람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창37:15). 요셉의 형들이 모두 북쪽 도단으로 가축을 몰고서 이동을 해갔다는 것입니다(창37:17). 그래서 요셉은 세겜에서 20km 북방에 있는 도단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도단에 도착하기 전에 형들이 그가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를 먼저 얻습니다(창37:18a). 놀랍게도 요셉이 혼자서 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형들이 요셉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줄 것으로 아버지 야곱이 푹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복 형들이 모두 요셉을 싫어하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입니다(창37:4-5, 8, 11). 이복 형들은 서로 급히 연락을 하여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은 비상사태가 발생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이 고향 헤브론에서 무려115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도단 땅까지 단신(單身, 혼자 몸)으로 오고 있으니 그것은 엄청나게 좋은 기회입니다. 그를 해치우고 아버지 야곱에게 거짓말을 해도 될 것만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나면 훗날 그들은 동생 요셉이 대 족장 이스라엘의 지위를 승계하게 되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 격리되어 양떼를 치다가 목축은 모두 종들에게 맡겨두고서 그 현안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한 군데에 모인 것입니다(창37:18b). 비상회의에서 형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요셉을 미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대세는 그를 죽이고 짐승에게 찢겨서 죽은 것처럼 꾸며서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허위보고를 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창37:18-20).
그렇게 되면 이복 형들의 말과 같이(창37:19-20)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기이한 예언적인 꿈은(창37:6-9) 과연 무위(無爲, 헛수고 또는 헛된 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일까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사실을 그 후의 창세기의 기록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1).
요셉을 죽여서 구덩이에 던지고 마치 짐승에게 잡아 먹힌 것으로 아버지에게 보고하자고 적극 주장한 형들은 누구라고 추정이 되는가?(창37:19-20, 34:25, 42:24)
야곱은 2처2첩으로부터 12아들을 생산한 족장입니다. 그러므로 한 지붕 네 가족이 이스라엘의 품 안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창35:23-26). 정실부인 두 사람으로부터는 8명의 적자를 얻었습니다. 레아의 소생으로서 아들이 6명이고 죽은 라헬의 소생인 아들이 2명입니다. 빌하와 실바 등 두 명의 첩으로부터 각각 두 명의 아들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6:2:2:2’라는 네 그룹으로 이스라엘의 아들 12명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과연 어느 그룹에서 차기 대 족장인 이스라엘이 탄생을 하게 될까요? 초미의 관심사에서 첩들의 자식들은 제외가 되고 있습니다. 적자가 아니고 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적자가 한 사람도 없으면 기회가 있겠지만 8명의 적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전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레아의 아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후계자가 나타날까요? 11번째 아들이며 죽은 라헬의 소생인 요셉에게 채색옷을 만들어서 입히고 있는 아버지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이미 저울의 추가 요셉에게로 기운 것만 같습니다(창37:3). 따라서 레아의 소생이며 요셉의 형인 6명의 적자들은 요셉에게 대하여 그리고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대하여 불만이 큽니다. 그리고 서자인 4명의 형들도 요셉에게 감정이 좋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어린 동생 요셉이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서 이복 형들 특히 서자 형들의 허물과 잘못에 대하여 아버지에게 미주알고주알 전부 보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창37:2). 형들의 허물에 대하여 가려주지를 아니하고 있는 요셉과 같은 동생이 만약 차기 대권을 쥐게 된다고 한다면 자신들의 삶이 너무나 고달파질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차제에 그를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매사에 주동자가 있고 지지를 하는 추종자들이 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지를 하는 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대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네 가지로 분류가 되고 있는데 요셉의 이복 형들의 비상회의에 있어서는 반대자가 없습니다(창37:18). 따라서 세 그룹으로 분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주동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두 번째 형인 시므온으로 보입니다. 그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22년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이 이복 형 10명 가운데 유독 시므온을 지목하여 구속을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창42:24). 자신을 죽이는데 가장 앞장을 섰기 때문에 요셉이 취하고 있는 행동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둘째, 시므온과 레위가 과격한 성격이며 특히 잔혹합니다(창49:5-6). 그들이 ‘세겜 사건’의 주모자이며 주동자들입니다(창34:25). 따라서 요셉을 해치우는데 있어서도 주동자로 그리고 적극 지지자로 그들이 함께 행동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 다음으로 그들 주동자를 적극 지지한 자는 서자들 그룹일 것입니다(창37:2). 끝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습니다. 첫째가 맏이인 르우벤입니다(창37:21-22, 42:22). 그 다음이 넷째 형인 유다입니다(창37:26-27). 그들의 입장의 차이가 앞으로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유다가 어째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지파의 조상이 되고 있는지 그 근거가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열두 사람의 개성과 특징이 그들 개인의 인생을 결정짓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위에서 부은 물이 끊임없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그들의 천성과 성품이 독특한 유전인자가 되어 자손대대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결과 열두 지파의 앞날이 모두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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